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25

2022.02.04

“4차원 같다”는 소리 들어도 놀랍지 않은 이유

[궤도 밖의 과학] 수학적이고 기하학적인, 차원의 명확한 정의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입력2022-02-10 10: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GETTYIMAGES]

    [GETTYIMAGES]

    “4차원 같다.” 종종 눈치 없고 괴짜 같은 사람에게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지만, 보통은 엉뚱한 매력을 가진 이를 이같이 표현한다. 차원이라는 단어는 이렇듯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만약 물리학에서 차원이라는 용어가 나오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차원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써야 할까.

    차원이라는 개념은 기원전부터 존재했다. 고대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는 저서 ‘원론’을 통해 점, 선, 면, 입체를 각각 점은 부분이 없는 것, 선은 폭이 없는 길이, 면은 길이와 폭만 있는 것, 입체는 길이와 폭과 높이를 갖는 것으로 정의했다. 여기에 차원을 붙이면 점은 0차원, 선은 1차원, 면은 2차원, 입체는 3차원이 된다. 차원 앞에 붙는 숫자의 의미부터 차근차근 알아보자.

    프랑스 철학자이자 과학자 르네 데카르트. [GETTYIMAGES]

    프랑스 철학자이자 과학자 르네 데카르트. [GETTYIMAGES]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한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무언가의 정확한 위치를 결정하고자 ‘좌표’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이는 임의 차원의 유클리드 공간을 나타내는 좌표계 중 하나인데, 여기서 차원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간단히 ‘차원’이란 한 점의 위치를 정확히 결정하는 데 필요한 수치의 개수다.

    오직 점 하나만 존재하는 세상이라면 부분이 없는 점 안에서는 위치를 정할 수 없다. 그래서 점은 0차원이다. 하지만 선이 되면 기준점으로부터 다른 한 점의 거리를 알 수 있다. 최소한 하나의 수치만 있어도 위치를 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선은 1차원이다.

    망망대해 한가운데 혼자 떠 있다면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면에서는 갈 수 있는 방향이 두 가지라서 이제 수치가 2개 필요한 2차원이 된다. 같은 방식으로 높이가 포함된 입체는 3차원이다. 고층 아파트에 사는 먼 친척 집을 찾아갈 때 아무리 지도상 위치를 정확히 알아도 몇 층인지 모르면 도착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더 높은 차원으로 가면 굉장히 복잡해지기 때문에 이쯤에서 각 차원의 특성을 비교하며 이야기해보자.



    1차원 세계에 사는 개미가 있다고 가정하자. 곡선이건, 직선이건 선 위에 사는 개미의 눈에는 오직 선 끝 점만 보일 것이다. 2차원 세계에 사는 개미에게는 보이는 모든 것이 선이다. 원이든, 삼각형이든 옆면에서 보면 전부 똑같은 선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3차원 세계라면 모든 것은 면으로만 보인다. 마치 면 외에 다른 형태가 보이는 것 같아도 잘 생각해보면 전부 가상의 정보다. 피카소의 입체주의는 3차원 세상 속 대상을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포함된 여러 시점으로 그림을 그렸기에 유명해졌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혁신이었다.

    그렇다면 3차원이 실제로 어떤 형태인지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간단하다. 4차원 이상 세상에서 3차원을 보면 된다. 우리가 낮은 차원의 점이나 선을 한번에 볼 수 있듯이, 4차원에서는 진짜 입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4차원으로 가보자.

    [ETTYIMAGES]

    [ETTYIMAGES]

    우리가 사는 세상이 몇 차원인지 확인하는 방법

    프랑스 수학자 쥘 앙리 푸앵카레. [GETTYIMAGES]

    프랑스 수학자 쥘 앙리 푸앵카레. [GETTYIMAGES]

    과거에는 3차원에서부터 내려오는 형태로 차원을 상상했기에 유클리드는 입체의 끝은 면, 면의 끝은 선, 선의 끝은 점이라는 표현을 썼다. 아쉽게도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3차원이 넘는 차원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랑스 수학자 쥘 앙리 푸앵카레의 생각은 달랐다. 기존과 반대로 차원을 정의한 그는 “끝이 0차원인 점이 되는 건 1차원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끝이 1차원인 선이라면 2차원, 끝이 2차원 면이라면 3차원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올라가면 끝이 3차원 입체가 되는 건 4차원이라는 새로운 차원이 된다. 계속 이런 방식으로 가면 입체가 차원 꼭대기가 아니라, 더 높은 차원까지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점을 움직이면 선, 선을 움직이면 면, 면을 움직이면 입체, 그렇다면 입체를 움직이면 입체 다음 단계인 초입체가 등장한다. 다시 말해 선은 2개 점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면은 4개 선, 입체는 6개 면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렇다면 간단하다. 초정육면체 역시 8개 정육면체로 둘러싸여 있으면 된다. 물론 4차원 공간에서만 가능한 형태라서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입체도형도 8개 정육면체로 둘러싸일 수는 없다. 초정육면체 외에 다른 4차원 형태는 더 복잡하긴 하지만, 중요한 건 차원에 기하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 차원을 떠올려보자. 만져보면 입체감이 있고 보기에도 그렇지만, 과연 정말 3차원일까. 사실 우리는 현실 세계 빛을 통해 눈 안쪽 평평한 망막에 맺히는 2차원 정보를 보고 있을 뿐이다. 물체의 상은 평면이 되지만, 좌우 안구가 떨어진 만큼 상의 어긋남을 바탕으로 깊이라는 정보가 추가된다. 즉 우리가 3차원으로 보인다고 믿는 세상은 실제 존재하는 3차원이 아니라 뇌에서 임의로 재구성된 가상의 3차원일 뿐이다.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차원까지가 우리 세계

    [GETTYIMAGES]

    [GETTYIMAGES]

    그렇다면 혹시 세상이 2차원은 아닐까. 2차원과 3차원을 비교해 확인해보면 정확하다. 다행히 2차원에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3차원에만 존재하는 개념이 있다. 바로 뚫린 구멍이다. 2차원 도형 위에서 아래로 구멍을 뚫으면 그저 2개 도형으로 나뉠 뿐이다. 하지만 3차원에서는 도넛 모양으로 뚫린 구멍이 가능하다. 우리가 사는 차원이 몇 차원인지에 대한 여러 가설이 있지만, 만약 2차원이었다면 현재 우리 몸과 같은 구조는 불가능하다. 위상수학(공간 속 물체의 점, 선, 면 등 특성을 토대로 위치와 형상을 탐구하는 수학의 한 분야)적으로 입부터 항문까지 뚫려 있기 때문에 진즉에 몸이 둘로 나뉘었을 테니까.

    일단 3차원 세계에 살고 있다 가정하고, 더 고차원일 경우도 알아보자. 만약 3차원 구가 자기 세계로 2차원 원을 데려가면 과연 원이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 2차원 존재는 3차원 물체의 단면밖에 볼 수 없기에 알고 있는 단어로 최선을 다해 보이는 것들을 설명한다 해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도 역시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차원까지를 우리 세계라고 본다. 물론 여기에 시간 차원이 빠져 있다. 우리가 4차원이라 부르는 시공간은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 차원을 더한 결과다. 그런데 굳이 왜 시간 차원은 1차원일까. 시간 차원이 2차원 이상이라면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경우가 발생한다. 과거와 미래가 섞여 구분할 수 없게 되면서 당연하게 생각하던 인과관계가 전부 틀어진다. 그래서 시간은 공간처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의 방향성을 갖고 한쪽으로만 이동할 수 있다. 이게 현재까지 우리 세계 차원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내용이다.

    직선은 두 점 사이를 잇는 길이가 최소인 선으로 정의된다. 반대로 곡선은 최소가 아닌 선이다. 매우 명확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사실 차원이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진다. 두 점이 찍힌 구를 2차원으로 보면 직선은 구의 표면을 따라 휘어서 지나가는 선이다. 하지만 3차원에서 길이가 최소인 선을 그리면 구를 뚫고 지나간다. 즉 직선이라는 정의조차 우리가 속한 차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절대적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떠한 똑바름이나 휘어짐도 알아챌 수 없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우주가 얼마나 휘었는지를 통해 빅뱅 이후 우리가 어떻게 현 구조를 이루게 됐는지를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주의 곡률을 구하는 건 인류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미국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GETTYIMAGES]

    미국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GETTYIMAGES]

    직선 정의가 차원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영원히 우주의 곡률을 구할 수 없게 돼버릴지도 모른다. 여전히 우주가 몇 차원인지조차 정확히 모르는 슬픈 지적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사는 4차원 시공간이 과연 절대적인지 질문을 던졌다. 관측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시공간은 늘어나거나 줄어든다. 이게 바로 상대성이론이다. 그리고 여기는 다행히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빛이라는 하나의 절대적 기준이 존재한다. 자연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두 점을 잇는 길이가 최소인 선이며, 오직 진공 속 빛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완벽한 직선을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곡률을 구할 때 우주배경복사라는 빛을 이용한다. 또한 여전히 쉽지 않은 차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자 멈추지 않고 노력하고 있다.

    정사각형이 인식한 3차원 세상

    1884년 영국 빅토리아 시대 언어학자이자 신학자 에드윈 애보트는 최초 SF ‘플랫랜드’(Flatland: A Romance of Many Dimensions)를 대중에게 선보였다. ‘다차원의 로맨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소설은 정사각형이 경험한 3차원 세상에 대한 수기다. 간단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납작한 2차원 세상에서 살아온 존재가 3차원 세상을 접한 뒤 다시 돌아와 자기 경험담을 말한다. 그러다 불온한 사상을 전파한다는 이유로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그만큼 차원에 대한 개념은 설명하기 쉽지 않고, 누구에게도 이해시킬 수 없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위대한 과학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이 책 미국판 서문에서 이렇게 평했다. “우리가 아는 한, 공간의 여러 차원을 인식하는 방법을 가장 잘 소개한 작품이다. 단순히 기하학의 지식을 재치 있고 재미있게 다룬 것이 아니라, 우주와 우리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까지 담고 있는 한 편의 학위논문과 같은 소설이다”라고.

    차원이란 인류의 사고를 뛰어넘는 개념이다. ‘플랫랜드’의 정사각형은 그나마 본인이 다녀온 3차원 세상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지만, 우리는 오직 과학적 사고만으로 미처 가보지도 못한 고차원 세계를 상상하고 관련 가설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고를 뛰어넘는 개념을 사고한다는 것, 이게 바로 차원보다 위대한 과학자들의 끈질긴 집념이다.

    궤도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