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2

2007.09.11

한국 닮은 러시아 음식문화

  • viyon2@donga.com

    입력2007-09-05 13:3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한국 닮은 러시아 음식문화

    길거리에서 닭꼬치 요리를 먹는 러시아 남성들.

    며칠 전 모스크바대학의 한 강사가 퀴즈를 냈다. ‘파리가 빠진 술잔이 나왔을 때 각 나라 국민이 보이는 반응은 무엇일까’다. 미국인의 경우 그 자리에서 ‘리콜’을 외친다. 독일인은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며 술집을 나간다.

    그렇다면 러시아인은? ‘손가락으로 파리를 집어낸 다음 술을 마시고 그 파리를 안주로 먹는다’가 정답이다. 이 강사는 “러시아인은 이미 술에 취해 있기 때문에 파리를 안주로 착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스크바 특파원에 부임한 지 13개월째. 그러나 아직까지 파리를 안주로 착각할 만큼 위생관념이 없는 러시아인을 만나보진 못했다.

    술과 노래 함께 할 수 있는 식당 최고 인기

    동양권에서 온 외국인들은 러시아인들이 음식을 가리지 않고 맛도 그리 중시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는다. 지난 주말 저녁 모스크바 시내 북부 베데엔하 지하철역 주변의 뷔페식당에 갔다. 밥값은 150루블(약 5700원)로 러시아 젊은 직장인들이 애용하는 식당이다. 손님 대부분이 접시 하나에 음식을 수북이 담았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많이 담은 탓에 음식을 바닥에 흘려 주위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러시아 젊은이들이 자리에 앉아 음식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들은 동서양 요리가 뒤섞인 음식들을 포크로 찍어 먹었다. 바실리 예브게니(27) 씨에게 “어느 음식이 가장 좋았느냐”고 묻자 “동서양 음식을 섞어 먹는 재미로 여기 온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는 ‘150여 다민족으로 구성된 러시아 국민으로서 퓨전 음식을 즐긴다’는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러시아인들의 독특한 식습관은 떠들썩한 음주문화와 맞닿아 있다. 회식 장소를 고를 때 술과 노래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식당을 최고로 꼽는 러시아 직장인들이 의외로 많다. 모스크바 남부 나묘트키나 거리의 한 독일식당은 이런 고객 욕구를 고려해 올해 식당에 노래방 설비를 들여놓았다.

    술잔이 돌고 노래가 시작되면 식사 시간이 길어지게 마련. 오후 6시에 시작한 저녁식사가 자정 넘어서까지 계속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가로등에 불이 켜지면 가게문을 닫는 여타 유럽 국가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저녁식사 문화를 보면 러시아를 유럽 대륙의 일부라고 부르기 어렵다”는 말이 실감난다.

    이런 문화는 오히려 동양과 비슷하다.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들도 러시아 음식문화에 쉽게 적응한다. 한 한국 기업인은 “러시아 딜러들은 맥주 한 잔 마실 시간에 비즈니스를 끝내는 유럽인보다는 독주를 돌려 마시며 밤새도록 이야기 나누는 한국인을 훨씬 더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물론 폭식과 폭음으로 비만, 당뇨 등 성인병을 앓는 러시아인이 많다. 그렇지만 늦은 밤까지 손님으로 북적대는 식당, 아침까지 불을 밝히는 뒷골목 선술집 모습은 당분간 바뀔 것 같지 않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