주간동아 896

2013.07.15

‘개성공단 국제화’ 첩첩산중

외국 기업 ‘정치적 위험’에 투자 손사래…한국, 리스크 최소화 힘써야

  • 트로이 스톤개론 美 한미경제연구소 의회통상담당국장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ckkang@keaf.org

    입력2013-07-12 16: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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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개성공단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한때는 대북포용정책의 상징이었지만 지난 수개월간 긴장의 바로미터 구실을 해야 했던 개성공단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박근혜 정부는 남측뿐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기업이 투자하는 이른바 국제화를 추진하지만, 북측 반대는 물론 외국 자본의 복잡한 이해관계 등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영문계간지 ‘글로벌아시아’ 2013년 여름 호에 실린 글을 통해 이에 관한 해외 전문가의 전망을 소개한다.

    한반도 비무장지대 북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개성공단은 10여 년 전 햇볕정책 초기에 현대그룹이 첫발을 담그면서 탄생했다. 개성공단은 남북한 간 크고 작은 마찰 속에서도 양측 협력의 상징으로서 꾸준히 성장해왔다. 그러나 현재 개성공단은 완전히 멈춘 상태다. 공단에서 일했던 북한 근로자 5만3000여 명은 이미 다른 지역에 재배치됐으며, 자본주의에 노출돼 발생할 수 있는 사상적 오염을 제거하려고 재교육을 받고 있을 것이라는 일부 보도도 나왔다. 박근혜 정부는 이 지역에 외국 기업을 유치함으로써 안정성을 늘려간다는 이른바 국제화 방침을 천명했지만, 이를 달성하려면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았다.

    그간 개성공단은 남북한 간 위기나 정치적 분쟁과 분리돼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상황이 달랐다. 북한이 지속적으로 개성공단을 대남 정치 분쟁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의지를 내비쳤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국경 폐쇄는 성가신 해프닝 정도로 여길 수 있지만, 정치적 이유 때문에 근로자들을 아예 철수시켜버렸다는 것은 입주를 원하는 기업이라면 언제든 그러한 정치적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음을 뜻한다. 개성공단 미래 투자자들의 생각을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이다.

    ‘개성공단 국제화’ 첩첩산중

    개성공단 야경.

    오라스콤처럼 대처능력 갖춘 기업 선두에

    ‘개성공단 국제화’ 첩첩산중

    6월 7일 새벽 개성공단 정상화 논의를 위해 남북 간 실무회담 수석대표인 서호 통일부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왼쪽)과 박철수 북한 중앙특구 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오른쪽)이 각자 서명한 합의서를 교환하고 있다.

    최근 공단 폐쇄 이전에도 개성공단 사업 자체의 애로사항은 적지 않았다. 먼저 다른 지역보다 국경 출입이 제한적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북한으로 들어가는 차량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휴대전화나 인터넷 사용이 불가능한 통신 여건 탓에 공단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은 개성 공장과의 의사소통을 오로지 유선전화에만 의존해야 했다.



    이미 입주한 남측 기업들은 북한 근로자의 기술이나 교육 수준을 높이 평가하지만, 인력 확충 문제에서 북측 당국이 보인 무능 때문에 사업 확장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근로자 채용이나 임금 결정에도 제한이 많았다. 북측 당국의 요구에 따라 최근 수년간 개성공단 기업들은 공장의 생산성 증가율과 상관없이 매년 성과급을 5%씩 인상해야 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생산물품 판매처에 대한 제약이다. 2010년 총생산량 3억2300만 달러 가운데 제3국에 판매한 양은 3700만 달러에 불과하다. 대북 경제제재와 터무니없이 높은 관세, 북한의 국제적 지위 문제 등으로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물품의 해외 수출 범위가 제한돼왔기 때문이다. 한 예로, 미국의 경우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부품이 들어간 물품조차 판매를 전면 금지해왔다.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 생산물품을 자유무역협정(FTA)에 포함하고자 노력해왔지만 인도, 싱가포르, 아세안(ASEAN) 정도만이 개성공단 생산물품의 자국시장 진입을 허용했다. 한국과의 FTA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은 개성공단 생산물품을 자국 시장에 진출하도록 허용하는 조항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하도록 정해놓았다.

    개성공단 사업이 이렇듯 어려운 상황에서 과연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일이 가능할까. 이미 개성 진출을 고려해온 일부 기업의 경우를 보자. 첫 입주기업 가운데 하나인 태성하타는 화장품 용기를 생산하는 한일 합작회사다. 2007년에는 미국 건강위생용품 제조사인 킴벌리클라크가 개성공단 진출을 검토했고, 독일과 중국 기업들도 예전부터 개성공단에 대한 투자를 고려해왔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이 매력으로 꼽는 지리적 근접성이나 공통언어 사용, 저렴한 인건비 등이 외국 기업 처지에서는 정치적 위험을 감수할 만큼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없다. 공장 설비를 몰수당하거나 생산시설이 장기간 폐쇄될 위험이 남아 있는 한, 향후 저렴한 인건비와 강력한 법질서 운용, 정치적 안정까지 갖춘 국가가 나타날 경우 북한의 값싼 노동력이 가진 이점은 그 매력이 금세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 구실의 중요성

    이러한 한계를 뚫고 개성공단에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려면, 먼저 한국 정부는 공단 정상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입주한 남측 기업은 대부분 중소 규모여서 이미 투자가 이뤄진 설비를 청산하고 다른 곳으로 공장을 이전할 만한 여건이 안 된다. 따라서 공단 운영이 정상화하면 이들은 고스란히 복귀할 공산이 크다. 더 많은 남측 기업이 투자하는 일도 중요하다. 한국 기업이 개성공단 투자를 기피하면 외국 기업의 투자 가능성도 한층 희박해진다. 따라서 개성공단의 투자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재정지원책이 필요하다.

    다음 단계로는 북한의 변덕스러운 행보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북한에 이미 통신망을 건설한 이집트 회사 오라스콤 텔레콤을 통해 휴대전화 통신망을 공단 내에 설치하는 것이다. 중국 기업들이 진출한 나선경제특구처럼 공단 내 기업들이 서울이나 해외 사무소와 연락을 취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방안이다. 특히 이미 북한에서 사업경험을 축적해온 오라스콤 텔레콤은 북측 당국이 허락할 수 있는 파트너이자 리스크가 큰 환경에서 사업을 이어가는 데 능숙한 기업이라 할 수 있다. 개성공단 국제화의 첫 단계에서는 이렇듯 대처능력을 갖춘 기업이 선두에 서야 할 것이다.

    더불어 한국 정부는 제3국 기업들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지금까지 개성공단 생산물품을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 시장에 판매하는 작업에 역점을 뒀지만, 역사적으로나 이념적으로나 북한과 충돌한 적이 없는 개발도상국 기업들이 평양에는 훨씬 덜 위협적인 존재일 것이다. 이와 함께 투자하는 외국 기업에게 세제혜택을 주는 방안도 마련해봄직하다. 물론 이러한 혜택은 단계적으로 줄여나감으로써 개성공단이 정부 지원이 아닌 시장경제원칙에 따라 자생하는 경제지대로 변모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중국 역시 상황을 안정화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 현재 진행하는 한중 FTA 협상을 통해 두 나라는 각자가 만든 북한 내 경제구역을 협정에 포함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개성공단과 북·중 경제구역 간 교역을 활성화하는 것은 물론, 한국 정부가 중국의 개성공단 투자 의지를 이끌어내는 일도 중요하다. 거꾸로 한국 기업들이 북·중 경제구역에 투자할 수 있게 노력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상호 경제구역 투자 활성화가 이뤄질 경우, 북한 내부에 새로운 항구나 교통망을 확충하는 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북한의 진정한 경제개혁이나 국제 경제로의 통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측이 바라는 심화된 남북 경제통합과도 맞아떨어진다. 중국 기업이 개성공단에 진출한다고 해서 향후 한반도 위기가 불거질 때 북한이 근로자 철수 같은 일을 벌이는 게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러한 행동으로 감당해야 할 잠재적인 정치적 비용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

    상당한 인내심 필요한 프로젝트

    ‘개성공단 국제화’ 첩첩산중

    2006년 6월 22일 개성공단 외국인 투자설명회에 참석한 외국 기업인들이 태성하타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개성공단 국제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확고한 의지를 갖춘 파트너다. 남한의 북한 전문 온라인매체 ‘데일리NK’는 김정은 체제가 인민의 사상적 오염을 우려해 공단을 폐쇄할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렇듯 평양이 개성에 대해 상징적 의미 이상의 가치를 두지 않는다면 남측 정부의 개성공단 확대 및 국제화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소지가 크다.

    반면 평양이 진정으로 이 사업에 의지가 있다면 외국 기업, 특히 서구 기업이 들어올 수 있도록 시장경제에 기반을 둔 형태로 공단을 점차 변화시켜야 한다. 고용, 인터넷 통신망, 법질서, 임금 직접 지불 등 다양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테고, 따라서 개성공단 국제화는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다. 북한이 추가로 핵 혹은 미사일 실험을 감행한다면 그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나 불확실성 증가로 세계적인 기업들이 개성에 진출하는 일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나 태성하타의 사례에서 보듯 북한에 관심을 가진 서구 기업이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경우, 개성공단 국제화는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다. 최근 평양은 이를 거부하는 공식발언을 쏟아냈지만 이는 단순한 수사일 뿐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과거에도 북한 당국은 외국인 투자에 깊은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투자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먼저 북한의 근로자 철수 명령으로 망가진 공단의 대외 이미지를 쇄신해야 한다. 물론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일 것이다. 한국 기업은 언젠가 이뤄질 남북통일의 큰 꿈만으로도 개성공단 투자를 결정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수익성 있는 투자 기회만 노리는 외국 기업 처지에서는 그다지 큰 매력이 아닐 수 있다. 다른 모든 사업이 그렇듯, 기업은 항상 리스크를 염두에 두고 움직인다. 한국 정부의 임무는 바로 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작업이다.

    (영어원문은 www.globalasia.org/V8N2_Summer_2013

    /Zone_of_Engagement_Can_North_Korea_s_Kaesong_

    Complex_Be_Internationalized.html 참조)

    ‘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문제 전문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 과정에 주목한다’는 기조 하에 아시아 지역 주요 현안과 관련해 각국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의 공론장 구실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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