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2

2010.11.15

팔관회는 고려판 G20 정상회의였다

국민축제 겸 자주외교의 상징…외국 상인에 ‘팔관회적 질서’ 과시

  • 이영철 목원대 겸임교수 hanguksaok@hanmail.net

    입력2010-11-15 13: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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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관회는 고려판 G20 정상회의였다

    11월 11일 오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서울 G20 정상회의 환영 리셉션과 업무 만찬 모습. 이명박 대통령 왼쪽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오른쪽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다.

    고려 덕종 3년(1034) 9월, 정종(靖宗, 1018∼1046, 재위 1034. 9∼1046. 5)은 친형 덕종의 유명을 받아 중광전에서 17세의 나이로 제10대 국왕에 즉위했다. 당시 극동지역은 거란의 3차례 고려 침입 이후 고려, 송, 요 3국이 균형을 유지하며 세력을 정립하던 시기였고, 고려 내부적으로는 문벌귀족사회가 무르익고 있었다. 고려는 거란 침입 이후 ‘전후 정비책’으로 중앙집권화를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대외적으로 거란에 사신을 파견하는 화의책을 구사하면서 거란, 여진 등 북방 유목민족의 침략에 대비해 압록강 하구 영해(신의주)에서 도련포(광포)까지 천리장성을 축조했다. 내적으로는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을 수리해 빈민과 병약자에게 의복과 음식을 나눠주고 노비수모법(奴婢隨母法·소유주가 다른 노비 간 소생을 어머니 소유주에게 귀속시키던 법), 장자상속법(長子相續法) 등을 제정해 사회 안정책을 실시했다.

    각국과 물물교환 사헌무역의 장

    ‘고려사(高麗史)’ 권 제6 정종세가에 따르면 정종은 즉위하던 해 서경(10월 15일)과 개경(11월 15일)에서 팔관회(八關會)를 열고 대사면령을 내렸다. 개경 팔관회의 내용을 살펴보면 “중동(仲冬·11월) 보름 전후 사흘을 팔관 공휴일로 제정해 13일은 준비일, 14일은 소회일(小會日), 15일은 대회일(大會日)로 준비하게 했다. 왕이 팔관회를 열고 신봉루(神鳳樓)에 나가 백관에게 주연을 베풀고 저녁에는 법왕사(法王寺)로 행차했으며 이튿날 대회에서 다시 주연을 베풀고 음악을 즐겼다. 이때 동서2경(東西二京, 경주와 평양), 동북양로병마사(東北兩路兵馬使, ‘양로’는 강원도와 평안도), 4도호(四都護)와 8목(八牧)에서 각각 표문(表文)을 올려 축하했다. 송나라 상인들과 동·서번(여진), 탐라국에서도 방물(토산물)을 바쳤는데 그들에게 자리를 배정해 의례에 참가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후 이것이 상례가 됐다.”

    ‘고려사’에 나타난 팔관회 의식 절차를 보면, 대회가 열리는 날 밤에 궁중의 광장 중앙에 커다란 등 하나를 놓고 그 사방에 많은 등을 달아 찬란히 밝혔다. 그리고 등불 아래서 왕과 신하들이 함께 즐기고 부처와 천지신명을 즐겁게 만들어 나라와 왕실의 평안함과 태평을 빌었다. 이처럼 추수감사제이자 고려인의 단결심을 배양하는 국민 축제였던 팔관회는 외국 상인에게는 물물을 교환하는 사헌무역(私獻貿易)의 장이 되기도 했다. 고려왕에게 물품을 헌상하고 그 대가로 회사(回賜)를 받았는데, 이를 ‘팔관회적 질서’라 불렀다. 이는 당시 중국의 조공질서에 대응하는 고려의 자주적 외교자세를 보여주는 자긍심의 상징이었다.

    알고 보면 고려는 황제국 체제였다. 고려시대 묘지명이나 금석문을 보면 돌아가신 왕을 ‘선황(先皇)’이라 하거나, 당시의 국왕에게 ‘황제가 만세토록 살기를 원합니다(皇帝萬歲願)’라고 한 표현이 있는데 이를 통해 고려의 백성들이 실제로 국왕을 황제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황제국 체제는 제천(祭天), 즉 하늘에 대한 제사에서도 나타난다. 본래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존재는 하늘의 아들인 천자(天子), 즉 중국 황제뿐이었다. 그러나 고려 국왕은 제후국(諸侯國)의 왕이었음에도 중국 황제만이 할 수 있는 하늘에 대한 제사, 즉 원구제(圓丘祭)를 거행했다. 더불어 수도 개경을 황도(皇都)라 하고 개경의 내성(內城)을 황성(皇城)이라 표현했다. 외교적 측면에서는 제후국이었으나, 국내적으로는 황제국이라는 이중체제로 운영했음을 알 수 있다.



    팔관회는 본래 불교의식의 하나였다. ‘살생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며, 간음하지 말며, 헛된 말 하지 말며, 음주하지 말라’는 불교의 5대계(五大戒)에 ‘사치하지 말고, 높은 곳에 앉지 말며, 오후에는 금식해야 한다’는 3가지를 덧붙인 계율을 지키게 하는 의식이다. 이 8가지 계율을 하루 낮, 하루 밤에 한해 엄격히 지키게 함으로써 불교에 입문시키는 것이다. 이 8계를 수여하는 의식을 팔관회라고 불렀는데 지극히 종교적인 금욕과 수행을 목적으로 한 의식이다. 그런데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은 불교와는 무관한 ‘팔관’을 ‘밝은’의 음역(音譯)이라 주장한 바 있다.

    팔관회의 기원을 살펴보면 신라 진흥왕 33년(572) 10월 20일,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병사들을 위해 외사(外寺)에서 7일간 팔관회를 개설했으며 선덕왕 5년(636) 황룡사의 9층탑을 건립한 후 팔관회를 개최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신라의 팔관회는 개인이 아닌 국가가 주도했고, 재가자의 일시적 출가수행이라는 본래의 의미와는 달리 죽은 자를 위한 기복(祈福) 차원에서 진행됐으며, 나아가 호국불교의 성격을 띠고 개최됐음을 알 수 있다.

    팔관회는 고려판 G20 정상회의였다

    (왼쪽) 고려 5대 왕의 초상화를 봉안했다는 개성 만월대 경령전 터. 문화재청은 고려 왕궁이었던 북한 개성시 만월대를 시험 발굴해 건물 배치 형태를 일부 확인했다고 밝혔다. (오른쪽) 영화 ‘쌍화점’이 재현한 고려 왕궁. 고려시대에는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궁궐과 사찰 건축물이 많이 건립됐다.

    G20 통해 대한민국 국격 제고

    고려 태조의 훈요10조에 따르면 팔관회는 천령·오악·명산·대천·용신에 대한 제사인데, 이러한 제사는 팔관회 때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빈번히 거행됐다. 나라에 가뭄이 들면 민간에서 용의 그림을 걸어놓고 비를 기원하는 풍속이 있었는데, 이것을 왕이 듣고 국가적으로 무인(巫人)을 취합해 기우제를 행하거나 산천에 대한 제사를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따라서 이와 같이 빈번하게 거행되던 산천·용신·천령 등의 제사를 합사(合祀)해 매년 11월에 1회씩 국가의 전례(典禮)로 행했는데, 이를 훈요10조에서는 팔관회라 규정했다.

    단군 이래 최대 외교행사인 서울 G20 정상회의가 11월 11일, 12일 이틀간 열렸다. 대한민국은 아시아 최초 G20 주최국이자 의장국으로서 11일 오후 6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세계 정상을 위한 환영 만찬을 베풀고, 12일 서울 코엑스에서 정상회의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의장 자격으로 ‘서울선언’을 발표했다.

    그야말로 변방의 약소국이 동방의 등촉을 넘어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선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가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공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낸 대한민국의 저력이 빛나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G20 캐치프레이즈인 ‘위기를 넘어 다함께 성장(Shared Growth Beyond Crisis)’에 걸맞은 세계 경제의 최고 합의체로 G20이 발전하길 기원한다. 1000여 년 전 고려가 황제국을 표방하고 동아시아의 중심으로 팔관회적 질서를 확립했듯, 이번 서울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 속에서 욱일승천(旭日昇天)하고 우리의 아름다운 서울의 브랜드 가치도 더욱 높아질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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