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7

2008.08.05

일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오류

  • 입력2008-07-30 1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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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원에 간 마 부장

    “예? 제가요? 어떻게 이런 일이….”

    요즘 들어 부쩍 피로를 느끼는 등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찾았던 마장춘 부장은 의사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간암 초기라는 것이다. 그동안 회사생활과 수험생활을 병행해 피곤한 것이려니 하고 꾹 참아온 그였다. 하지만 극도의 피로감에 혹시나 하고 병원을 찾았다가 이런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얼마나 살 수 있나요?”

    “아니에요. 초기에 발견됐고, 부위도 괜찮아서 수술 없이 색전술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니, 세상에! 벌써 수술도 못할 정도인가요?”

    “수술도 못하는 게 아니라, 수술을 안 해도 될 정도로 상태가 괜찮다는 말씀입니다.”

    “암이라면서요? 세상에 그런 암도 있나요?”

    “의학기술이 발달해서 초기에 발견하면 치료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요.”

    “설마 암이 그렇게 쉽게 치료될 리가 있나요? 특히 간암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예전에 제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께서 간암은 일단 생기기만 하면 수술해도 경과가 좋지 않다며 저더러 술을 끊으라고 말씀하셨는걸요.”

    “아니, 목사님은 의사가 아니잖아요. 전 의사이니 제 말씀을 들으셔야죠. 지금 환자분께선 ‘부적합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고 계시네요.”

    “오류요? 무슨 말씀이세요? 꼭 목사님 말씀이 아니더라도 저도 주변에서 많이 봤다고요. 제 당숙도 20년 전 간암으로 돌아가셨고, 우리 회사 상무님 장모도 15년쯤 전 간암으로 돌아가시는 걸 제가 봤다고요.”

    “아니죠. 겨우 두 명 보시고 그게 일반화가 가능할까요? 환자분께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계시네요.”

    “또 오류? 의사 선생님, 세상에 간암으로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하십니까? 저도 로스쿨 준비하면서 오류에 대해 공부 좀 했다고요.”

    “아, 그렇죠. 그럼 그보다는 ‘근시안적 귀납의 오류’를 범하고 계시다고 봐야겠네요. 보통 간암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은 환자분보다 상태가 많이 안 좋거나, 의학기술이 지금보다 발달하기 전에 치료받았던 분들일 거예요. 그러니 너무 심려치 마세요. 암 치료에는 무엇보다 환자 자신의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중요하답니다.”

    “긍정적인 마음가짐만으로 어떻게 암을 이겨냅니까? 암이 무슨 감기몸살도 아니고. 의사 선생님께서 그렇게 무책임하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환자분께선 지금 ‘의도 확대의 오류’를 범하고 계시네요. 전 긍정적인 마음가짐만으로 암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치료에서 그게 아주 중요하다는 거죠. 아무튼 환자분께선 마음을 늘 밝게 가지시고요. 오늘부턴 당연히 술 드시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역시 제가 간암에 걸린 건 술 때문이겠죠? 간암 걸린 사람들은 전부 술 좋아하다가 천벌 받은 거예요.”

    “꼭 그렇진 않습니다. 술 안 드시는 분들 중에서도 간암 걸리는 분 많아요.”

    “간암 환자 중에 술 안 먹는 사람이 있다곤 해도, 술 먹는 사람은 죄다 간암에 걸리니까 술이 간암의 원인인 건 맞잖아요.”

    “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전부 간암에 걸리지는 않죠. 음주는 간암의 충분원인이나 필요원인은 아니에요. 다만 여러 가지 증거로 미루어 ‘확률적 원인’이라고는 볼 수 있죠.”

    “그나저나 의사 선생님, 저 같은 상태의 환자들은 생존율이 어느 정도 되나요?”

    “생존율이라고요? 환자분의 상태에서 ‘생존율’ 같은 무서운 말은 쓰기가 그렇고요. 이런 경우 보통 ‘완치율’이 80% 이상 되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선생님께서 직접 치료하신 환자들은 대체로 경과가 어땠나요?”

    “제가 환자분 같은 상태의 환자들을 치료한 결과 최근엔 거의 모든 분이 완치되셨습니다.”

    “네? 완치율이 80%인데 최근엔 거의 다 완치됐다면, 이제 한 번 정도는 못 고치실 때가 된 거 아닌가요?”

    “허허, 환자분. 환자분께선 지금 ‘도박사의 오류’를 범하고 계십니다. 어느 환자든 이런 상태라면 완치율이 80% 정도 된다는 것이니 마음 편히 가지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너무 엄청난 말을 들어선지 술 한잔이 간절하네요. 선생님, 진짜 오늘만 딱 한잔하고 다시는 마시지 않겠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겠죠?”

    “글쎄요, 저야 의사이니 당연히 안 드시길 바라는데….”

    “에이, 딱 보니 선생님도 술 좋아하게 생기셨는걸요. 선생님도 술 드시면서 저한테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환자분, 그건 ‘피장파장의 오류’죠. 제가 술을 마시는 것과 환자분의 상황이 무슨 관련이 있나요?”

    “아니, 의사 선생님. 제가 무슨 학생도 아니고 왜 자꾸 말끝마다 오류, 오류 하십니까? 원래 성격이 그러세요? 별것도 아닌 일에 이렇게 잘난 척이 심한 사람의 말을 제가 들어야 합니까? 진단은 옳게 하신 거 맞아요? 다른 병원에 다시 가봐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환자분, 제 성격 때문에 진단이 틀렸을 거라 생각하신다면, 그건 ‘인신공격의 오류’를 범하고 계신 겁니다. 진단은 진단이니 의사 말에 따라주세요.”

    “오류! 또 오류! 잘났어, 정말. 당신은 오류 안 범해? 당신도 지금 오류를 범하고 있어! 저 혼자 잘난 오류!”

    “환자분, 제가 말이 심했다면 사과드립니다. 전 단지….”

    화가 난 마 부장은 병원문을 박차고 나왔다. 하지만 그건 잘난 척 심한 의사에게 화가 난 게 아니었다. 의사에겐 벌써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의사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걸 모를 리 없는 그였다. 사실 그가 이토록 화가 났던 건 일밖에 모르고 살아온 자신의 인생, 그리고 자기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어, 용 과장. 시간 있나? 나랑 만나서 얘기 좀 하지.” 그에겐 오늘 무엇보다 친구가 필요했다.

    (합격의 법학원 ‘논리와비판연구소’ 제공, 다음 호에 계속)

    척척박사 하 선생의 LEET 돋보기

    ◎ 언어이해, 학문을 추억하라


    언어이해 시험에는 다양한 분야의 글이 나와요. 인문, 사회, 과학·기술, 문학·예술 등 네 개의 내용 영역에서 대략 열두 학문 분야가 출제되죠. ‘문사철’로 통하는 문학, 역사, 철학을 필두로 언어학, 사회학, 정치학, 물리학, 화학, 생명공학, 정보통신기술 등을 거쳐 음악, 미술, 평론, 스포츠 이론까지 현대학문의 전 분야를 아우른답니다. 그럼 다양한 학문 분야의 글을 두루 섭렵해야 할까요? 그럴 수만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언어이해가 그렇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시험은 아닐 거예요.

    언어이해 시험의 근본적인 목적을 생각해보지요. 이 시험의 출제기관은 언어이해 시험이 다양한 학문적 또는 학제적 소재를 활용해 법학전문대학원 교육에 필요한 언어이해 능력, 의사소통 능력과 종합적인 사고 능력을 측정하고자 하며, 다양한 학문 분야의 글을 통해 독서 체험의 폭과 깊이를 평가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이를 달리 말하면, 내용 영역의 다양성은 단지 소재일 뿐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이 시험이 중요하게 요구하는 것은 법학전문대학원 교육을 위해 필요한 사고 수준과 역량이라는 말이죠.

    지금까지 출제된 문제를 보면, 정규 대학교육을 정상적으로 마친 지성인이 종합적인 고등사고 능력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즉 4년제 대학의 일반교양 정도 내용이 다뤄지고 있어요. 여기서의 ‘일반교양’은 상식적인 수준의 ‘교양’이 아니라 학문으로서의 일반교양을 말해요. 그래서 언어이해 시험의 글에는 학문 고유의 문제, 탐구 대상, 탐구 방법들이 녹아 있어요. 그리고 일반교양 수준의 내용들이 비교적 긴 지문에 압축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지요. 내용만 따라가려 해서는 그 내용을 보기 어려운 구조예요. 일반교양 수준의 학문적 ‘시각’으로 보셔야 해요.

    사회영역 중 사회학 지문이 나왔다고 해보죠. 유명한 사회과학자 밀스가 쓴 ‘사회학적 상상력’에서 발췌됐다고 해봐요. 이 지문은 그저 아무렇게나 발췌된 것이 아니에요. 이 지문은 ‘이 시대의 불안과 무관심의 요소를 밝히는 것이야말로 사회과학자의 중요한 과제다’라는 사회학의 근본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사회과학이란 학문은 본래 사실을 가장 중시하고, 이 사실을 해석해 이론을 만들어요. 그렇다면 지문에도 ‘이 시대의 불안과 무관심의 요소’에 해당하는 사실이 있고, 이 사실에서 ‘불안’과 ‘무관심’을 읽어내는 해석이 소개돼 있겠죠? 이와 같이 사실, 해석 그리고 해석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과학적 ‘시각’으로 접근하면 지문의 내용이 훤히 보일 거예요.

    그럼 이번엔 과학·기술 영역 중 대기과학 지문이 나왔다고 해보지요. 지구온난화로 오존층 파괴 양상이 달라질 거라는 내용이 있다고 해봐요. 역시 자연과학적 ‘시각’으로 접근해야겠지요? 자연과학은 자연현상을 대상으로 해요. 겉보기에 복잡해 보이는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가설이나 모형을 제안하지요. 그리고 그 모형이 맞는지 경험적인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작업을 하기도 하고, 그 모형이 그럴듯한 경우에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설명하는 데 사용하기도 하지요. 이러한 자연과학적 사고방식으로 지문 내용을 파악하면, 어떤 모형이나 가설(지구온난화 모형과 단순화된 대기 모형)이 어떤 현상(지구온난화 현상과 이온파괴 현상 등)을 어떻게 설명(인과연쇄에 기반하는 대기역학)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거예요.

    인문이나 문학·예술 영역에 속하는 글은 어떻게 접근해야 좋을까요? 인문학자들은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에서 묻는 질문과는 성격이 다른,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역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람들은 어떻게 언어를 통해 생각과 의미를 전달할까?’와 같은 인간 본연의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고민해요.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 인문학자들은 나름의 해답을 개별 학문 고유의 개념으로써 설명하지요. 이러한 개념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인문학적 글을 이해하는 관건이에요. 소설, 연극, 미술, 영화, 비평 등과 같은 문학·예술 영역의 글들은 사람들의 생각을 말이나 글과 같은 언어로 표현하지요. 그래서 인문 영역이나 문학·예술 영역의 글은 사상을 이해하고 언어의 의미를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특히 명시적인 글을 넘어 글쓴이의 생각을 이해하고 글에 숨은 뜻(내포, 함의, 뉘앙스, 비유, 상징 등)을 잘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지요.

    결국 철학, 사회학, 물리학, 예술비평과 같은 개별적인 학문의 내용을 이해하고 아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특히 LEET 수험생 여러분은 정규 대학교육을 이미 받았으니, 일반교양 수준의 학문적 ‘시각’을 통해 접근하려는 마음가짐만 갖추면 될 거예요. 학문이라는 것은 결국 세상의 특정 부분에 호기심을 느껴 그에 알맞은 질문을 던지는 데서 시작해요. 다행스럽게도 학문이란 이름 아래 그러한 질문에 대해 얻어진 많은 유익한 정보가 체계적인 지식과 이론으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지요. 그리고 일반교양이 다루는 주제들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하죠. 일반교양 수준의 학문적 글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동안 잊고 있었던 학문적 물음과 시각을 추억해보세요.

    하상용 논리와비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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