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5

2016.02.17

김창환의 통계 인사이트

4차 산업혁명, 인류 미래를 말하다

다가오는 ‘노동력 풍요’의 시대…중간 과정에서 희생되는 사람들 어찌할꼬

  • 미국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 chkim.ku@gmail.com

    입력2016-02-16 16: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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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의 주요 이슈는 4차 산업혁명이었다. 자동차, 냉장고 등 모든 사물이 사이버 세계를 통해 연결돼 정보를 쌓고, 이렇게 쌓인 정보를 바탕으로 자율주행 자동차처럼 사람의 개입 없이 기계가 인공지능을 이용해 스스로 결정해나간다는 것이다. 자동차가 스스로 운전하니 대리운전기사, 택시기사, 버스운전사 등 수많은 직업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이어졌다.
    국내외 대부분 언론이 4차 산업혁명을 심도 있게 보도했다. 새로운 산업혁명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중산층을 몰락시켜 부의 불평등을 심화할 것이라는 염려가 줄을 이었다. 의사나 변호사 같은 대표적인 중상층 직업도 기계에게 자리를 내줄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고차원적 두뇌게임의 대명사였던 바둑에서도 기계가 인간을 앞서기 시작했다는, 재미있지만 불길한 소식도 들린다. 기계와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기계와 결합하고 협력할 수 있는 인간이 되라는 자기계발 기사도 잇따랐다.
    새로운 산업혁명은 정보 축적을 필요로 한다. 기계가 주어진 경로를 조건에 맞게 따라가도록 프로그래밍하는 게 아니라, 기계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확률적으로 판단하게 한다. 정보가 더 많이 축적될수록 기계의 정확도가 높아지고, 더불어 기계가 인간 노동을 대체할 가능성은 커진다.
    과거에는 영어를 한글로 번역하는 정확한 방법이 있다고 보고, 이 방법을 논리적으로 개발해 프로그래밍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일대일 매칭식 사고를 버렸다. 그 대신 이전에 영어를 한글로 번역했던 수많은 문서를 모두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기계에 입력한다. 그러면 기계는 과거 번역 경험에 기반을 둬 새로운 영어 문장의 의미를 확률적으로 계산한 뒤 번역한다. 더 많은 번역 정보가 쌓일수록 기계가 정확한 번역을 제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표본사이즈가 커지면 오차가 줄어드는 통계의 기본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기계가 전문직 노동까지 대체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기계를 소유한 소수 자본가와 기계를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극소수의 전문가만이 부를 쌓고, 나머지 대다수 평범한 사람은 실업 상태나 기계의 부림을 받는 처지로 추락하는 것일까. 인간의 노동이 필요 없게 되는 세상, 과연 인류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일까. 도대체 4차 산업혁명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노동이 필요 없는 천국?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류는 산업발전과 더불어 대다수 노동력이 기계에 의해 대체되는 경험을 이미 꾸준히 해왔다. 19세기 말에는 미국 노동력의 80%가 농업에 종사했다.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동력의 80%가 투입된 셈이다. 지금은 2%만이 농업 생산에 종사한다. 그것도 직접 생산에 투여되는 노동력은 1%뿐, 나머지 1%는 유통이다. 예전에는 80% 노동력이 투입돼 겨우 먹고살았는데, 이제는 1% 노동력만으로도 식량이 남는다.
    아일랜드 인구의 4분의 1이 굶어죽은 아일랜드 대기근이 19세기 중반에 있었다. 지금 아일랜드는 1인당 국민소득이 5만500달러인 최고 선진국이다. 복지 수준도 높아서 누구도 기근을 걱정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보릿고개라는 극심한 식량 희소성 시대를 겪었던 세대가 이제는 비만이 걱정인 시대를 살고 있다. 산업화 이전에는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식량 희소성의 시대를 살았지만, 지금 선진국들은 적어도 식량 면에서는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식량 풍요의 시대는 기계가 농업종사자를 95% 이상 대체한 결과다.  
    더 과거로 돌아가 보자.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기계를 파괴했던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던 시기는 19세기 초반이다. 모두가 알듯 산업혁명은 농업과 공업의 일자리를 줄였지만, 서비스 산업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해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두려움은 19세기로 한정되지 않는다. 20세기 중반에도 비슷한 공포가 있었다. 자본주의의 황금기로 일컬어지는 1960년대 초, 미국 사회는 기계가 인간 노동을 대체해 중산층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자동화는 기존의 직업을 없앨 뿐 아니라 이를 대체할 새로운 직업을 충분히 창출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예전에는 제조업에서 없어진 일자리가 서비스업의 일자리로 대체되었다. (중략) 하지만 오늘날에는 새로운 산업이 중간기술의 직업을 없앨 것이다.”
    오늘 신문에 실렸다고 해도 믿을 만한 이 문장은 1961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실렸던 기사의 일부다. 기계에 대한 두려움이 한창이던 64년 린던 존슨 대통령은 ‘기술, 자동화, 경제적 진보에 대한 국가위원회’를 설치했고, 이 위원회는 기술 진보와 기계가 고용을 없앨 것인지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자동화가 고용을 없애지는 않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지만 자동화의 효과가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모두가 알듯 60년대의 자동화는 일자리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이번에는 어떨까. 4차 산업혁명은 과거와 달리 일자리를 없애게 될까. 문제를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보자. 기계가 인간 노동을 상당수 대체하는 산업혁명은 생산성의 폭발적 증가를 의미한다. 경제발전을 결정하는 첫 번째 요소는 기술이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경제성장률을 높인다. 새로운 산업혁명은 제조업뿐 아니라 서비스업에서도 눈부신 생산성 발전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풍요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는 이야기다. 식량뿐 아니라 공산품과 기본적인 서비스에서 모두 풍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기본소득을 돌이켜보는 이유

    새로운 혁명이 일자리를 줄이는 현상의 함의도 간단치 않다. 인류는 처음으로 노동력 희소성의 시대에서 노동력 풍요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노동이 삶의 필요조건이 되는 제약의 세상에서 해방돼, 노동 없이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게 가능한 시대로 접어드는 것을 뜻한다. 경제의 근본 문제가 희소한 자원의 분배에서 풍부한 물자의 분배로 혁명적으로 바뀌게 된다.
    물론 인류가 이처럼 풍요의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고 단언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의 주제는 폭발적 기술 변화였지만, 지금 당장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기술 발전의 정체에 따른 성장률 둔화다. 성장이 둔화하면서 줄어든 계층 상승의 기회가 한층 더 현실적인 문제다. 앞서 살펴본 ‘4차 산업혁명론’의 장밋빛 전망을 받아들인다 해도, 변화 와중에 희생되는 인구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 남는다. 대량생산은 전체 인류를 풍요롭게 했지만, 도제시스템으로 재생산되던 장인계급의 몰락을 가져왔다. 4차 산업혁명이 중산층의 몰락을 초래할 것이라는 걱정과 비슷하다.
    다시 196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논쟁으로 돌아가 보자. 기술, 자동화, 경제적 진보에 대한 국가위원회는 자동화의 와중에 일시적으로 일자리가 없어져 고충을 겪는 사람을 위해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자고 제안한다. 오늘날 고용 기회가 적으니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주자는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결국 기본소득을 도입하지는 않았지만, 존슨 대통령은 ‘빈곤과의 전쟁’을 통해 미국 전체의 빈곤율을 큰 폭으로 낮췄다. 풍요의 시대에 빈곤 문제를 겪을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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