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5

2006.07.25

‘드레퓌스’ 복권 100주년 양심과 정의는 살아 있나

  • 입력2006-07-19 16: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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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강 쪽에서 에펠탑을 바라보면 에펠탑 뒤로 넓은 잔디밭이 눈에 들어온다. 이 잔디밭의 이름은 ‘샹 드 마르스’. ‘전쟁신의 들판’이라는 뜻이다.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샹 드 마르스를 사이에 두고 에펠탑과 마주 보고 있는 사관학교 에콜 밀리테르에서 찾을 수 있다. 샹 드 마르스는 사관생도들이 훈련과 운동을 하던 연병장이다. 연병장에 이런 거창한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과장하기 좋아하는 프랑스인답다는 생각이 든다.

    7월12일 에콜 밀리테르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드레퓌스 사건’으로 유명한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의 복권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드레퓌스 사건은 1894년 9월 파리의 독일대사관에서 한 장의 메모가 발견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암호로 쓰인 메모는 프랑스 군사기밀을 기록한 것이며, 누군가 독일에 넘기려던 것으로 확인됐다. 군부는 드레퓌스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드레퓌스의 필체와 메모의 필체가 조금 달랐지만 군부는 그냥 밀어붙였다. 그는 비공개 군법회의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드레퓌스가 이처럼 비정상적인 처우를 겪은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유대인이라는 점. 군부는 당시 사회에 만연했던 반유대주의에 편승해 그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1896년 피카르 중령이라는 사람이 문제의 메모를 작성한 진짜 스파이를 찾아냈지만 군부는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진실이 언제까지고 감춰질 수는 없는 법. 2년 후 소설가 에밀 졸라는 신문에 ‘나는 고발한다’로 시작하는 유명한 글을 실었다. 대통령과 정치인, 군인들을 향한 편지 형식의 글이었다.



    이 글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듬해 마침내 재판이 재개됐다. 전 세계 수백명의 기자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재판을 지켜봤다. 마침내 1906년, 드레퓌스 대위는 최고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프랑스의 양심과 정의를 말할 때 늘 거론되는 사건이다. 요즘 프랑스에서는 프랑스가 드레퓌스 사건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들어 프랑스에서는 부쩍 이민족에 대한 ‘비호감’이 높아지고 있다. 유대인이나 무슬림에 대한 크고 작은 공격도 잇따른다. 북아프리카 출신이 대부분인 불법 체류자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요구하는 우파의 목소리도 높다.

    시라크 대통령도 이를 의식한 듯 기념식에서 “인종차별주의와 무관용주의에 대한 경계를 지속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프랑스는 과연 ‘드레퓌스의 망령’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걸까.



    파리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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