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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과 염불 소리의 어울림 이만한 교향악이 또 있을까
여행자는 피곤에 못 이겨 의자에 앉자마자 눈부터 감았다. 지난 닷새 동안 그는 하루에 겨우 네댓 시간을 빼놓고는 하루 종일 차를 몰았다. 차가 쉴 때도 그는 일을 했다. 일이 끝나면 다시 차를 몰았고, 밤을 도와 달려 다음 목적지에…
20080701 2008년 06월 23일 -
오백년 고택 대청마루 애틋하게 쏟아지는 햇빛
김성동의 장편소설 집은, 세상만사에 두루 통달하고 깊은 성찰까지 해내는 가장이 일상생활에는 자주 무능하고 대소사마저 형편없이 처신하여, 안 그래도 고부간 갈등이 심각한 집에 부채질을 더하는 이야기가 의뭉스럽게 술술 들려오는 소설이다…
20080624 2008년 06월 16일 -
청포도 익어가던 영일만 찬연히 빛나는 철강 불빛
네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성경의 ‘욥기’ 8장 7절에 나오는 구절이다. 꼭 그런 일을 겪게 되어 여기에 적는다. 나는 5월 중순 포항에 ‘가야만’ 했다. 옛 노래 중에 최병걸의 ‘진정 난 몰랐었네’가 있는데 그 가사…
20080617 2008년 06월 11일 -
좌우익의 유별난 싸움 그래도 찾아갈 내 고향이리라
국도를 달리다 보면 갑자기 공허해질 때가 있다. 길은 한적하고 오가는 차량은 드문데, 텅 빈 개활지에 잡목만 부스스 봄바람에 떨고, 갑자기 ‘정말 기름을 넣어주는 곳일까’ 의심스러운 주유소가 나타난다. 그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차를 …
20080610 2008년 06월 02일 -
항구의 불빛 따라 쌓인 사연 가슴 짠하게 밀려왔다
내륙 한복판 대전에서 기차가 출발한다. 0시50분에 출발하는 완행열차. 어디로 가는 걸까? 그 가사는 이렇다.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완행열차는 목포…
20080603 2008년 05월 27일 -
군산 사랑도 역사도 흉터투성이 아~ 검은 멍든 바다여
경북 예천이 고향인 시인 안도현은 대학시절을 전북 익산의 원광대에서 보냈기 때문에, 오히려 소백산 아래쪽보다 금강하구의 너른 곳들에 대하여 오랫동안 사무쳐왔다. 예컨대 안도현은 군산 앞바다에 대하여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이다. 군산 …
20080527 2008년 05월 21일 -
멈춰선 협궤열차의 추억 파도에 떠밀려 가슴에 요동치네
한반도 구석구석을, 은밀한 밤에 서로의 속살을 따뜻이 위무해주는 연인처럼, 그렇게 구석구석을 기행하며 눈물 몇 점은 묻어 있을 법한 산문을 남긴 시인 곽재구는 저서 포구기행에서 “한없이 고요했던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세상 속으로 …
20080520 2008년 05월 13일 -
심검당 고운 마루엔 깨달음의 볕 내려 있거늘…
여행을 떠난다. 짐을 꾸리고 아차 면도기를 넣어야 할까, 고작 이삼일 여정인데 수염이 얼마나 더 자라겠는가, 그리하여 서둘러 나서지만, 지하주차장에서 나올 때 햇빛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떠나기에는 너무 화창한 것이다. 그럼에도 떠난…
20080513 2008년 05월 07일 -
어두컴컴한 역사의 상처 그 모든 것 껴안는 바다와 뻘
어떤 지역을 떠올렸을 때 그 순간 어떤 사람이 동시에 떠오른다면, 그 지역과 그 사람은 아주 행복한 인연을 맺었음이 틀림없다. 사람의 이름이 특정 지역과 가역반응을 교호한다면 이는 그 둘 모두에게, 그리고 그 사람과 그 지역을 애틋…
20080506 2008년 04월 30일 -
영남루와 대숲 속삭임 작은 것들의 큰 역사
밀양은, 아주 오래전의 사실(史實)로 말하자면,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을 낳은 곳이다. 연산군 무오년의 끔찍했던 무오사화. 김종직은 그 환란의 실마리가 되었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썼는데, 진(秦)의 항우가 폐위시킨 …
20080429 2008년 04월 23일 -
노랑 파랑 봄파도가 가슴에 밀려온다
봄은 어디서 오는가? 시인 고형렬에게 묻는다면, 그는 ‘4월의 무릎들’ 속에서 피어난다고 말할 것이다. 치마 입은 젊은 여자들, 그 불가해한 생명체의 여린 무릎들이 스치는 소리에 봄은 묻어 있다. 봄이 생명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까…
20080422 2008년 04월 14일 -
그리움이 깨어 있는 기차를 타라
모든 길들이 직선으로 이어져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사이의 사물들 사이, 다시 사물과 사람 사이의 길들, 그 가운데 직선 아닌 길이 없으며, 그 직선마저도 ‘순식간’이라는 표현이 진부하리만큼 짧아지고 있다. 그것이 미덕이요 …
20080415 2008년 04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