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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업계도 자구책 마련하라” PF 위기·금감원 눈총에 중소형 증권사 울상

브리지론 장기화에 증권사 부담↑… 중소형 증권사 후순위채 비율 최고

  •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증권업계도 자구책 마련하라” PF 위기·금감원 눈총에 중소형 증권사 울상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월 2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월 2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자기 책임 원칙하에 유동성 리스크 관리를 잘한 기관과 그렇지 않은 기관에 차이를 둘 수밖에 없다. KDB산업은행 등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대주주와 금융사의 자체적인 자구 노력을 전제로 한 것이다. 특정 금융사를 말씀드리지는 못하지만 대원칙을 갖고 진행 중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해 12월 21일 ‘사전지정운용제도 현장 안착을 위한 퇴직연금사업자 간담회’에서 한 이 발언의 후폭풍이 거세다. 증권가는 금융감독원이 무리하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추진해 자금시장 불안을 촉발한 증권사들에 사실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라면서 신년부터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 원장은 1월 1일 신년사에서도 “부동산 PF, 해외 대체투자 등 고위험자산 리스크를 집중 점검해 손실흡수 능력을 확충하는 등 선제적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자기자본 대비 PF 비중이 높은 일부 중소형 증권사에 대해서는 신년부터 각종 조치를 예고한 상태다.

“업계 전반에 불안감 있어”

중소형 증권사들이 올해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부동산 PF가 경제위기의 최대 뇌관으로 부상하면서 증권사는 건설사와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 흥국생명 콜옵션 미행사 사태 등은 금융당국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겼지만 1월 17조 원 규모의 부동산 PF 자산유동화 기업어음 만기가 예정돼 있어 PF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최근 금융당국이 “증권업계도 자구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한 만큼 자체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우려했던 것보다 금융당국이 금융투자업계의 생존에 신경 쓰고 있다고 느꼈다”면서도 “업계 전반에 불안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PF 사업은 자금을 얼마나 원활하게 충당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갈린다. 증권사 역할은 마중물 붓기다. 증권사는 PF 사업 초기 시행사에 일시적으로 ‘브리지론(bridge loan)’을 제공하며 사업에 참여한다. 증권사가 마련한 브리지론은 토지 매입 등 부동산개발사업 인허가 단계에서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는 데 사용된다. 이후 기관투자자가 사업에 참여해 본 PF 자금이 충당되면 증권사는 단기 대출을 청산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브리지론을 턴다”고 표현한다.



문제는 지난해 부동산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기관투자자가 부동산 PF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PF 사업이 미뤄지면서 증권사가 부담한 단기 대출이 장기화되고 있는데, 지난해 기준금리가 급격히 인상된 만큼 관련 비용도 커지고 있다. 신용조사 전문업체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부동산 PF 유동화증권의 23%가 착공 전 사업장에서 발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평가업계 역시 이 같은 실태를 경고하고 나섰다. 한국기업평가는 “PF 우발채무 중 브리지론 비중이 크거나 비금융그룹 증권사의 경우 유동성 대응력 유지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특히 “조정유동성비율(유동성 부채와 우발채무를 합한 금액 대비 기존 유동성 자산의 비율)이 100%를 밑돌거나 근접한 일부 증권사는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는데,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지 않은 증권사에서 이 같은 양상이 드러났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국내 23개 주요 증권사 중 유진투자증권이 90.7%로 조정유동성비율이 가장 낮았고 대신투자증권(92.9%)이 뒤를 이었다. 다올투자증권과 교보증권은 조정유동성비율이 100.2%로 기준치에 근접한 모습을 보였다. 다올투자증권은 자기자본 대비 PF 비중도 84%로 증권사 중 가장 높았다(그래프1 참조). 중소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유동성 위기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다올투자증권, PF 비중 가장 높아

본 PF에 들어섰더라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내 주요 금융기관인 A 사는 지난해 참여한 PF 사업이 다수 무산될 뻔했다. 시행사가 당초 약정한 인출 후행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기한이익상실(EOD) 선언 목전까지 간 것이다. A 사 관계자는 “당초 자사는 인출 후행 조건을 내건 부동산 PF에는 참여하지 않았는데, 최근 완화적으로 PF에 참여하다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그간 금융기관은 주로 시행사가 개발인허가·토지 확보 등 인출 선행 조건을 충족해야 PF 자금을 조달해줬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유동성 장세가 펼쳐져 추세가 바뀌었다. ‘PF 붐’이 일면서 금융기관이 투자 기준을 느슨하게 푼 것이다. 시행사가 “일정 기간까지 특정 요건들을 충족하겠다”고 약정하면 PF 자금을 조달해주는 등 인출 후행 조건을 대거 수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사업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PF가 무리하게 추진되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인출 후행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PF 사업이 무산되더라도 선순위 채권자의 경우 피해가 적다. 문제는 후순위로 PF에 참여한 경우다. 한국기업평가는 “일반 증권사 사이에서 중·후순위 비중이 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했는데, 특히 중소형 증권사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졌다. 한국기업평가가 지난해 3분기를 기준으로 국내 주요 증권사의 변제순위별 익스포저(위험노출액) 비중을 조사한 결과 소형사>중소형사>중대형사>대형사 순으로 후순위채 비중이 컸다(그래프2 참조). 중소형 증권사가 부동산 PF의 약한 고리로 작용하는 셈이다. 최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의 청약 흥행이 실패하면서 부동산 PF 시장의 위기감이 다시금 커지고 있다.

“제 살 깎는 고통 감내하겠다”

부동산시장의 바로미터로 관심이 집중된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이 1월 3일부터 일반분양 정당계약을 시작했다. [뉴스1]

부동산시장의 바로미터로 관심이 집중된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이 1월 3일부터 일반분양 정당계약을 시작했다. [뉴스1]

금융투자업계는 ‘자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며 PF발(發) 위기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자회사를 매각하거나 인력을 줄이는 식으로 유동성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이창근 다올투자증권 사장은 1월 2일 신년사에서 “지난해 상반기 사상 최대 이익을 기록했지만 하반기 자금시장 불안으로 갑작스러운 위기를 맞이해 제 살을 깎아내는 고통을 감내했다”고 말했다. 다올투자증권은 지난해 12월 6일 배달의민족(우아한 형제들), 토스(비바리퍼블리카) 투자로 유명한 1세대 벤처캐피털(VC)인 다올인베스트먼트 매각에 나선 바 있다. 자사가 보유한 지분 전량(52%)을 매각하는 조건이다. 현재 우리금융지주가 다올인베스트먼트의 경영권 인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다올투자증권은 지난해 12월 22일 이사회 의결을 통해 단기 차입 한도를 2조8000억 원에서 3조 원으로 늘리기도 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유동성 확보 통로를 확장해둔 것이다. 유진투자증권(3000억 원), 현대차증권(3000억 원), BNK금융증권(800억 원) 등도 레고랜드 사태 이후 단기 차입금 한도를 늘리겠다고 공시한 바 있다. 이 밖에 다올투자증권, 케이프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지난해 희망퇴직을 신청받는 등 감원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금융계·건설계·연구기관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부동산 PF가 연착륙하도록 돕겠다는 계획이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1월 4일 국민의힘과 여의도연구원 공동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힘내라 우리 경제 도약하는 한국금융’ 토론회에 참석해 “금융시장 불안 요인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며,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의하는 가운데 기존 시장 조치를 보완·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시장이 얼어붙자 채권시장안정화펀드를 조성하는 등 긴급하게 유동성을 공급했다. 당시 한국은행, IBK기업은행 등이 기업어음과 회사채를 매입해 50조 원 상당의 시장안정화 조치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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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1372호 (p28~30)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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