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93

2021.06.11

현대로템 K2 흑표, 20조 인도軍 전차 사업 ‘잭팟’ 터뜨리나

인도 측 ‘5대 조건’ 충족… 라이벌 佛 AMX-56과 2파전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1-06-1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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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로템 K2 흑표 전차. [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현대로템 K2 흑표 전차. [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6월 1일 인도 국방부가 차세대 전차 도입 사업, 이른바 ‘미래 대비 전투 차량(Future Ready Combat Vehicle: FRCV)’의 정보요청서(RFI)를 정식 발행했다. 사업 본격화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이다. 인도 육군은 이번 사업을 통해 현용 주력 전차 T-72 ‘아제야(Ajeya)’ 전차(2400대 실전 배치)를 대체할 최소 1770대의 신형 전차를 도입할 예정이다. 신형 전차의 차체를 활용한 파생형 모델 11종의 생산도 계획됐다. 전체 사업 규모가 20조 원 이상인 초대형 프로젝트다.

    인도는 아준(Arjun) 전차를 자체 개발해 250여 대를 양산한 바 있다. 다만 아준 전차는 무기개발 역사에 남을 실패작으로, 제대로 된 전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실상 인도군 주력 전차는 T-72 아제야와 T-90 계열(2000대 실전 배치) 등 러시아제다. 성능을 개량한 T-90 계열은 그대로 유지하고 노후화한 아제야 전차만 FRCV로 대체할 전망이다.

    인도의 차세대 전차 ‘5대 조건’

    인도 정부가 내건 FRCV의 요구 조건은 상당히 까다롭다. △기동력 △화력 △방호력 △C4I(지휘·통제·통신·컴퓨터·정보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전술지휘자동화체계) △기술 이전 등 5개 항목을 충족해야 사업 참여가 가능하다. 구체적인 조건을 하나씩 따져보자.

    첫째, 기동력의 경우 서방 선진국의 3.5세대 전차 수준을 요구한다. 전차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파워팩’은 고원지대에서도 작동하는 고성능 1500마력 디젤엔진과 변속기를 갖춰야 ‘최저 등급’이 충족된다. 인도 측은 여기에 t당 25마력 이상 출력, 차체 자세 제어가 가능한 독립형 서스펜션도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

    둘째, 현존 전차 중 최고 수준의 공격 능력도 필요하다. 2000m 거리에서 60도 경사 장갑판 650㎜ 이상을 관통할 운동에너지탄, 같은 거리에서 1000㎜ 이상을 격파할 화학에너지탄 운용 능력이 필수다. 강력한 포탄을 자동장전장치로 분당 6~8발 이상 발사할 수도 있어야 한다. 5㎞ 이상 거리에서 지상·공중 표적을 모두 공격할 수 있는 주포 발사식 대전차미사일 운용 능력, 원격 조종식 기관총탑도 기본 조건이다.



    셋째, 방호 분야에서 인도 측은 미 육군의 M1A2를 상회하는 장갑 능력을 요구했다. 적 화학에너지탄에 대해 1200㎜ 두께 장갑판 수준의 방호 능력은 기본이고, 15㎏급 급조폭발물과 대형 대전차 지뢰로부터 승무원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 적 대전차미사일이나 로켓을 요격할 능동 방어 장치, 피격 시 손상된 부분만 신속히 교체할 수 있는 모듈형 장갑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넷째, 인도군이 구축하는 차세대 전술정보시스템과 실시간 연동할 C4I 능력이 필요하다. 모든 전차 승무원이 전장의 상황 정보를 공유하고 전차 밖 반경 25m 내에서 무선 헤드셋으로 교신할 수 있는 통신 시스템이 뼈대다.

    끝으로 가장 까다로운 조건인 기술 이전 분야다. 세계 유수 전차 메이커들이 선뜻 사업에 참여하기 어려울 정도의 조건이다. 인도는 전차 자체는 물론, 엔진·포탄 등 100% 기술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기술 이전을 통해 개발한 전차의 지식재산권과 해외 판권도 마찬가지다. 전체 획득 비용의 40%는 인도산 부품을 조달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단서도 덧붙었다. 해외 업체로선 전차 완제품 수출보다 이익이 적고 향후 판로 개척도 까다로운 악조건이다. 다만 인도 정부는 이런 우려를 압도적 ‘물량’으로 덮어버리며 해외 업체들의 사업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현재 인도 국방부가 잠정 후보로 꼽은 모델은 4개 종류인 것으로 알려졌다. 각각 전통적으로 인도와 깊은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러시아의 차세대 전차 T-14 아르마타(Armata), 최근 인도와 원자력 추진 잠수함 공동생산까지 논의할 정도로 가까워진 프랑스의 AMX-56 르클레르(Leclerc), 우크라이나의 T-84 오플로트-M(Oplot-M), 그리고 대한민국 현대로템이 생산한 K2 흑표 개량형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조기 탈락?

    프랑스 AMX-56 르클레르 전차. [위키피디아]

    프랑스 AMX-56 르클레르 전차. [위키피디아]

    인도는 일찌감치 T-14 전차를 FRCV 사업 대상으로 점찍었다. 다만 개발국 러시아가 최근 사실상 사업 참여를 포기하면서 후보군에서 가장 먼저 탈락할 분위기다. 당초 러시아 육군은 2020년까지 T-14 2300대를 도입하겠다며 호언장담했으나 주포부터 포탑, 동력 계통에 이르기까지 온갖 품질 문제가 터졌다. 현 상황에선 대량 양산조차 불투명한 ‘골칫덩이’ T-14를 인도가 떠안을 이유는 없는 듯하다.

    또 다른 유력 후보였던 T-84는 우크라이나가 T-80UD 전차를 개량한 모델이다. 문제는 구식 T-80 전차와 비교해도 획기적인 특장점이 없다는 것. 특히 인도는 최근 T-84보다 기술적으로 훨씬 진보한 러시아제 T-90MS 464대를 면허생산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측이 전차 개량 과정의 노하우를 공여하겠다고 나서도 큰 메리트가 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도와 오랫동안 갈등한 파키스탄이 T-84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점도 발목을 잡는다. 파키스탄이 최근 T-84의 원형인 T-80UD를 대량 도입한 것. 파키스탄 육군참모총장이 우크라이나를 직접 방문해 T-84 도입 논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인도군의 도입 검토 대상에서 T-84가 제외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유력 주자들이 낙마하며 이번 FRCV 사업은 프랑스 AMX-56과 한국산 K2 흑표의 2파전이 될 전망이다. 한국과 프랑스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핵심 시책인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인도 국내 제조업 강화 정책)에 부응해 기술 이전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다. 양국 전차의 성능도 준수하다.

    그렇다면 AMX-56과 K2 흑표 중 어느 쪽 성능이 더 뛰어날까. 두 모델 모두 3.5세대 전차에 속하지만, 1990년대 초반 등장한 AMX-56과 2014년 한국군에 실전 배치된 K2는 같은 세대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성능 격차를 보인다. AMX-56은 3.5세대 전차 시대를 개막해 엄청난 기술 혁신을 몰고 온 명작이긴 하다. 다만 그 ‘전설’은 어디까지나 20년 전 이야기일 뿐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우선 인도가 중시하는 공격력을 비교해보자. AMX-56은 52구경장(口徑長: 총포 구경 단위로 나타낸 총포신 길이) 120㎜ 활강포를 사용한다. K2 흑표는 이보다 강력한 55구경장 120㎜ 활강포를 채택해 화력에서 우위다. AMX-56의 포탄은 650㎜ 장갑판을 관통할 수 있는 OFL-120이다. 한때 서방세계 최강으로 불렸으나 20년째 별다른 개량이 없었다. K2가 사용하는 K279 포탄은 800㎜ 두께의 장갑판을 관통할 수 있어 좀 더 강력하다. K2 전차는 약간의 통합 작업만 거치면 사거리 5㎞인 이스라엘제 주포 발사식 대전차미사일 LAHAT를 발사할 수 있다. 최대 사거리 85㎞에 달하는 주포 발사식 상부 장갑 공격 지능탄도 도입할 예정이므로 공격력 면에선 AMX-56과 견줄 바 아니다.

    방어력은 어떤가. K2는 현존 최정상급 전차포탄 K279를 막아낼 정도로 든든한 방어력을 지녔다. 반면 AMX-56은 스웨덴 육군의 차세대 전차 도입 경쟁에서 방어력 최하위 평가를 받아 조기 탈락했다. K2와 비교하면 방어력이 한 수 아래일 것으로 평가된다.

    인도 총리가 극찬한 ‘K-방산’ 저력

    이번 인도군 전차 도입 사업에서 기술 이전은 성능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다. 인도는 입찰 업체에 ‘전략적 파트너십(Strategic Partnership)’을 강조하면서 현지 업체와 협력 및 기술 이전, 후속 품질 관리를 대단히 중시하고 있다. 최근 한국은 K9 자주포를 인도 측에 성공적으로 납품했다. 인도 방위산업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조기(早期) 납품이었다. 그 덕에 모디 총리와 라즈 나트 싱 국방장관으로부터 전략적 파트너십 모범 사례로 극찬받았다. 기술 이전 측면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인도는 2025년까지 사업자를 선정해 계약을 체결한다는 방침인데, 지금까지는 K2 전차를 제칠 마땅한 경쟁자가 없다. 과연 K2는 인도군 FRCV 수주라는 잭팟을 터뜨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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