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5

2004.05.20

합법 취업자 차별 없이 불법 취업자 가혹하게

양면정책으로 불법체류자 확산 예방 … 고액 현상금 걸고 적발 땐 3년 징역형

  • 글·사진/ 타이베이=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한국언론재단 지원

    입력2004-05-13 15: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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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법 취업자 차별 없이 불법 취업자 가혹하게

    외국인노동자들은 대만에서도 제조업의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출신 가정부 스폰은 대만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오른쪽).

    #나는 타이베이의 가정부다

    나이는 스물일곱, 이름은 스폰이다. 대만에 온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나고 자란 곳은 인도네시아의 농촌. 요사이 가장 큰 고민은 요리다. 밥상 차리는 게 쉽지 않다. 재주껏 이것저것 내놓아도 가족들 입맛엔 맞지 않는 것 같다. 가족들은 모두 잘 대해준다. 특히 할머니는 내가 손녀딸 같은가 보다.

    대만 취업은 성공했다. 부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은 돈을 번다. 한 달에 1만 뉴타이완달러(약 36만원)를 받는데, 그중 9000뉴타이완달러를 고향에 송금한다. 인도네시아에 비해 대만은 월급을 참 많이 준다. 4년쯤 더 일하고 고향에 돌아가 결혼하고 싶다. 대만은 참 좋은 나라다. 나에게 행복을 준 천사다.

    #나는 타이베이의 불법체류자다

    나이는 스물셋, 친구들은 나를 난핑이라고 부른다. 외국인을 적대시하는 정부가 다시 집권해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학생비자로 들어와 현재는 불법체류 중이다. 중국어를 배운다면서 비자를 받은 뒤 나처럼 불법체류 신분으로 일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많다. 건강식품회사에서 일해 월 2만5000~3만 뉴타이완달러를 버는데, 모은 돈은 거의 없다.



    그냥 놔두는가 싶다가도 한번 단속이 시작되면 뿌리를 뽑는다고 들었다. 곧 대대적인 단속이 있을 거라는 소문이 돈다. 뒤를 봐주던 경찰 아저씨도 앞으로는 손써줄 수 없다고 말한다. 왜 대만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외국인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모르겠다. 대만 여자랑 결혼해 대만에 정착하는 게 현재로선 내 인생의 유일한 전략이요, 목표다.

    임금은 대만인 최저생계비에 못 미처

    합법 취업자 차별 없이 불법 취업자 가혹하게

    타이베이 시내 공원에선 외국인노동자 가정부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타이베이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 두 명이 제가끔 털어놓은 이야기다. 대만의 외국인노동자 정책은 ‘인간적인 대우와 비인간적인 단속’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가정부로 일하는 스폰 같은 합법노동자에겐 동일 직종의 내국인에 거의 준하는 임금과 근로 조건을 보장함으로써 불법체류자로 전환되는 것을 막고 있으며, 난핑처럼 불법취업 중인 외국인들은 고액의 현상금을 걸어놓고 서슬 퍼런 단속에 나서 뿌리째 뽑아낸다.

    대만은 한국이 올 8월부터 도입할 고용허가제의 원조다. 대만 역시 일제강점기를 거쳤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엔 한국과 비슷한 경제발전 과정을 밟아왔다. 아울러 중국 본토를 비롯해 아시아 각국에서 중국 민족의 외국 국적 노동자가 대만으로 흘러들었다는 점도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중국 동포(조선족) 노동자와 비견된다. 그렇다면 대만으로부터 한국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4월20일 오후 타이베이의 대표적 중산층 거주지인 장안구에 자리한 타안공원. 타안공원의 오후는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에서 온 가정부들의 차지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수다를 떠는 가정부들을 공원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점심을 먹은 뒤 가정부들은 돌보는 노인을 데리고 공원에 나온다. 노인들에게 바람을 쏘여주는 게 산책을 나온 목적이지만, 수발보다는 수다에 더 관심이 있는 듯했다.

    가정부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다. 대만 생활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이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무 그늘에 앉아 수다를 떨던 베트남 출신 가정부는 “베트남에선 여자들이 일할 곳이 전혀 없다”면서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다. 대만에서 계속 살고 싶다. 이렇게 공원에서 친구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오후 시간은 더없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베트남에서 온 가정부 알렉스(38)는 부부와 두 자녀, 80대 할머니로 이뤄진 가정에서 일한다. 월수입은 1만 뉴타이완달러. 대만 정부가 규정한 최저생계비(1만5840뉴타이완달러)보다 적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 집주인이 의료보험료 취업안정비 등을 알렉스에게 떠넘겼기 때문이다.

    합법 취업자 차별 없이 불법 취업자 가혹하게

    증권회사에서 일하는 인도 출신 노동자. 대만은 IT업종에서도 외국인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잘 자라고 있다는 편지를 받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알렉스는 버는 돈 중 7000뉴타이완달러를 본국에 있는 남편에게 송금한다. 알렉스는 급행료 1000달러(약 115만원)를 주고 대만에 왔다고 한다. 대만에도 송출비리가 있다. 한국의 경우와 비교하면 비교적 덜 심각한 수준. 가정부들은 “왜 본국 정부와 대만 정부가 가정부들이 송출회사에 돈을 뜯기는 걸 방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았다.

    대만은 외국인이 일할 수 있는 단순노동 직종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가정부는 외국인이 일할 수 있는 5개 직종 중 하나. 가정부를 비롯해 제조업 건설업 간병인 선원이 외국노동자를 쓸 수 있는 업종이다. 대만 정부는 또 외국인노동자를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5개국에서만 받아들이고 있다. 대만은 이들 국가들과 쌍무협정을 체결해 수요와 공급을 엄격하게 관리한다. 30개국이 넘는 국가에서 외국인노동자를 받아들이고 있는 한국의 상황과는 크게 대비된다.

    대만에서도 가장 많은 외국인노동자가 종사하고 있는 직종은 제조업이다. 대만 역시 외국인노동자들이 3D 업종의 버팀목 노릇을 한다.

    “대만 사람들은 이런 일 안 하려고 합니다. 3D 업종에서 대만인 노동자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예요.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대만인들은 또 야근을 절대 안 해요. 외국인노동자들은 다르죠. 잔업 수당을 받으려고 너도나도 야근을 하겠다고 나섭니다. 사용자 처지에선 내국인노동자보다 외국인노동자가 훨씬 낫습니다.”(싱진공사 주리펑 경리)

    대만에서도 외국인노동자의 임금은 내국인들보다 낮다. 야근 특근을 밥 먹듯 해야 겨우 내국인노동자의 80% 정도를 받는다. 대만 정부 관계자는 “외국인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 이상의 ‘기본급’을 받도록 돼 있다”고 강조했지만 취재팀이 만난 외국인노동자들은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었다.

    합법 취업자 차별 없이 불법 취업자 가혹하게

    외국인노동자들이 지하철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사용자 처지에선 내국인을 쓰나 외국인을 쓰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 사용자가 정부에 취업안정비를 납부하기 때문이다. 취업안정비는 내국인노동자의 실업보험 직업훈련 일자리 늘리기 등에 쓰인다. 대만 행정원 노공위원회 외노작업조 랴오웨이런 조장은 “취업교육비 취업안정비를 납부하면 외국인을 쓰나 내국인을 쓰나 사용자 처지에선 별반 차이가 없다. 대만의 고용허가제가 성공한 이유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저임의 외국인노동자를 받아들인 게 아니라 부족한 인력을 대체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타이베이에서 만난 외국인노동자들은 대만의 외국인노동자 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오히려 불법체류를 하면서 고임금을 받을 수 있는 한국이 인기가 훨씬 좋다는 것. 산업연수생으로 들어갔다 임금을 많이 주는 다른 직장에 취직해 의료보험료 고용보험료를 내지 않고 불법체류자로 일할 수 있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다.

    합법 취업자 차별 없이 불법 취업자 가혹하게

    외국인노동자들은 노공위원회 상담 창구에서 원스톱으로 민원을 처리할 수 있다.

    전자제품 부품공장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출신 프룽은 “외국인노동자가 가장 큰돈을 벌 수 있는 곳은 한국으로 알려져 있다. 송출비는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비싸지만 4~5년만 고생하면 빅 머니를 벌 수 있고 불법체류자 단속도 거의 없다고 소문나 있다”고 전했다. 도심의 지하철 공사현장에서 만난 베트남 출신 외국인노동자 역시 “한국이 대만보다 훨씬 유리하다. 고용보험료 의료보험료를 낼 필요가 없지 않은가. 대만에선 사용자가 사용자 부담의 보험료를 우리에게 전가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외국인노동자의 인권을 유린하고 불법체류자를 양산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한국의 정책이 더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이는 한국의 제도가 그만큼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화강국제인재유한공사(인력 수입 회사) 셴콴화 회장은 “한국의 경우 인도네시아 베트남에서 현지 사이드머니가 평균 3500달러(약 400만원)에 이른다. 대만은 매우 적은 비용으로 올 수 있는데도 한국을 고집한다. 태국 같은 경우는 대만 공급이 거의 끊겼다. 모두 한국을 원하기 때문이다. 웃기는 일이다”고 말했다.

    대만에서 외국인노동자의 노동법상 지위는 안정적이다. 외노작업조 랴오웨이런 조장은 “원칙적으로 대만 노동자와 동일한 대우를 받는다”고 강조했다. 대만에서 외국인노동자는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고용보험과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는다. 외국인노동자들은 의무적으로 고용보험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 건강보험료의 경우 사용자-정부-외국인노동자가 70대 10대 20의 비율로 납부한다.

    대만에서 외국인노동자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때는 1989년부터. 대만 역시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것과 비슷한 문제로 시달렸다. 92년까지 불법체류자가 10만명이 넘게 대만에 머물렀다고 한다. 92년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면서 대만은 엄격한 단속에 들어갔다. 적발된 외국인노동자에게 평균 3년가량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신고포상금제를 운영했으며, 미등록 외국인노동자를 둔 기업들은 가차없이 세무조사를 당했다. 지난 대선 직전엔 선거용으로 일제 단속이 이뤄지기도 했다.

    대만 정부에 따르면 대만의 불법체류자는 약 2만6000명으로 추정된다. 취업비자로 들어와 작업장을 떠난 경우가 1만1000여명, 관광비자로 들어왔다 돌아가지 않은 경우가 1만5000여명 정도다. 대만 정부는 불벌체류자 신고자에게 최고 30만 뉴타이완달러의 현상금을 지급할 정도로 단속에 적극적이다. 사용자들도 엄격하게 처벌한다. 불법노동자를 1명 고용하면 최고 9만 뉴타이완달러의 벌금형에 처해지고, 불법으로 고용한 외국인노동자가 2명을 넘을 때는 최고 30만 뉴타이완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는다. 신고포상금은 사용자들의 벌금에서 나오는 셈이다.

    불법체류자 고용한 업주도 벌금형 처해

    대만에서 불법체류자가 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일자리를 옮기는 외국인노동자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만에서 외국인노동자는 더 높은 임금을 찾아 직장을 옮길 이유가 없다. 임금 착취가 없어 직장마다 임금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 한국의 경우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왔다 작업장을 옮기면 임금이 서너 배로 뛰기도 한다.

    그러나 관광비자로 입국해 눌러앉은 외국인들은 불법체류자가 매우 적다는 대만에서도 골칫거리다. 이들은 주로 외국인 취업이 금지된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식당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의 상당수가 화교다. 화교들은 대만 정부에 민족적인 관점에 입각해 대우해달라고 요구한다.

    제시(27)는 미얀마 국적의 화교다. 대만 남자와 결혼해 영주권을 얻은 언니의 초청으로 관광비자를 받고 3년 전 입국, 불법체류 중이다.

    “대만 사람들은 왜 대륙 사람이나 화교들을 천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부자 나라에서 온 동포는 친구고, 나처럼 가난한 나라에서 온 동족은 추방 대상이라고 여기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미얀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 거주하는 화교들에게 대만은 기회의 땅이다. 제시 역시 기회를 찾아 대만에 왔다. 하지만 대만 정부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다른 외국인노동자와 똑같은 대우를 하고 있는 것.

    “불법체류 기록을 지우는 데 드는 비용을 모으는 게 급합니다. 그래야 다시 돌아올 수 있거든요. 기록을 지우는 데 필요한 6만 뉴타이완달러와 비행기 삯을 모으면 양곤행 비행기를 탈 거예요. 하나만 물어볼게요. 한국 사람들도 가난한 나라에서 온 동포를 천대하고 싫어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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