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가상인간, 신에게 도전장 내밀다

[궤도 밖의 과학] 로지·김래아·FN 메카·린나… 윤리적 고민 시작할 때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가상인간, 신에게 도전장 내밀다

신들의 왕 제우스 몰래 불을 훔쳐
인류에게 전해준 프로메테우스. [사진 제공 · 프라도 미술관]

신들의 왕 제우스 몰래 불을 훔쳐 인류에게 전해준 프로메테우스. [사진 제공 · 프라도 미술관]

신에게 도전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흔하다. 기독교 ‘성경’에 적힌 내용에 따르면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하늘에 도달하기 위해 바벨탑을 지었다. 익숙한 그리스 신화 속 반인반수 마르시아스는 아테나 여신이 버린 관악기를 주워 태양의 신 아폴론에게 악기 연주로 도전장을 내밀었고, 신이면서도 인간의 편에 섰던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왕 제우스 몰래 불을 훔쳐다 인류에게 전해줬다. 물론 욕망과 도전의 상징이던 모든 행위는 압도적인 절대자로부터 철저히 짓밟히며 비극으로 끝이 났지만,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도전의 역사가 여전히 기록으로 남아 있다.

나약한 인간을 보는 신의 관점에서는 대부분 무모했다. 하지만 다양한 도전 방식 가운데 가장 난해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목표는 바로 인간을 창조하는 행위다.

‘생명’이라는 단어의 정의조차 간단히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생명 창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복잡하기 그지없는 인간을 만들어낸다니, 결코 가능할 리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2014년 3월 미국 뉴욕대 연구진은 인간처럼 세포에 핵을 보유한 효모의 염색체를 인공적으로 합성해냈다.

이를 이용하면 인간이 필요로 하는 기능만 극대화한 슈퍼 효모를 생산할 수 있다. 심지어 같은 해 5월 미국 캘리포니아 스크립스연구소 연구진은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 외에 X와 Y라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염기를 만들었다. 모든 생물은 공통으로 A, T, G, C 4가지 염기로 이뤄져 있는데, 기존 염기들에 새로 만든 염기를 추가한 뒤 대장균에 주입해 복제한 것이다.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던 염기를 이용한다면 특별한 능력을 보유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렇게 기존 자연 상태를 벗어나 인위적인 생명체를 만드는 학문 분야를 합성 생물학이라고 부른다. 위대한 도전이긴 하나 아직은 인간을 창조하기 위한 시도라기보다 인간에게 유용한 미생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가깝다. 이제 인간을 창조하려는 과학자들은 현실 속 생물학에서 가상공간 속 공학 영역으로 눈을 돌렸다. 사실 연결되는 부분이 전혀 없는 무관한 분야 간 이동이라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도전에 가깝다.



만약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면 인간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인간과 닮은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현실이 아니라 가상공간에서라도 말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컴퓨터 속 이진법 데이터만으로 이뤄진 존재는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로 활용됐다. 2017년 개봉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여주인공 ‘조이’는 비록 인공지능 홀로그램이지만,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다. 영화에 등장한 가상의 존재는 현실에서 실제 배우 덕분에 구현될 수 있었다. 지금은 SF 속 상상에 불과하던 가상인간이 최신 과학기술과 함께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인공지능 간 치열한 경쟁으로 완성되는 가상인간

가상 인플루언서 김래아(왼쪽)와 로지. [@rozy.gram 인스타그램 캡처, @reahkeem 인스타그램 캡처]

가상 인플루언서 김래아(왼쪽)와 로지. [@rozy.gram 인스타그램 캡처, @reahkeem 인스타그램 캡처]

초기 가상인간은 사실 인간이 직접 말하면서 조종하는 인형에 가까웠다. 1990년대 활동한 추억의 사이버 가수 ‘아담’이 실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은 한 번 보기만 하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당시 기술력의 한계로 외모는 비현실적으로 단순화된 입체도형에 가까웠고, 얼굴을 감추고 노래하는 별도의 가수가 존재한 반쪽짜리 가상인간이었다.

하지만 최근 주목받는 가상인간은 과거와 확실히 다르다. 열차 안에서 두 팔을 한껏 뻗으며 여럿이 함께 군무를 추는 소녀가 사람이 아니라고는 믿기 힘들다. 오히려 대중은 화려한 몸짓과 함께 흘러나오는 노래가 얼마나 중독성 있는지, 혹은 어느 그룹에 소속된 아이돌인지 궁금해할 뿐이다. 추후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놀랍게도 ‘로지’라는 이름의 그녀는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가상인간이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팔로어 수가 10만 명을 훌쩍 넘어선 가상 인플루언서다. 이미 로지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와 화보를 촬영하거나 세계 각지를 여행하고 있고, 다양한 기업으로부터 구애받아 10억 원 이상 광고 매출도 달성했다. 이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봐도 여전히 기술력에 놀랄 따름이라, 언젠가 가상인간이 영화나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등장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마저 든다.

올해 초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1)에 연사로 나서 제품을 소개한 ‘김래아(Reah Keem)’, 영상 누적 조회수 10억 회가 넘는 세계 최초 인공지능 래퍼 ‘FN 메카(Meka)’, 음반회사와 계약하고 정식 가수로 데뷔한 인공지능 여고생 ‘린나(Rinna)’ 등 다양한 가상인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11명의 가상 소녀로 구성된 인공지능 걸그룹도 등장했다. 이제 과학기술은 사이버 가수 아담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발전했다. 모델의 움직임을 토대로 컴퓨터그래픽을 만들어내던 모션 캡처라는 기술도 끊임없이 진화해 센서를 부착하는 번거로운 과정 없이 보유한 영상만으로 동작의 디지털 기록이 가능해졌다.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배우의 표정과 몸동작을 실시간으로 따라 하기도 한다.

세상에 없는 가상의 얼굴 역시 인공지능이 합성해낸다. 먼저 수많은 인물 사진을 보고 특징들을 분석한 뒤 현실에 존재할 법한 그럴듯한 이미지로 재창조한다. 여기엔 ‘생성적 적대 신경망’(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GAN)이라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사용된다. 사실 ‘적대’라는 표현은 ‘선의의 경쟁’에 가까운데, 알고리즘 안에서 가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생성자와 만들어진 결과물을 평가하는 판별자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한다. 간단히 비유해서 핼러윈데이를 맞아 흡혈귀 코스프레 대회가 열렸다고 치자. 생성자 역할을 하는 친구는 지원자를 매혹적인 흡혈귀로 만들려고 분장, 소품, 의상 등을 활용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판별자 친구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더 창백한 얼굴을 요구하거나 날카로운 송곳니를 보여달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매우 수준 높은 가짜 흡혈귀가 탄생하는 것처럼, 같은 방식으로 가상인간의 이미지나 영상이 만들어진다.

세계 최초 인공지능 래퍼 FN 메카(왼쪽). 음반회사와 정식 계약한 인공지능 여고생 린나. [@fnmeka 인스타그램 캡처, 사진 제공 · 마이크로소프트]

세계 최초 인공지능 래퍼 FN 메카(왼쪽). 음반회사와 정식 계약한 인공지능 여고생 린나. [@fnmeka 인스타그램 캡처, 사진 제공 · 마이크로소프트]

인간과 가상인간을 구별할 수 없는 시대가 올까

기존에 존재하던 수만 개의 얼굴, 움직임, 표정을 통해 완전히 독창적인 가상인간이 탄생했다. 가상인간의 목소리 역시 셀 수 없이 많은 음성 정보를 수집한 뒤 학습 과정을 거쳐 실제 사람처럼 들리게 한다. 최근에는 딥러닝 기술을 통해 녹음된 말소리들을 음절 단위로 조합해 독특한 억양이나 미세한 호흡까지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자연스러운 음성을 넘어 숨겨진 감정이나 개성까지 나타낼 수 있게 됐다. 만들어진 음성에 따라 얼굴 모양과 입의 위치, 표정 등을 자동으로 표현하는 기법은 이미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단순히 나오는 음성 신호에 맞춰 입을 벌리고 오므리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 하지만 마치 실제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하거나, 눈썹과 눈까지 적절하게 표정 짓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기본적인 입 모양의 공통 특성과 역할을 학습시킨 후 해부학, 인지과학, 심리학처럼 무관해 보이는 학문 분야까지 적용해야 구현이 가능하다.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보유한 사진이나 영상을 다른 원본과 합성하는 딥페이크(Deepfake) 기술도 있다. 실존하는 타인의 얼굴을 원하는 특징이 드러나도록 합성한 뒤 생성된 얼굴을 원래 영상에 다시 삽입하는 형태로 제작한다. 최근 불법적인 방식으로 활용된다는 기사를 많이 접하다 보니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적절한 용도로 사용한다면 수많은 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영화 ‘분노의 질주’ 주인공으로 유명한 배우 폴 워커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팬들의 곁을 떠났다. 한창 촬영 중이던 영화는 크나큰 난관에 봉착했고, 결국 체격과 생김새가 비슷한 그의 두 형제가 도와 무사히 개봉될 수 있었다. 여기서 활용된 기술 역시 컴퓨터그래픽이었는데, 만약 딥페이크 기술이 지금처럼 충분히 발전한 시기였다면 마지막 장면에서 폴 워커의 모습은 훨씬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이제 오래된 과거에 갇힌 유명인이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 인물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문제는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촬영한 장면과 정교하게 섞으면 어색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심지어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가상인간들은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들에 비해 수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방송인은 대부분 카메라 앞에 서는 시간 외에도 꾸준히 자기 관리를 해야 하지만, 가상인간은 인위적으로 의도하지 않는 이상 피부 상태에 이상이 생기거나 살도 찌지 않아 언제나 완벽한 외모를 유지할 수 있다. 화장이나 스타일링도 직접 미용실에 가 긴 시간 여러 전문가로부터 도움을 받을 필요 없이 사전에 준비된 도구 상자를 이용해 비교적 쉽게 변경할 수 있다. 당연히 나이도 먹지 않기 때문에 활동 기간도 제작사가 무한대로 설정할 수 있으며, 원하는 만큼 마음껏 늘릴 수도 있다. 학창 시절을 경험한 적이 없어 왕따나 학교 폭력 등 과거 사건 및 사고 자체가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가장 유리한 건 사생활에 대한 어떠한 욕망이나 의지도 없기에 복잡한 개인적 이슈가 발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등장 시점은 물론, 앞으로도 영원히 소속사와 상의 없이 개인적인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결코 없을 것이다.

물론 가상인간의 궁극적인 완성을 위해서는 희미하게 남아 있는 어색한 느낌을 지우는 과정이 필요하긴 하다. 윤리적 문제에 대한 고민도 시작해야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똑같은 강물 속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강물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시대 흐름 속에서 새로운 강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쉼없이 노를 저어보자. 미래가 현재로 바뀌는 순간은 포착할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이니까 말이다.

궤도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주간동아 1315호 (p56~58)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317

제 1317호

.12.03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