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3

2008.04.29

서울 성북갑 정태근 당선자 外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8-04-24 1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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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30일 임기가 시작되는 18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금배지를 다는 초선의원은 137명. 그중 ‘차세대 리더’ ‘주목받는 초선’으로 꼽히는 28명을 7주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서울 성북갑 정태근 당선자 外

    1964년생<br>홍익사대부고<br>연세대 경제학과<br>서울시 정무부 시장

    서울 성북갑 정태근 당선자 “서청원, 홍사덕 복당 허용해선 안 돼”

    -정태근에게 정치란?

    오랫동안 뜸 들인 그는 ‘생활’이라고 답했다.

    -생활이란 뭔가?

    “서민, 국민의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다. 맹자도 무항산무항심(無恒産 無恒心·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마음을 지키기 어렵다)이라고 했다.”



    그는 운동권 출신이다.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지냈으며, 1985년 미 문화원 점거농성을 배후에서 조종했다. 그래서 3년간 옥살이를 했다.

    -1980년대의 정태근과 지금의 정태근은 뭐가 다른가?

    “민주화운동은 80년대의 시대정신이다. ‘사회 정의’와 ‘체제(體制) 정의’를 위해 싸웠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뜻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 게 없다. 다만 지금의 시대정신은 서민 대중의 삶에 있다고 여긴다.”

    18대 총선에서 금배지를 단 정태근 전 서울시 부시장은 ‘재선급 초선’이다. “정치를 보는 눈이 깊고, 날카롭다”는 평을 듣는다. 오세훈 서울시장, 원희룡 의원(3선) 등과 함께 2000년 한나라당에 영입됐다. 16, 17대 총선 때는 유재건 의원에게 석패했다.

    그와 이명박(MB) 대통령의 인연은 조금 독특하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 그는 MB의 경쟁자이던 홍사덕 전 의원 캠프에서 일했지만, 시장후보 경선이 끝난 뒤 이 대통령의 요구로 ‘MB 캠프’에 인터넷본부장으로 합류했다. 지난해 대선 때는 경호팀과 수행팀을 이끌며 MB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그는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조정래의 장편소설 ‘한강’을 꼽았다. 근현대사를 가로지르며 이 땅에 살아온 서민 대중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란다. 그는 통합민주당 소속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낙선한 이유를 이렇게 분석한다.

    “서민 대중의 삶과 유리된 정치를 했다. 삶에 실질적으로 와닿는 정치를 하지 못했다. 이 대통령의 뉴타운이나 버스 준공영제 같은 게 모범이라고 여긴다.”

    그는 신(新)보수그룹을 상징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한나라당 소장파 모임 미래연대 공동대표를 맡아 패거리문화 청산과 당의 개혁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홍사덕 전 의원과 서청원 전 의원의 복당에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정 비리에 연루된 사람과 박근혜 전 대표 때 탈당한 사람을 당이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경기 일산동구 백성운 당선자“당내에서 제 목소리 내겠다” (1949년생 고려대 법학과 제18회 행정고시 경기도 행정부 시장)

    행정가 출신 의원 당선자. 20년 전 경기 고양군수를 거쳐 경기도 부지사를 지냈을 만큼 행정가로 성공가도를 달려온 그가 일산동구에서 노무현 정부의 거물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꺾으며 화려하게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백 당선자는 MB가 서울시장 시절 전국 시·도지사협의회 사무총장을 맡은 것을 인연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행정관료 출신이면서도 ‘기업가적 마인드’를 지닌 점이 MB의 눈에 들었다는 후문이다.

    이후 행정가 경험을 살려 안국포럼 시절에는 비서실장직을, 경선 캠프와 대선 선대위에서는 상황분석실장을 도맡았다. 나아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MB가 행정실장직을 맡길 정도로 그의 행정가적 수완은 정평이 나 있다. 실무 능력뿐 아니라 정무적 판단도 기민하고 섬세하다는 평가다.

    백 당선자는 오래전부터 후배 공무원들 사이에서 ‘조용한 리더십’의 표본으로 불려왔다. 그만큼 자신의 주장을 앞세우기보다는 논리와 실력으로 상대방을 압박하는 스타일이다. 행정가 특유의 ‘무거운 입’도 MB가 그를 곁에 둔 한 원인이 됐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팀워크를 앞세우기 때문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역시 상대적으로 덜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안국포럼 내에서 누구도 백 당선자가 ‘킹 메이커’였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백 당선자가 선거 중 MB에게 보인 ‘굳건한 믿음’ 또한 화제가 됐다. 잠시 MB의 인기가 추락하면서 경쟁자와 10% 이상의 지지도 격차가 벌어졌는데, 당시 일부 후보들이 MB 사진을 포스터에서 지우는 와중에도 그는 끝내 ‘MB정부 실세’와 ‘일꾼론’을 강조하는 뚝심을 선보이며 역전에 성공했다.

    한나라당 내 친이명박 대통령계(親李)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떠오른 안국포럼에서도 백 당선자의 위상은 새삼 주목을 끈다. 이춘식 전 서울시 부시장과 함께 포럼 내 최고참급 멤버이기 때문.

    그동안 자신의 목소리를 앞세우지 않았던 백 당선자는 “앞으로 당내에서 제 목소리를 내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실제 당내 원로그룹과 친분이 깊어 신진세력과의 중간고리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 성북갑 정태근 당선자 外

    1962년생<br>대구 청구고<br>고려대 영문과<br>서울시 정무부 시장

    서울 노원갑 권영진 당선자“평등에 멍든 교육 획기적 개선”

    정치 데뷔 10년 만의 늦깎이 금배지다. 그러나 ‘서울시 부시장’이라는 만만찮은 이력과 정치 동기들 가운데 재선 이상인 의원도 여럿일 정도로 무게감이 느껴진다.

    ‘정치철학’에 대한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나눔과 배려’라고 선언한다. 아무리 ‘386 대표주자’라지만 한나라당 소속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독재와 독식으로 일관된 정치가 우리 사회와 경제에 역기능으로 작용한 부분이 많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기본 바탕 역시 나눔과 배려다. 이것이 공정하고 활력 있는 경쟁의 밑바탕이 된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박사학위 논문을 쓸 만큼 일찍부터 외교·통일 분야 전문가였는데….

    “소명의식이 앞섰기 때문인데, 지금은 ‘통일’을 내세울 때가 아니다. 이제는 20년간 획일주의와 평등주의에 멍든 교육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 싶다. 노원 지역을 택한 이유도 이런 교육철학을 실험해보고 싶어서다.”

    한나라당 386의 맏형 격인 그는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방송원고를 쓰며 MB와 연을 맺었다. 고려대 출신이라는 연결고리가 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사람 보는 눈이 깐깐했던 권 당선자가 MB를 ‘발견’한 셈이다. 이 때문에 ‘신MB계’라는 딱지에도 개의치 않겠다는 눈치다. MB의 국정철학에 공감하며, 최전선에서 활동하겠다고 자신한다.

    -그럼에도 당신은 여전히 진보인가?

    “물론이다.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문화와 행태다. 진보진영에서도 구태의연한 인사들이 많다. 이념과 가치의 선언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나는 여전히 진보다.”

    1987년 고려대 대학원 총학생회장으로 격동의 세월을 보낸 그는 조세희 씨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꼽는다. 통일부 연구원과 여의도연구소를 거쳐 지난 17대 총선부터 노원갑과 인연을 맺었다.

    권 당선자는 “무엇보다 상계동 이미지로 대표되는 노원을 매력적인 도시 브랜드로 바꾸고 싶었다”며 “노원을 교육특구로 변모시키는 것은 물론, 우리 사회의 선진화를 위해 10년간 준비해온 역량을 마음껏 펼쳐보겠다”고 강조했다.

    서울 성북갑 정태근 당선자 外

    1967년생<br>경희고<br>고려대 정치외교학과<br>YTN기자

    경기 포천·연천 김영우 당선자“한반도 대운하는 MB 소신”

    “한반도 대운하는 대통령이 ‘하기로 마음먹은 일’이다. 물론 나도 대운하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밀어붙이기식으론 안 된다. 절차가 중요하다.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김영우 당선자는 18대 국회에서 대운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대운하 삼총사’로 불리던 이재오 박승환 윤건영 의원이 낙선하면서 그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4월14일 그는 이춘식(비례대표), 김효재(서울 성북을), 강승규(서울 마포갑), 정태근(서울 성북갑), 조해진(밀양-창녕), 권택기(서울 광진갑), 박준선(용인 기흥), 김용태(서울 양천을) 당선자와 소주잔을 기울였다. 당 안팎에선 ‘MB직계’ 격인 이들이 세력화해 파워그룹으로 등장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 당선자는 이른바 ‘MB 패밀리’의 일원으로 MB 머릿속에 든 정책 기조를 가장 잘 꿰뚫고 있는 ‘18대 국회의원’이다. MB가 공부하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YTN 기자 출신인 그는 MB가 서울시장으로 일할 때부터 정책 브레인 노릇을 해왔다. MB가 설립한 국제전략연구소(GSI)에서 4년 동안 한 달에 두 번씩 주말을 이용해 MB와 학습토론을 했다. MB가 각종 사안을 바라보는 ‘틀’은 이 학습모임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예컨대 MB의 대북정책인 ‘비핵·개방 3000’ 구상도 GSI가 산실이다. 남성욱·현인택 고려대 교수, 남주홍 경기대 교수, 서재진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이 참여한 학습토론이 산파 구실을 했다. ‘나들섬 프로젝트’의 ‘나들섬’은 김 당선자가 작명한 것이다.

    그는 전문가 집단 5000여 명을 분야별로 정리해 데이터베이스화한 뒤 이들을 MB에게 소개했으며 MB의 공약 중 국가의무교육 프로그램, 치매·중풍 노인 국가수발 제도 등의 골조를 세웠다. 또한 외곽에서 대운하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장석효 전 국가경쟁력강화특위 대운하TF 팀장과 함께 대운하의 얼개를 만들고 전문가들을 영입했다.

    김 당선자는 “옛날 스타일의 정치는 국민들에게 감흥을 주지 못한다. 대화와 타협을 바탕으로 ‘일 중심’의 정치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한나라당이 서민 경제를 한 단계 높이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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