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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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사랑 각별 … 금연법 제정 차일피일

  • 입력2006-04-26 17: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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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한국에서 온 애연가 두 사람을 각각 파리와 로마에서 만났다.

    파리에서 만난 애연가는 신바람이 났다. 호텔 방이건 식당이건 어디서든 눈치 보지 않고 담배를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릴 수 있다는 점도 맘에 들어했다. 한국에서는 요즘 마음 편하게 담배를 피울 만한 곳이 없다는 게 그의 불만이었다.

    그런데 로마에서 만난 애연가는 화가 잔뜩 났다. 호텔 로비는 고사하고 호텔 방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흡연석이 있는 식당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저녁 술자리에서 담배를 피우기 위해 들락날락하던 그는 “한국도 술집에는 흡연석이 있는데 여긴 해도 너무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흡연에 관대한 나라다. 그런 두 나라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을 전면 금지했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이 같은 추세로 가고 있다.

    프랑스만 이런 흐름에서 예외다. 프랑스도 강력한 금연법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런저런 눈치를 보느라 아직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4월12일에는 “금연법 도입을 일단 미루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폭넓은 여론 수렴과 협의가 필요하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금연법 도입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발끈했다. 이들은 정부가 또다시 담배업자들의 로비에 손을 들었다고 비난하며 정부를 향해 “겁쟁이”라며 야유를 퍼부었다.



    프랑스의 흡연 현황을 보면 금연법 도입을 주저하는 정부의 고민이 이해가 간다.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 성인의 30%가 흡연자다. 비스트로, 카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요식업자들은 전면 금연이 시행되면 수입이 줄어든다며 반기를 들고 있다. 관광 대국을 자처하는 프랑스에서 요식업자들의 목소리는 어떤 나라에서보다 크다.

    현행법만 준수하더라도 식당 같은 공공장소에서는 흡연석과 금연석이 분리, 설치돼야 한다. 그러나 이를 지키는 곳은 거의 없다. 최근 한 일간지에 실린 사진은 프랑스에서 금연 캠페인이 얼마나 유명무실한지를 잘 보여준다. 법을 만드는 국회 건물 내 금연 표지 바로 앞에서 한 남자가 버젓이 담배를 피우는 사진이 실린 것.

    프랑스인의 담배 사랑은 각별하다. 카페에 앉아 담배를 물고 글을 쓰는 철학자 사르트르의 모습은 지식인의 상징으로까지 여겨졌다. 1550년대 프랑스에 담배를 들여온 포르투갈 주재 대사 장 니코의 이름에서 ‘니코틴’이라는 명사가 나왔다는 데서도 프랑스와 담배의 오랜 인연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금연 추세에 따라 프랑스에서도 대세는 금연으로 향하고 있다. 절반 이상이 담배를 피우던 1980년대에 비해 흡연자도 크게 줄었다.

    그러나 금연법 도입은 또 다른 문제다. 반대 여론에 부딪혀 큰 상처를 입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정치인도 앞장서서 ‘전면 금연’이라는 얘기를 꺼내기 힘든 게 프랑스의 현실이다. 이에 따라 내년 대통령 선거 전까지는 누구도 총대를 메고 나설 수 없을 거라는 자조 섞인 비판이 여권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파리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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