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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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안남자’에게 돌 던질 자격 있나

  • 입력2006-11-20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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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는 ‘문화일보’의 연재소설 ‘강안남자’를 읽지 않는다. 예전에 몇 번 보고는 그보다 더 읽어야 할 게 세상엔 널렸다고 깨달아서다. 이는 물론 오로지 기자의 개인적 견해다.

    청와대와 국정홍보처가 ‘강안남자’의 선정성을 이유로 문화일보를 무더기 절독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논조가 거슬리는 신문에 대한 정권의 신종 언론탄압”이라고 비판한다. 그 대척점엔 “종합일간지가 선정적인 소설을 연재하는 게 합당한가”라는 역비판도 존재한다.

    ‘강안남자’는 분명 선정성이 짙다. 또한 절독 결정은 구독자의 권리다. 그런데 말이다. 왜 결코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5년 넘도록 그 소설을 탐독하는 걸까? 몽땅 ‘음란서생(淫亂書生)’이어서일까? 무엇 하나 내 마음 같지 않은 세상, 아주 잠시나마 비루한 현실을 잊은 채 반문화적인 ‘판타지 픽션’에 빠지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강안남자’의 콘텐츠는 현란하다. 주인공은 ‘조철봉’이지만 등장인물은 많다. 다양한 캐릭터 덕분에 얘깃거리도 풍부하다. 그래서 감탄사가 남발되는 뻔한 스토리임에도 ‘낯가죽이 두껍고 뻔뻔스러운’강안남자(强顔男子)는 의외로 신선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참여정부의 ‘논픽션’인 ‘노(盧)의 남자’들은 어떤가. ‘코드 인사’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 ‘회전문 인사’…. 매번 새로울 게 없는 인물들의 단조로운 배열이다. 이번에 KBS 사장직 연임이 확실시된 정연주 전 사장을 보라! 그런데도 이 논픽션의 독자들은 절독할 권리가 없다. 이것이 픽션과 논픽션의 차이인가?



    이제야 주말 도심의 숨통이 좀 트이는가 했더니 그새 원상복귀다. 11월6일, 각기 12일과 25일로 예정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서울 도심 대규모 집회 불허 방침을 밝혔던 경찰청이 민주노총 집회(전국노동자대회)를 사실상 허용했다. 민주노총이 집회 장소를 광화문 일대에서 서울광장으로 옮겨 재신고하자, 경찰은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이다.

    집회 참가자들의 거리행진이 심각한 교통불편을 초래하므로 도심 집회를 제한하겠다는 당초의 취지는 어디로 갔는가?

    헌법상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는 중요하다. 하지만 집회와 무관한 개개인의 ‘행복추구권’도 그에 못지않게 존중돼야 한다. 오죽했으면 11월8일 어느 시민은 도심 교통을 막은 전국빈민연합의 군중과 다투다가 차를 몰고 돌진했겠는가. 통행권, 영업권, 소음에 따른 환경권을 침해받아야 하는 선의(善意)의 시민들이 이젠 일제히 클랙슨을 울리는 시위라도 현장에서 급조해야 할 판이다. 경찰의 ‘불발탄’ 때문에 이래저래 시민들만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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