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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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判·檢 그 신성한 세계의 종언

  • 입력2007-02-26 10: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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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로 인기를 더해가는 MBC 메디컬 드라마 ‘하얀 거탑(巨塔)’의 주인공 장준혁(김명민 분)은 끝간 데 없는 출세욕을 좇아 수술용 메스를 휘두른다. 자타 공인의 실력파 외과의사라곤 하나, 교만한 그의 머릿속은 환자의 생명에 대한 외경보다는 밥그릇 챙기기를 위한 권모술수로 가득 차 있다. 한마디로 정치꾼의 전형(典型)이다.

    허구가 아닌 현실에서도 메스를 아무렇게나 놀리는 의사가 있다. 2월6일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열린 의료법 개정 반대 궐기대회에서 서울시의사회 한 간부는 메스로 자기 배를 그었다. 스스로를 수술 환자로 착각한 모양이다.

    이익단체인 의사협회가 나름의 논리를 들어 의료법 개정안에 반발할 수는 있다. 그러나 2000년 의약분업 파동 이후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이면 집단휴진을 밥 먹듯 함으로써 환자들에게 큰 불편을 끼친 것도 모자라, 이젠 의료법 개정을 외치는 국회의원과 소속 정당 대선후보에 대한 낙선운동까지 펼치겠다니 해도 너무한다 싶다. 거기에 자해 소동까지 벌였으니 환자의 배를 가를 수 있는 면허조차 아깝다. 의사들이 가진 면허는 자해용 흉기 사용 면허가 아니다. 과천으로 간 의사들에게 ‘장준혁’의 모습이 오버랩됐다면 과장일까.

    판사(判事)의 판단이 죽었다. ‘판사(判死)’한 것이다. 지방법원 근무 당시 해당 지역 조직폭력배 출신 기업가에게서 수차례 향응과 해외골프 접대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사표를 쓴 어느 판사 얘기다. 가장 명예로운 직종이라고 할 만한 법관이 그런 부적절한 행위를 저지른 걸 보면 문제의 판사는 사소한 일신상의 판단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부실한 인물이었던 셈이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판사 3명이 피의자의 동생에게서 골프 접대를 받고 피의자 소유의 아파트를 시세보다 싸게 사는 부적절한 처신을 해 사표를 낸 것이 언제던가. 불과 지난해 7월의 일이다. 이러니 법질서를 수호하는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나날이 허물어지는 건 당연지사다.



    판사(判死)한 판사에 이어 제이유그룹 로비의혹 수사에서 피의자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한 검사(檢事)도 검사(檢死)했다. 여기에 할복한 의사(醫師)도 의사(醫死)했으니 정말 믿을 사람이라곤 이도저도 없는 세상이다.

    신성해야 할 특별한 직역(職域) 세계의 씁쓸한 이면. 다행이랄까. 흠, 기자는 자(者)자 돌림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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