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08

2021.10.01

미국 개인소비지출 3% 감소하면 한국 수출 40% 준다

[홍춘욱의 투자노트] 수출 의존도 높은 한국은 공급사슬의 끝… 정보 비대칭에서 비롯한 채찍효과

  • 홍춘욱 이코노미스트·경영학 박사

    입력2021-10-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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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서 한국 주식시장이 세계 최저 수준의 배당 성향을 기록하는 이유를 살펴봤다. 핵심은 ‘기업이익 변동성’이었다. 이익 변화를 예측하기가 워낙 어렵다 보니, 이익을 최대한 유보하려는 동기를 갖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래프1’은 한국 기업의 영업이익과 수출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수출이 증가할 때는 이익이 늘어나지만 수출이 조금만 위축돼도 실적이 급격히 악화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수출의 변화 방향을 예측할 수 있을까.

    최종 소비자로부터 멀어질수록 더 커지는 ‘채찍효과’

    한국 수출의 변화 방향을 예측할 때 가장 도움이 되는 변수는 미국 개인소비지출이다. ‘그래프2’에 나타난 것처럼 미국 개인소비지출이 조금만 움직여도 한국 수출은 격렬하게 반응한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이다. 당시 미국 개인소비지출은 3% 감소하는 데 그쳤지만 한국 수출은 40%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런 현상을 경영학계에서는 ‘채찍효과’라고 부른다. 채찍효과란 채찍 손잡이 부위를 몇㎝만 움직여도 채찍 끝부분이 몇m 이상 움직이듯, 공급사슬망(Supply Chain)의 가장 끝에 위치한 기업들이 월등히 큰 주문 변화를 겪는 현상을 말한다.

    가장 먼저 채찍효과를 발견한 곳은 세계적인 생활용품 제조업체 프록터앤드갬블(P&G)로, P&G의 아기 기저귀 물류 담당 임원은 수요 변동을 분석하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장영재, 2010, ‘경영학 콘서트’ 264쪽). 아기 기저귀라는 상품 특성상 소비자 수요는 늘 일정한데 소매점 및 도매점 주문 수요는 들쑥날쑥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문 변동의 폭은 ‘최종 소비자 → 소매점 → 도매점 → 제조업체 → 원자재 공급업체’로 이어지는 공급사슬망에서 최종 소비자로부터 멀어질수록 더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한국이나 중국, 혹은 일본이 미국과 유럽 등 서구권 경제 변화에 민감한 이유는 수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아 공급사슬 끝에 위치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채찍효과가 발생하는 가장 직접적 원인은 정보 비대칭에 있다. 정보 비대칭이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정보력의 격차를 뜻한다. 수많은 정보 가운데 어떤 것이 핵심 정보인지를 걸러내는 능력의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중고차 시장이다. 미국 경제학자 조지 애컬로프는 1970년 발간한 논문 ‘레몬시장: 품질의 불확실성과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정보 비대칭성 문제를 처음으로 파헤쳤다(George A. Akerlof, 1970, The Market for “Lemons”: Quality Uncertainty and the Market).



    중고차 시장에서 자동차 공급자는 자신이 공급하는 중고차의 품질을 정확히 아는 반면, 구매자는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시장에 있는 중고차의 절반은 제대로 된 좋은 자동차이고 나머지 절반은 보기에만 그럴듯하지 실제로는 제시 가격에 훨씬 못 미치는 가치를 지닌다고 가정해보자. 구매자는 이런 비율을 알고 두려움에 떨면서 중고차를 사러 간다. 그들은 ‘레몬’을 잡을까 봐, 즉 잘못된 자동차를 사게 될까 봐 두려워하며 매우 조심스럽게 자동차를 구매한다. 하지만 어쩌다 레몬을 선택하는 것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소비자는 일단 가격을 깎고 본다. 좋은 자동차를 평균 시세보다 싸게 산다면 이전 거래로 입은 손해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 경기 조금만 나빠져도 동아시아 수출국 큰 타격

    중고차 시장과 달리, 현실에서 기업들은 소비자의 속내를 알지 못해 골머리를 앓는다. 2008년 여름 갑자기 고객이 줄어든 소매점포가 있다고 해보자. 이 점포의 매니저 입장에서 별별 생각이 다 들 것이다. 자기 점포의 진열이 별로인지, 아니면 주변에 경쟁 점포가 대대적인 할인 판매를 하는지, 혹시 불황이 시작된 것은 아닌지 고민하느라 밤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결국 그의 선택은 정해져 있다. 물건이 팔리지 않아 재고가 늘어나는 것을 방치할 수 없으니 판촉 활동을 강화할 것이다. ‘2+1’ 혹은 ‘1+1’ 상품을 진열대에 즐비하게 깔아놓는다. 그러나 오히려 매출은 더욱 줄어든다. 가격을 할인한 만큼 물량이 더 많이 팔려야 하는데, 물량 증가가 미미하니 매출이 늘어날 수 없다.

    결국 가을이 다가와서야 진실을 알게 된다. 전국적인, 아니 세계적 불황이 시작된 것이다. 자신을 포함한 인접 지역 모든 점포의 매출이 감소했음을 알게 된 후 가장 먼저 할 일은 제조업체에 전화를 거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 폭락과 은행의 연쇄적 파산 영향으로 매출이 앞으로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으니 “주문을 줄이겠다”고 통보해야 한다.

    유통업체로부터 ‘주문 삭감’ 전화를 받은 제조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유통업체와 달리 제조업체는 신속하게 생산량을 조절하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부품업체들에 다음 달 생산 물량을 모두 주문해놓은 데다, 근로자들과 1년 혹은 그 이상 기간으로 고용계약을 맺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핵심 인력을 해고했다 경기가 신속하게 회복되면 경쟁사들에 밀려 자칫 파산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제조업체들은 일단 근로자를 교대로 무급휴가를 보내는 방식으로 생산량을 줄이는 한편, 부품업체에 “당분간 신규 주문은 없을 것”이라고 연락할 개연성이 크다.

    반도체나 액정 디스플레이 등 정보통신 핵심 부품을 미국에 수출하는 한국 수출기업 처지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 소비자시장으로 물건을 수출하려고 몇 달 전부터 공장을 돌렸고, 장거리 운송은 운임이 비싸기에 한 번에 대량 수송할 목적으로 컨테이너선도 이미 계약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진국 경기가 조금만 나빠져도 한국 등 동아시아 수출국들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다음 시간에는 ‘중국 소비시장’의 성장이 불러올 변화에 대해 살펴보자.

    홍춘욱은… 연세대 사학과 졸업 후 고려대에서 경제학 석사, 명지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3년 한국금융연구원을 시작으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투자운용팀장, KB국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 등을 거쳤다. 현재는 EAR리서치 대표이자 세종사이버대 경영학과 초빙교수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돈의 역사는 되풀이된다’ ‘투자의 신세계’(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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