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7

2002.08.15

“내 몸 속 다이옥신 몸서리쳐진다”

평택 소각장 인근 주민들 ‘혈중 농도 세계 최고’ 충격 … 암과 기타 질병 유발 공포

  • < 정현상 기자 > doppelg@donga.com

    입력2004-10-07 13: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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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몸 속 다이옥신 몸서리쳐진다”
    ”아침에 논일 나갔다 돌아오면 옷에 분진이 시커멓게 묻어나오고, 역겨운 냄새 때문에 하루 종일 골머리를 앓기도 했습니다. 그게 10년 넘게 지속됐으니 당연한 결과 아니겠습니까.”(성해2리 주민 이남희씨)

    8월1일 오전 11시경 경기 평택시 시청 상황실. 시민환경연구소 장재연 소장(아주대 의대 교수)이 “사업장 폐기물 소각업체인 ㈜금호환경 주변 주민들의 몸속에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세계에서 가장 높게 검출됐고, 3명은 다이옥신 때문에 암이 발병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자 참석했던 주민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환경운동연합 산하 시민환경연구소는 평택시의 의뢰로 지난 1~7월 안중면 성해2리 ㈜금호환경 인근 3km 이내 주민 10명을 조사한 결과 “혈중 다이옥신 농도가 미국 독일 일본 등지에서 보고된 10~20ppt보다 훨씬 높은 평균 53.4ppt로 나왔고, 최고 92.3ppt까지도 나왔다”고 밝혔다. ppt는 혈액 속 지방 1g당 다이옥신이 1조분의 1g 포함돼 있는 농도.

    10년 넘게 분진과 역겨운 냄새

    “내 몸 속 다이옥신 몸서리쳐진다”
    이는 국내 시화공단 주민들의 평균 다이옥신 농도인 16.6ppt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또 일본에서 다이옥신 오염으로 폐쇄된 오사카 노제소각로의 노동자들(39.7ppt)이나 고엽제 후유증으로 시달렸던 베트남 동나이 주민들(49ppt)보다 높은 수치다.



    특히 조사 대상자 가운데 위암환자 2명은 62.2ppt, 유방암 환자 1명은 92.3ppt로 나타나 다이옥신류에 노출된 것이 암 발생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고 연구소측은 밝혔다. 반면 폐암환자 2명은 장기간 흡연자였기 때문에 직접적인 발암 원인은 흡연인 것으로 나타났고, 이들의 혈중 다이옥신 농도는 23.5ppt로 낮게 나타났다.

    암환자 가족 3명과 일반 주민 2명의 다이옥신 농도도 평균 57.7ppt로 나타나 이 지역 주민 다수가 광범위하게 다이옥신에 노출됐을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임종한 인하대 교수(산업의학)는 “발암 원인이 오염된 공기 탓이라기보다는 토양오염 등으로 인해 다이옥신이 체내에 꾸준히 축적된 결과임을 보여주는 사례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성해2리 이장 김준태씨(41)는 “조사를 받지는 않았지만 내 몸 속에도 상당량의 다이옥신이 들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진다”면서 “어떻게 해야 암에 걸리지 않을 수 있느냐”고 연구진들에게 물었다.

    조사 대상자들의 혈액에서 검출된 다이옥신은 소각로에서 나오는 종류인 PCDF이기 때문에 소각장과 다이옥신 검출의 관련성은 분명하게 연결된다는 게 연구소측의 소견이다.

    인류가 만든 화학물질 중 최악의 독성물질로 알려진 다이옥신은 대기 음식물 물 토양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체내로 들어가게 된다. 이것은 밖으로 잘 배출되지 않고 체내에 축적돼 기형아 출산, 불임, 발암, 중추신경계 질환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장재연 교수는 “이 지역 주민들은 고농도의 다이옥신에 노출되어 있고, 이로 인해 암과 기타 질병이 나타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면서 “이번 조사에서 병행하지 못한 식품·토양·수질 오염을 추가로 밝혀낸다면 그 상관관계를 더 명확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 몸 속 다이옥신 몸서리쳐진다”
    시민환경연구소는 또 소각장 주변 주민 102명을 대상으로 산화성 손상평가(MDA)를 실시한 결과 250umol로 나타나 서울지역 비교군의 105umol보다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임교수는 “MDA 수치가 높으면 발암 가능성이 높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가 이뤄진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해 4월 소각장에서 발생한 대형화재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소각장에 쌓여 있던 폐기물 8800톤에서 불이 났는데, 소각장측에서는 자연발화라고 주장했지만 대책위 부위원장 김효중씨(50)는 “산업폐기물에 불을 내면 일반폐기물로 바뀌어 수십 배의 차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방화했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매년 소각장에서 뚜렷한 이유 없이 5, 6건의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말했다.

    이후 주민대책위원회가 발족돼 주민들이 농작물과 생활, 건강에 큰 피해를 입고 있다며 평택시에 정밀조사를 요구하자 시측에서 시민환경연구소에 의뢰하게 됐다.

    ㈜금호환경은 1988년부터 가동해 왔고, 1시간에 폐기물 3톤(1일 72톤)을 처리하는 중형 소각장이다. 한 주민은 “지난해 10월 신규 소각로가 들어서면서 조금 나아졌지만 그 전에는 아침에도 온 동네에 불이 난 것처럼 냄새 나쁜 연기가 자욱하게 깔렸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번 검사 결과에 대해 “공인된 검사기관을 통해 나온 결과이므로 신뢰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서 “소각장 일대를 울산공단처럼 특별개선대책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평택시 관계자들은 “여러 가지 상황을 검토해 봐야 안다”며 아직도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상황.

    주민 임흥락씨는 “댐에 작은 물구멍이 발견됐는데 그걸 그대로 방치하면 댐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면서 “당장 소각장 가동을 중단하고 대책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이번 조사에서 혈중 다이옥신 농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고, 6년 전 암에 걸린 이모씨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암에 걸렸다는 걸 알았을 때는 운명이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소각장 때문일 수 있다니…. 마을에 성한 사람이 별로 없지만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무슨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한편 지역 주민들과 환경운동연합측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공장 가동중지 가처분신청이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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