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3

2008.07.08

일본은 범죄의 천국? “천만에”

  •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iam@donga.com

    입력2008-06-30 17: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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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치안 선진국인 줄 알았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흉악범죄가 일어난다. 도저히 불안해서 못 살겠다.”

    일본에 온 지 몇 달 안 된 지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최근에는 외국인뿐 아니라 일본인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과거 일본은 범죄가 적은 나라였으나 매년 흉악범죄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의 이런 생각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일본 경찰청이 발표한 경찰백서에 따르면 살인, 강도, 방화, 성폭행, 성추행, 인신매매 등 중요 범죄는 2004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예컨대 2004년에는 2만2568건이었으나 2006년 2만 건 아래로 떨어졌고, 지난해에도 1만6922건으로 전년 대비 9.3%가 줄었다.

    일본의 범죄율이 얼마나 낮은 수준인지는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보면 더 명확해진다. 2002년 기준으로 일본의 살인사건 발생률을 100이라고 했을 때 미국은 467, 프랑스는 342, 독일은 267, 영국은 292에 이른다.

    그런데도 일본인들이 범죄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진다고 느끼는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TV의 영향을 꼽는다. 일본의 TV, 특히 아침 뉴스 와이드쇼 프로그램은 흉악사건이 일어나면 거의 모든 뉴스를 사건소식으로 ‘도배’한다. 실제로는 치안이 악화되지 않았는데도 TV 화면을 통해 보는 흉악사건이 늘어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체감치안’이 악화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실제는 범죄 감소 … TV 화면 사건 도배 체감치안 악화 착각

    일본의 주택사정과 관련한 상식에도 이와 비슷한 착각이나 오해가 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주택을 ‘토끼집’이라고 비하한다. 유럽 등의 주택에 비하면 일본의 집은 토끼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좁다는 뜻이다. 물론 일본의 주택은 미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좁다. 하지만 유럽에 비해서도 좁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2006년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평균적인 주택면적은 95㎡다. 이에 비해 프랑스와 독일은 90㎡, 영국은 87㎡ 등이다.

    이처럼 객관적인 통계와 전혀 다른 상식이 생겨난 원인은 무엇일까. 한 건의 오보(誤報)가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이 최근 정설이다. 과거 유럽공동체(EC)가 프랑스어로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일본의 주택상황에 대해 ‘Cage a lapins’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 프랑스어는 ‘토끼집’이라는 뜻과 함께 ‘도시형 공동주택’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보고서는 이 단어를 후자의 의미로 썼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정확히 알지 못한 일본 언론이 ‘토끼집’이라고 직역하는 바람에 ‘일본의 주택은 유럽의 주택에 견줘 현격히 좁다’는 잘못된 상식이 굳어졌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일본 집은 좁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도쿄 등 대도시만 생각한다면 이런 상식이 틀렸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다만 대도시만을 따지더라도 일본의 주택이 유럽의 주택보다 좁다는 건 잘못된 지식이라는 것이다.

    필자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의 한 비즈니스호텔에 숙박한 경험이 있다. 거기에 비하면 일본의 비즈니스호텔은 ‘스위트룸’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좁고 허름한 방이었다. 그렇다고 레이캬비크의 비즈니스호텔이 일본의 비즈니스호텔보다 숙박비가 싼 것도 아니었다.

    치안 걱정과 주거환경에 대한 불만은 최근 일본인들이 받는 큰 스트레스 중 하나다. 그런데 그 원인이 악의 없는 과잉보도와 오보 때문이라니,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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