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메리 머라이어!, 오소서 이매뉴얼, 남국의 캐럴

당신이 몰랐던 크리스마스 캐럴의 세계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9-12-2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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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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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상에서 크리스마스를 가장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는 동심을 가진 아이들이 아닐까.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선물은 마냥 기쁜 법. 게다가 크리스마스 아침에 눈을 뜨면 엄마 아빠에게 노래하듯 말했던 바로 그 선물이 머리맡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만약 아버지가 빌 게이츠나 만수르 같은 부자라면 그들의 아이를 찾는 산타 할아버지의 보따리에도 더욱 비싸고 귀한 선물이 들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압도적 수치로 아이는 대부분 그런 아버지를 갖고 있지 못하다. 아버지가 그 정도 부자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이 사람을 지인으로 두고 있다면 두려울 게 없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전 세계에서 돈을 긁어모으다시피 하는 머라이어 캐리 말이다.

    25년 만에 1위 재탈환한 ‘All I Want…’

    머라이어 캐리(왼쪽)와 그의 공연. [빌보드 트위터, GettyImages]

    머라이어 캐리(왼쪽)와 그의 공연. [빌보드 트위터, GettyImages]

    무려 25년 전인 1994년 발표된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인류가 만들어낸 시즌 송의 역사에서 온갖 손꼽히는 기록을 가진 노래이자, 여전히 기록을 경신하는 노래다. 노래가 나올 당시 남편이자 소속사 소니뮤직의 회장이던 토미 머톨라로부터 크리스마스 앨범을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한물간 가수나 응할 법한 기획이라며 마뜩지 않아 한 캐리는 그해 여름 녹음실에서 남들보다 일찍 성탄 분위기에 젖어 캐럴을 녹음했다. 

    ‘Silent Night’ ‘O Holy Night’ 등 유명 캐럴이 담겨 있는 이 앨범 ‘Merry Christmas’에서 딱 하나의 오리지널 곡이 바로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다. 녹음실에 있던 싸구려 신시사이저를 건드리다(이 음절은 노래에 인트로로 고스란히 쓰였다) 영감을 받아 공동 작곡가인 월터 아파나시에프와 함께 단 15분 만에 완성했다. 

    이 15분은 결과적으로 캐리의 인생에 매년 돈이 대추야자처럼 열리는 나무를 심는 시간이었다. 가수로서 캐리의 전성기가 끝나도, 음악계의 판도가 바뀌고 그가 ‘옛날 가수’가 된 이후에도 이 노래는 살아남았다. 아니, 갈수록 위상이 높아진다. 스테디셀러에서 클래식의 반열로 올라가는 중이랄까. 기록이 말해준다. 



    현재까지 ‘Merry Christmas’ 앨범의 판매량은 1500만 장, 역대 캐럴 앨범 가운데 최다 판매 기록이다. 대단한 기록이지만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의 싱글 판매 기록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다. 음반 시대가 끝나고 다운로드를 거쳐 스트리밍 시대로 넘어온 2010년대 기록만 보자. 한 번 차트 밖으로 나간 노래는 집계 대상에서 제외해오던 빌보드의 방침이 바뀐 이후 이 노래는 크리스마스 시즌 때마다 어김없이 빌보드 핫100을 두드렸다. 그것도 매년 더 좋은 기록으로. 

    2012년 21위, 2013년 26위, 2014년 35위, 2015년 11위, 2016년 12위, 2017년 9위, 2018년 3위를 거쳐 올해 12월 세 번째 주 차트에서 드디어 1위를 차지했다. 25년 만에 다시 1위로 돌아온, 전인미답의 노래가 된 것이다. 집계 기간 이 노래는 미국에서만 4500만 회 이상 스트리밍, 2만7000회 다운로드됐다. 팝의 비중이 갈수록 줄어드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지난해 온라인 뮤직플랫폼 멜론 차트에서 크리스마스 당일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피로와 쓸쓸함이 담긴 캐럴

    스코틀랜드 밴드 벨 앤 세바스찬의 2017년 뉴욕 공연장면(위)과 ‘O Come, O Come Emmanuel’ 싱글앨범 사진. [GettyImages]

    스코틀랜드 밴드 벨 앤 세바스찬의 2017년 뉴욕 공연장면(위)과 ‘O Come, O Come Emmanuel’ 싱글앨범 사진. [GettyImages]

    곡 자체의 완성도를 떠나 당시 톱 가수였기에 캐럴 앨범 같은 ‘번외작’에도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부을 수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또한 이제 이 정도로 큰 예산을 들여 캐럴 앨범을 제작하는 회사와 뮤지션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노래의 차트 기록과 쌓이는 저작권료는 경신될 게 분명하다. 이쯤 되면 먼 훗날 세상을 떠나더라도 크리스마스 무렵이 되면 산타클로스 옆에서 웃으며 통장을 들여다볼 캐리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 노래가 거리에서 들려오면 ‘아, 크리스마스구나’ 싶다가도, 또 들리면 지겨운 게 인지상정. 봄이 되면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엔딩’에 반응을 보이다가도 벚꽃이 지기 전 물려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들리는 캐럴’ 말고, ‘들을 만한 캐럴’은 없을까. 물론 있다. 많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럴은 스코틀랜드 밴드 벨 앤 세바스찬의 ‘O Come, O Come Emmanuel’이다. 기독교의 오래된 송가인 이 노래는 대중문화 시대에도 여러 버전으로 커버됐다. 국내에선 강아지 스누피로 더 유명한 미국 애니메이션 ‘피너츠’의 음악을 담당했던 빈스 과랄디의 캐럴 음반 수록곡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버전이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눈송이처럼 따뜻하다면, 벨 앤 세바스찬은 이 따뜻함에 쓸쓸함을 더한다. 

    지금은 스코틀랜드, 아니 영국 전체에서도 중견 밴드 대접을 받으며 경쾌한 로큰롤을 주로 들려주지만, 1990년대 후반 데뷔했을 당시 세상은 그들을 ‘체임버팝(chamber pop) 밴드’라 불렀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가미한 실내악풍의 어쿠스틱 사운드를 들려준다고 해서 붙은 호칭이었다. 브릿팝의 불꽃이 꺼지던 영국에서 이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신의 친구들은 타버린 장작처럼 쓸쓸하고 모닥불에 남은 온기처럼 따뜻한 음악을 빚어냈다. 

    이 노래는 정규 앨범이 아닌 그들의 소속 레이블 집스터에서 기획한 캐럴 편집앨범 ‘It’s a Cool Cool Christmas’에 담겼다. 이 앨범에는 기존 캐럴을 펑크와 사이키델릭, 브릿팝 등으로 재기발랄하게 해석한 스무 곡이 들어 있다. 이 재치의 향연 속에서 벨 앤 세바스찬은 역으로 캐럴의 정수로 승부를 건다. 크리스천이 탄압받던 제정 로마의 기독교 비밀 예배처럼 은밀하고, 예수의 재림을 믿는 순교자의 속삭임처럼 나긋하다. 즐거웠던, 혹은 즐거움을 연기했던 크리스마스이브가 지나간 후 몰려드는 피로와 쓸쓸함을 노래한 듯한 캐럴이다. 머라이어 캐리에게선 기대할 수 없는 바로 그 피로와 쓸쓸함.

    한여름에 어울리는 캐럴

    크리스마스 하면 겨울을 떠올리겠지만 알다시피 지구에는 여러 기후대가 있다. 이맘때 동남아로 여행을 가 크리스마스에 반팔 옷을 입고 다니며 낯선 기분을 느꼈던 사람들도 있으리라. 불교 국가인 태국이나 공산권인 베트남, 라오스가 아니더라도 한여름에 크리스마스를 지내는 국가는 많다. 가톨릭 문화권인 중남미가 바로 그렇다. 이들 나라의 캐럴은 과연 날씨답게 눈은커녕 진눈깨비의 느낌도 없다. 

    열대의 크리스마스를 겨울의 한국에서 느끼고 싶다면 추천하고픈 앨범이 있다. 월드 뮤직 전문 레이블인 푸투마요의 2000년 작 ‘A Putumayo World Christmas’다. 이 앨범에는 브라질, 콜럼비아, 푸에르토리코, 자메이카 뮤지션들이 노래하고 연주한 캐럴이 담겨 있다. 말 그대로 이국적이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 불리는 캐럴도 그렇고, 라틴과 레게 리듬으로 연주되는 익숙한 멜로디도 그렇다. 

    이 앨범에는 중남미뿐 아니라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의 캐럴도 들어 있는데, 이 두 문화권의 캐럴을 비교해 들어보면 말 그대로 냉탕과 열탕을 오가는 느낌이다. 친구와 가족끼리의 성탄도 좋지만, 연말연시 휴가를 맞아 해외로 나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앨범은 캐럴로 떠나는 세계여행 같은 선물이다. 머라이어 캐리만큼은 아니어도, 산타를 믿는 아이들만큼은 안 돼도, 그래도 누구나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캐럴이 있기에 기다림은 설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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