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7

2012.10.08

LG 3D안경 생산 기술 No. 1 꿈꾼다

3D 안경으로 매출 250억 원…4D 영화산업·패션안경 진출에도 박차

  • 구미화 객원기자 selfish999@naver.com

    입력2012-10-08 09: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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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 3D안경 생산 기술 No. 1 꿈꾼다
    (주)디엔알엔지니어링(이하 디엔알)은 3차원(3D) 입체영상 붐의 혜택을 톡톡히 봤다. 2008년부터 극장용 3D 안경을 제작한 디엔알은 영화 ‘아바타’(2009년 개봉) 흥행 덕에 2008년 5억 원이던 매출이 2009년 43억 원으로 급증했고, 2010년엔 114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4월부터 LG전자에 3D 안경을 공급하면서 매출 250억 원을 올렸다. 올해 매출 목표는 500억 원.

    적절한 타이밍, 선택과 집중

    2006년 정성천(49) 대표가 인수한 디엔알은 통신 단말기를 생산해오다 ‘아바타’ 개봉 전인 2008년 돌연 3D 안경 제작에 들어갔다. 3D 열풍을 내다본 선견지명이 있었던 듯하지만, 정 대표는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3D 영사시스템을 제작하는 지인이 극장용 3D 안경을 개발해 공급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해와 별 고민 없이 뛰어들었는데, 결과적으로 ‘아바타’ 후폭풍에 대비한 셈이 됐다는 것.

    3D 안경엔 편광방식과 셔터글래스(SG)방식 두 가지가 있다. 편광방식은 좌우 렌즈가 빛을 통과시키는 각도가 달라 오른쪽 눈과 왼쪽 눈으로 보는 영상에 차이를 만든다. 반면 SG방식은 양쪽 렌즈에 전자식 셔터가 달려 있어 순간적으로 한쪽 눈을 가림으로써 좌우 눈이 각기 다른 영상을 보게 한다. 그래서 편광방식을 화면분할, SG방식을 시간분할이라고도 하는데, 극장에선 대부분 편광방식을 이용한다. SG방식에 비해 가볍고 값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디엔알이 편광방식의 극장용 3D 안경을 제작해 한창 재미를 보던 2010년 정 대표는 세계가전쇼(CES)에 등장한 3D TV를 보고 SG방식의 TV용 3D 안경 개발을 검토했다. 3D 영화에만 의존해서는 오래갈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시제품까지 개발했으나 내장 배터리 때문에 무겁고 고가인 점이 걸림돌이었다. 그러던 중 LG전자의 필름패턴편광(FPR)방식 3D TV 패널 개발 소식이 들려왔다. TV에 별도의 필름을 붙여 2개의 상을 내보내고 안경 양쪽 렌즈로 각각의 상을 보는 방식이다. 극장에서처럼 편광방식 3D 안경이면 충분했다.



    디엔알은 국내외 유수 업체와 경쟁한 끝에 지난해 4월 LG전자에 납품할 3D 안경 생산업체로 선정됐다. 이후 극장용 안경 공급을 중단하고, LG전자 제품 생산에 전력을 쏟았다. 과감한 결단으로 선택과 집중을 한 덕에 지금은 LG전자의 3D 안경 전 모델을 디엔알이 공급한다. 정 대표는 품질면에서 대기업을 만족시키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고 말한다.

    “LG전자의 눈높이가 우리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고, 품질관리에 대한 직원 교육을 계속하면서 대기업 시스템을 갖춰가고 있다. 향후 디엔알이 독자적으로 제품을 만들 때 글로벌 넘버원을 가능케 하는 장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한다.”

    소비자와 직접 만날 날 가까워

    LG 3D안경 생산 기술 No. 1 꿈꾼다

    3D 안경은 수가공을 거쳐야 완성된다.

    디엔알에게 LG전자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실제로 디엔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LG전자에 3D 안경을 공급한다’는 한 문장에 대부분 신뢰를 보이기 때문. 정 대표는 그러나 디엔알이 LG전자 그늘에서 마음 편히 쉴 처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LG 일변도의 매출로는 안심할 수 없다. 머지않아 한계가 올 것이다. 실제로 무안경 3D TV가 나온다는 얘기도 있다. 그래도 4~5년은 버티겠지만 더 오래가는 기업이 되려고 틈틈이 준비한다.”

    디엔알은 지난해부터 극장용 4D 시스템 개발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3D 영화 덕에 지금 자리에 오른 만큼 영화산업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하겠다는 계획이다. 정 대표는 “4D가 언제 어떻게 보편화할지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때가 오면 디엔알은 분명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디엔알의 변신은 영화산업보다 패션산업에서 먼저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디엔알은 올가을 패션안경 사업 진출을 목표로 한창 막바지 준비 중이다. 고품질의 3D 안경을 제작해온 노하우를 십분 살려 선글라스와 스포츠 고글을 내놓을 예정이다.

    정 대표는 3D 안경 생산이 “3D(Dirty, Difficult, Dangerous) 업종”이라고 말한다. 디지털 혁명을 실현하는 3D 안경이 실은 디엔알보다 더 작고 열악한 환경에 있는 업체들이 납품한 부품을 이용할뿐더러, 아무리 장비가 좋아도 월 임금 100만~150만 원을 받는 아주머니 노동자의 수가공을 거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다소 과장해서 하는 얘기다. 그러나 아쉽게도 LG전자 3D TV에 달려오는 3D 안경은 물론 케이스 어디에도 ‘제조사 디엔알’은 드러나지 않는다. 제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침일 터.

    흔히 벤처 혹은 중소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한다. 그러려면 소비자가 먼저 변해야 할 듯하다. 작은 기업,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 만들면 일단 품질을 의심하는 관행이 없어지지 않는 한 벤처가 대기업 그늘에서 벗어나기란 요원할 테니 말이다. 대기업과 동반성장을 꾀하는 동시에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디엔알의 앞날이 궁금하다.

    인터뷰 ㅣ 정성천 대표

    “믿음 주는 착한 기업 되겠다”


    정성천 대표(사진)는 대학 졸업 후 2006년까지 대우통신, 텔슨전자, LG이노텍 등 줄곧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일했다. 사업 초기엔 경험, 자본, 기술 어느 하나 변변한 것이 없어 사람 잃고 돈 잃는 아픔도 겪었다. 영화 ‘아바타’ 이후 ‘대박’이 터진 뒤에는 일부 거래처의 시기로 시련도 겪었다.

    여러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LG 3D안경 생산 기술 No. 1 꿈꾼다
    “기술개발, 인맥관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신뢰다. 돌이켜보면 거래처와 신뢰관계에 금이 가면서부터 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발목이 잡혔다. 그래서 디엔알은 협력업체와의 신뢰관계를 매우 중시한다. 우리는 LG전자로부터 2개월에 걸쳐 대금을 받지만, 협력업체엔 1개월 안에 결제를 끝낸다. 몇 개월씩 어음 수억 원을 들고 불안해하던 시절의 기억 때문이다. 그 덕분인지 디엔알이 어려울 때 반드시 도와주겠다는 업체가 꽤 있다.”

    대기업과 동반성장이 가능하다고 보나.

    “먼저 신뢰도가 높은 사회가 돼야 할 것이다. 우리가 LG전자를 신뢰하는 것처럼 LG전자가 우리를 믿어주고, 소비자가 기업을 신뢰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믿음이 없으면 다른 살 방법을 모색하느라 전력을 분산하게 마련이다. 그러면 서로 손해 아닌가.”

    벤처기업이 오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2009년 4명이던 직원 수가 지금은 (비정규직 포함) 200명이 넘는다. 그들 가족까지 고려하면 1000여 명의 삶이 디엔알과 얽힌 셈이다. 그런데도 중소기업이 위기에 처하면 대표 혼자 모든 책임을 떠안고 정부는 나 몰라라 하는 구조가 아쉽다. 중소기업이 잘되면 세금도 많이 내는 만큼, 기업이 어려울 때 그 납세실적이 하나의 보호장치로 작용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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