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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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태평양 해적에 ‘함정 단속’ 맞대응

  • 정위용 동아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viyonz@donga.com

    입력2009-01-29 13: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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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태평양 해적에 ‘함정 단속’ 맞대응

    정박 중인 러시아 함정. 최근 러시아에서는 태평양에 해적들이 출몰해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러시아 연해주 당국은 지난해 12월 태평양에서 노략질을 일삼는 해적을 뿌리 뽑고자 태평양 함대와 국경수비대에 ‘함정 단속’을 지시했다. 일반 상선에 무기를 숨겨놓고 해적이 들끓는 해역에서 일부러 나포됐다가, 해적들이 상선에 올라오는 순간 한 명도 빠짐없이 사살하거나 체포하는 것이 러시아식 ‘함정 단속’이다. 이런 단속은 옛 소련 시절 ‘가장 비인간적이고 무자비한 법 집행’이라는 비난을 받아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요즘 태평양의 해적들이 국가 공권력에 도전하며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어 러시아 언론은 무자비한 단속 이외에는 별다른 대처 방법이 없다는 보도를 하고 있다. 태평양 해적들은 전 세계의 골칫거리가 된 ‘소말리아 해적’의 그늘에 가려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했을 뿐, 이들의 범죄 규모도 각국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러시아 주간지 ‘베르시야’ 등에 따르면 태평양에서 해적의 활동무대는 국가 간 경계수역 등 공권력의 사각지대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1월 러시아 선원 17명을 태운 상선 카피탄우스코프 호는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열도) 부근 동중국해에서 해적에게 붙잡힌 뒤 1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댜오위다오는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을 다투는 섬. 중국과 일본은 국가 간 분쟁 확대를 우려해 이 섬 주변 수역에서 활동하는 해적들을 뿌리 뽑지 못했다.

    러시아-일본의 영토분쟁 지역인 쿠릴 열도 부근 오호츠크해는 해적이 수시로 출몰하는 수역으로 꼽힌다. 지난해 11월 중국말을 쓰는 해적들은 러시아에서 일본으로 가던 화물선을 이 지역에서 세우고 러시아 선원들의 돈과 물건을 빼앗아 달아났다.

    불법 조업 어선 약점 악용해 돈 뜯어가



    당국의 감시가 느슨한 틈을 타 해안에 정박한 배를 습격하는 대담한 해적들도 나타났다. 최근 러시아 연해주 올가만(灣)에서는 해적들이 통관을 기다리던 러시아 화물선을 습격해 선원들을 선실에 가둔 뒤 일본에서 들여온 공작 기계를 훔쳐 달아났다.

    태평양 해적들은 배를 나포해 인질의 몸값과 화물을 흥정하는 소말리아 해적과는 성장 배경이 다르다. 태평양 해적의 배후 역할은 주로 러시아 마피아, 중국 삼합회, 일본 야쿠자 출신의 조직폭력배들이 맡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들 폭력배는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고가 해적선에 첨단 장비와 무기로 중무장해 해상 단속도 쉽지 않다고 한다.

    태평양 해적들의 정기적인 수입은 불법으로 조업하는 어선에서 나온다. 매일 태평양에 출항하는 중·대형 어선 800척 중 25%가 오호츠크해의 피넛홀(Peanut Hole) 수역과 같이 조업이 금지된 곳에서 고기를 잡는 어선들이다. 해적들은 이런 약점을 악용해 불법 조업 어선에서 정기적으로 돈을 뜯어가고 있다.

    육지에서 폭력조직을 바탕으로 합법적인 영업을 해본 해적들은 해상에서도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고 있다. 연해주 관리들은 “야쿠자 출신 해적들은 러시아 함정이 추적해오면 일본 영해로 도망가 해적질을 사적 분쟁으로 둔갑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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