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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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로 확 바꿔?

  • 입력2006-04-04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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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러로 확 바꿔?
    지난 3월9일 에콰도르가 자국 통화인 수크레화(貨)를 포기하고 미 달러화를 법정 통화로 사용하는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제 도입을 선언했다. 그동안 달러라이제이션 논의는 금융위기를 겪은 중남미를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제기되어 있지만 이번 조치를 계기로 급격하게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이 제도의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에콰도르는 왜 자국통화를 버리고 달러화를 사용하려는 것일까. 도대체 달러라이제이션이 세계 경제-사회에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국제 금융시장에서 가장 안정성이 높은 통화는 뭐니뭐니해도 미 달러화다. 따라서 어느 나라가 달러화를 법화로 채택하면 통화의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금리가 안정되고 인플레 억제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반면 중앙은행은 통화주권을 상실, 독자적인 정책 수립이 불가능하다. 정치적으로는 독립됐다고 하더라도 경제적으로는 미국에 종속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에콰도르는 달러라이제이션을 통해, 이른바 신경제를 통해 사상 최장 기간의 호황을 만끽하고 있는 미국의 덕을 보겠다는 속셈을 품고 있다.

    한편 경제적 소국인 에콰도르는 그렇다 치더라도 브라질과 함께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을 주도하는 아르헨티나가 달러라이제이션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은 세계 경제에 심상치 않은 조짐을 예고하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지구촌 경제가 단일시장으로 나아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각국 통화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세계 단일통화로서의 미 달러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EU(유럽연합)가 지난해 초 의욕적으로 유로화를 출범시켰지만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이 아직 미흡하고 일본 엔화 역시 역부족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이와 관련, 미 연방준비이사회(FRB)는 자국의 부담이 늘어날 것을 우려해 달러라이제이션 확산에 부정적이지만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센터(CSIS)는 중남미가 일단 역내 통화동맹을 출범시켜 달러화를 부분적으로 사용한 뒤 여건이 성숙되면 중남미 전체가 달러화를 통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미국 내에서도 견해는 엇갈리고 있다. 여하튼 달러라이제이션 논쟁은 비영어권 국가의 영어 공용화 논쟁과 맞물려 21세기에도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질서가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우리 나라와 같은 개도국들은 미국의 경제정책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FRB의 영향은 막강하다. 주식 투자자들은 한국은행보다 FRB의 금리정책에 귀를 더 기울이고 있는 형편이다. 전날 그린스펀 의장이 의회에서 어떤 증언을 했는지, 다우와 나스닥 지수가 어땠는지 살펴본 뒤 투자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3월12일 연구 보고서를 통해 한은의 위상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앙은행 중 가장 취약할 뿐 아니라 금리정책 역시 선진국과 달리 시장에 대한 영향력이 거의 없다고 실토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명분을 중시하는 국민정서상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우리 나라에 달러라이제이션이 도입될 경우 한국은행은 존재 이유를 잃게 될 것이다.

    세계경제가 글로벌화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영어 공용화 논쟁과 더불어 달러라이제이션 도입 논의는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그러나 실리냐 자존심이냐는 가치 판단에 앞서 우리는 한은이 제 위상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마련해 주었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정부는 한은이 물가안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갖고 통화신용 정책을 펼치는 데 협력했는지 냉철한 자기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여건이 마련됐는데도 한은의 역할이 미미했다면 달러라이제이션은 검토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중앙은행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수록 이 제도는 당위성을 갖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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