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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우러나는 장독
2000년 1월 결혼한지 만 삼년째인 나는 가끔 앞 베란다에 놓인 장독들을 정성스레 걸레질하곤 한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담근 장이 그 독들 중 하나에 숙성되어 담겨 있기 때문이다.삼년 전 결혼으 며칠 앞둔 어느 날 시어머니 되…
20000120 2006년 06월 21일 -
TC는 괴로워!
사례 하나, 23시50분 방콕에 도착한 일행의 짐 체크를 하고 호텔로 이동했다. 그런데 일행 중 한 분이 자기 짐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공항에서부터 역추적, 수색작전은 벌어졌고 혹시 짐이 바뀌지는 않았나 다른 손님방까지 뒤졌지만 …
20000113 2006년 06월 12일 -
“선생님 장낙도가 떨어졌대요”
“선생님 자꾸 타이거 생각이 나요.” 겨우 여섯살인 우리 반 혜진이가 놀이를 하다말고 시무룩한 얼굴로 대뜸 한 마디 한다.“타이거? 백터맨 타이거 말이니?”“네.”“너, 타이거 좋아하는구나.”“네, 크면 타이거랑 결혼할 거예요.”유…
20000106 2006년 06월 06일 -
가로등, 1분간의 의식
창밖을 본다. 짙은 어둠이 도시 위에 깔려 있다. 모든 사물들이 마비된 것 같다. 바로 이때, 여기저기서 연주홍색 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너무 작아서 반딧불 같기도 하다. 그것들이 점점 커지면서 형체를 드러낸다. 바로 가로등이 …
20000427 2006년 05월 22일 -
할아버지와 손자
남편, 아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설 때는 괜찮더니 소백산을 넘어서면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봄을 재촉하는 비였다. 봄비 속을 달려 시댁에 도착했다. 찾아 뵙는다고 미리 전화를 해놓은 탓인지 아버님은 마루 끝에 앉…
20000420 2006년 05월 16일 -
나무처럼 살고 싶다
관악산 무넘이의 새벽 산길을 걷는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없어 좋다. 희뿌연 시야 속에 헐벗은 나무들이 고즈넉이 서 있다. 봄바람이 제법 부드러운데도 숲속의 나무들은 아직 겨울나무 그대로다. 눈맞춰 들여다보고 만져보아…
20000413 2006년 05월 10일 -
맹장요? 오 마이 갓!
1995년 겨울, 한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크리스마스를 맞게 됐다. 기대감으로 설레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갑자기 하복부쪽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하는 가운데 병원 이곳 저곳을 다녔지만…
20000406 2006년 04월 28일 -
헬로 Mr.화이트
우리 집에서는 밤에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다. 후식으로 사과를 먹을 때가 많고, 대충 과일도 생략하고 TV나 보다가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잠들 때도 있다. 우리 부부는 바둑 한 수 두고, 아이는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잘 때도 많…
20000330 2006년 04월 13일 -
촌지와 호떡 사이
오후 수업이 끝나고 나와보니, 교사용 탁자 위에 호떡 4개가 놓여 있었다.“또 연주가 다녀갔구나….”4년전에 졸업했으니 벌써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건만 지나갈 때마다 이렇게 먹을 것을 사들고 다녀간다.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20000323 2006년 04월 04일 -
담쟁이 덩굴과 신혼집
작은 촌락을 돌아 흐르는 시냇물처럼 잔잔한 일상이지만, 때로는 바윗돌에 부딪혀 가벼운 포말이 인다. 우산과 교과서까지 잃어버리고 들어오는 수선스런 딸아이를 볼 때, 가계부를 펼칠 때마다 초라한 아내가 될 때, 고여 있는 물처럼 흐르…
20000316 2006년 02월 21일 -
입으로 끼워준 결혼반지
한 백화점 문 앞을 지나는데 광고 전단을 나눠주고 있었다. 세계보석박람회 홍보전단이었다.영롱한 빛깔의 보석들이 휘황한 조명등 아래서 저마다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우아하게 세팅된 반지, 목걸이나 귀고리 앞에서 한동안 발걸음을 …
20000309 2006년 02월 15일 -
일요일이 오면 난 부자가 된다
일요일이 오면 난 부자가 된다. 적막했던 집안에 훈풍이 불고, 닫혀 있는 방문이 활짝 열리는 날이다. 큰애네 내외가 태석이 손을 잡고, 일곱 달짜리 손녀를 안고 들어선다. 연이어 둘째네 내외도 아홉 달짜리 손녀를 안고 들어선다. 막…
20000302 2006년 02월 06일 -
아름다운 여인
어느 날 은행 창구에서 화사한(?) 여인을 만났다.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은 온갖 치장을 다한 모습이었다. 의사의 손길을 빌린 듯한 쌍꺼풀 위에 선이 굵은 아이라인이 그려져 있었고 눈썹은 날아가는 새 모양 같고, 손톱엔 파란 …
20000629 2006년 01월 31일 -
샌디에이고의 오렌지 꽃향기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에 이사를 오게 된 이유는 첫째, 넓은 뒷마당에 반해서였고 둘째, 초-중-고교와 대학교가 집 근처에 있어서 딸아이가 자라는 동안 유년시절의 추억을 듬뿍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고국에서 어린 시절 18년 동…
20000622 2006년 01월 25일 -
아버지의 며느리 사랑
얼마 전 1남2녀의 장남이자 집안의 장손인 오빠의 결혼식이 있었다. 오랜만에 맞이한 집안의 경사인 덕분에 온 식구는 들뜬 분위기였다. 특히 처음 치르는 혼사라 부모님의 마음은 더욱 분주하신 듯했다. 결혼식 예법은 물론 손님 접대 방…
20000615 2006년 01월 10일 -
선생님과 우산
한때 촌지 비리 때문에 선생님들이 여론의 표적이 되고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로서 당연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그런 소문들이 모두 사실이 아니기를 기대했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초-중-고교를 다니면서…
20000608 2005년 12월 23일 -
냄비를 닦아보자
모처럼 유리창을 닦았다. 그리고 나서 창가에 기대앉아 한가롭게 차를 마셨다. 맑은 유리창 너머에서는 여름을 재촉하듯 따가운 햇살이 사정없이 내리쬐고 있었다. 유리창 청소를 시작한 김에 대청소를 벌였다. 주방기구들도 윤이 나도록 닦았…
20000601 2005년 12월 05일 -
잊지 못할 산행
몇 년 전 선배언니와 함께 산에 올랐었다. 모처럼의 외출이라 사진기도 메고 김밥도 싸고, 소풍가는 초등학생의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그리 높지 않은 산이라 해서 가볍게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꽤 가파르고 험했다. 산을 탄다는 표현보다는 …
20000525 2005년 12월 02일 -
소꿉친구와의 추억
나에게는 어린 시절 시골 마을에서 다정하게 지내던 분옥이란 소꿉 친구가 있다. 분옥이와 함께 지낸 나의 어린 시절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집 앞 냇가에서 종이배를 띄우기도 하고 행운의 네잎 클로버를 …
20000518 2005년 11월 17일 -
“할머니 사랑해요”
뒤늦게 깨달은 할머니의 사랑을 적고자 펜을 들어본다. 금년 1월에 할머니가 계신 철원으로 왔다. 할머니가 얼음판에 미끄러져 발목이 부러져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나는 그 구실을 핑계삼아 병원과 시골집을 오가며 착한 손녀 노릇을 할 …
20000511 2005년 11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