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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사탕 같은 토요일의 일탈
주말의 명화우리의 심장은 피로해 주말과 영화의 조합이 필요해 여배우를 향한 나의 눈빛이 화면 위로 미끄러지고 공기 중에 떠돌다가 당신의 눈으로 옮겨 간다나를 의심하고 있는가 우리의 심장은 서로 통하지만 공기 중에서 나는 의심받고 있…
20120709 2012년 07월 09일 -
책은 맥주처럼 시원하니까
평일의 독서조금도 독창적이고 싶지 않은 하루야.오늘의 어둠은 어제의 어둠처럼 혹은백 년 후의 어둠처럼 펼쳐지고나는 다만 읽는 자로서 당신을 바라보네.맥주는 정말 달력 속 맥주처럼 시원하고꼬치에 꿰인 양은 한 번도 매애매애 울지 않아…
20120702 2012년 07월 02일 -
꼭 쥔 손은 서로를 알아본다
커플 벙어리장갑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더니 커플 장갑을 줬다크리스마스 이벤트로혼자 커플 손이 되어보려는 나의 두 손얼마나 멀리 있었는가 나의 손과 손은나의 손과 손 사이로 지나간 것은절벽의 침묵침묵에 이어진 길고 긴 어둠벙어리장갑 속 …
20120625 2012년 06월 25일 -
그때 아저씨는 어디로 떠났을까
어깨 너머의 삶그는 보잘것없는 사람이다.그에게는 소매 끝이 닳은 양복이 한 벌 있을 따름이다.그 양복을 입고 딸아이의 혼인식을 치른 사람이다.그는 평생 개미처럼 일했으며비좁은 임대 아파트로 남은 사람이다.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는 …
20120618 2012년 06월 18일 -
아이의 발길질, 엄마의 손길
열차의 윤곽아이는 뱃속에서 발길질을 배운다아이는 엄마의 위를 지나는 소리를 듣는다 열차를 타면 잠이 오는 건 그 소리에 자꾸 몸을 울리기 때문이다 열차의 통로에서 아이를 안으려다 엄마는 몸을 구부리고 아이에게 안기고 만다 안개는 …
20120611 2012년 06월 11일 -
TV를 수도꼭지처럼 틀어놓고…
재의 텔레비전코알라 코뿔소 코끼리 한 칸 한 칸텔레비전의 채널은 자정으로 돌아간다태양을 삼킨 열기구가 공중부양 하듯몸속의 부장품들과 함께 밤사이 증발하는코끼리 코알라 코뿔소 코가 시큰한 채널들재가 되기 직전 맹렬히 타오르는초원의 희…
20120604 2012년 06월 04일 -
단어를 수수깡 삼아 글 만들기
인형놀이강정그날은 비칠대기만 하는 골 속을 뒤집어 가마를 만들었더랬습니다이글거리는 번개가 눈을 뚫고 허공에 검은 창을 열었더랬습니다무슨 애벌레 같은 게 들끓고 있었더랬습니다뚝뚝 마디가 끊긴 누액이 먼 길을 동여매고 있었더랬습니다어제…
20120529 2012년 05월 29일 -
나이를 먹어야 나는 딱딱 소리
껌 씹는 여자복권 긁는 대신 껌을 씹지딱 딱 소리는 취미 없고 그래서 아무도 돌아보지 않지만풍선을 분다 아주 크게아주 높게하얀 구체가 부풀다애드벌룬처럼 커지면거기 매달린 껌딱지 같겠지 나는말똥을 이고 가는 말똥구리 같겠지애인을 만나…
20120521 2012년 05월 21일 -
여자의 몸통을 큰 칼로 휙!
마술사구레나룻을 기른 마술사가고개 숙여 인사를 합니다박수 소리는 사자처럼 우렁찹니다미소를 띤 마술사는번쩍이는 큰 칼로 여자의 몸통을 자릅니다비명도 없이슬픔도 없이까딱 까딱 까딱손과 발을 흔들며 여자는 웃고 있습니다위대한 마술사는 미…
20120514 2012년 05월 14일 -
단짝친구의 고장난 자전거
서울과 겨울1월의 아침텅 빈 고가와 기찻길이 쉬고 있다휴일의 차가운 보도 입을 다문 상가야구 모자를 쓰고 간판과 횡단보도를 번갈아 본다아무도 없는 거리에 쨍한 녹색불이 켜진다빛은 아파트 베란다에 내려 그림자를 만들고창은 잠시 반짝인…
20120507 2012년 05월 07일 -
누군가 갑자기 옆구리를 찌른다
악! 고대인들은 놀라움이나 두려운 마음을 표현할 때새의 우는 모습을 관찰했다그 내면에 관한 기록이 비명(悲鳴)에 남아 있다꼬리가 긴 새를 조(鳥)라 하고 꼬리가 짧은 새를 추라 한다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고 현관문을 열자어둠 속에 웅…
20120430 2012년 04월 30일 -
문득 ‘젖통’이라 말하고 싶다
가슴을 바꾸다한복 저고리를 늘리러 간 길젖이 불어서 안 잠긴다는 말에점원이 웃는다요즘 사람들 젖이란 말 안 써요뽀얀 젖비린내를 빠는아기의 조그만 입술과한 세상이 잠든고요한 한낮과아랫목 같은 더운 포옹이그 말랑말랑한 말 속에 담겨 있…
20120423 2012년 04월 23일 -
혹 당신도 화들짝 놀랐는지요
거기에 흰 털이 났습니다큰일이 났습니다 처음 흰 털을 발견했을 땐정말이지 화들짝 놀랐더랬습니다섹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의 기분이이해됐습니다 그녀는 거기 난 흰 털을염색하려다 빨간 털로 만들어버린 적이있었지요 그걸 보곤 배꼽 잡고 웃…
20120416 2012년 04월 16일 -
김이 모락모락 구수한 밥 냄새
무쇠 솥양평 길 주방기구종합백화점수만 종류 그릇의 다정한 반짝임과 축제들 속에서무쇠 솥을 사 몰고 왔다―꽃처럼 무거웠다솔로 썩썩 닦아쌀과 수수와 보리를 섞어 안친다푸푸푸푸 밥물이 끓어밥 냄새가 피어오르고 잦아든다그사이먼 조상들이 줄…
20120409 2012년 04월 09일 -
난 매일 널찍한 마당에 선다
내 마당내 마당에는 매일 잉어 떼가 온다무언가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파도의 산을 넘어내 마당에는 매일 은행나무가 성큼성큼 다른 길을 내고마치 사막의 설치류가 오솔길을 만들듯내 마당에는 매일 청개구리가 폴짝폴짝 담을 쌓는다담 사이에…
20120402 2012년 04월 02일 -
슬프면서도 즐거운 이별
비행장을 떠나면서비행장을 떠나면서 나는 울었고 너도 울었지비행장을 떠나면서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우울한 신문들을 읽었고참한 소설 속을 걸어다니며 수음을 했지사랑이 떠나갔다는 걸 알았을 때 사람들의 가슴에서는 사막이 튀어나왔는데사막…
20120326 2012년 03월 26일 -
푸시킨 시를 수십번 읽었던 시간
자두밭 이발소금성이발(金星理髮) 문 열었구나자두밭 출입문이 또 바뀌었다이발(理髮) 다음 글자는 지워졌지만붉은 ‘金星理髮’은 비 젖어 선명하다얼기설기 거꾸로 매단 문짝 그대로금성이발 문 열었네봄비에 들키면서 왔다첫 손님으로오얏나무 의…
20120319 2012년 03월 19일 -
내 유년기의 홍콩 느와르 열병
세계의 느와르내게로 온 불량한 목소리는우연이었다.우리의 예산은 늘 빠듯하고여자들은 조금 더 나쁘거나남자들은 조금 덜 운이 좋았다.룰을 이해하기 시작하면불공평한 것들이 퍼즐처럼맞아떨어지는 쾌감이 있다.치명적인 아름다움은 어디에,라고 …
20120312 2012년 03월 12일 -
서로의 속눈썹을 얼굴로 쓰다듬듯
획(劃)새들이 마주 오는 죽은 새들을 마주칠 때그들은 서로의 속눈썹을 얼굴로 쓰다듬고 지나간다 바람은 그 높이에선 늘 눈을 감는다서로 다른 붓털이 만나서 만들어 가는 하나의 획 이상하게 한 획을 긋는 붓에서는 바람 냄새가 난다 붓을…
20120305 2012년 03월 05일 -
가끔 상상해, 누군가 나를 껴안는
전기해파리내 몸에서 가장 긴 부위는 팔가장 아름답게 악행을 퍼트리는 것 두 팔을 천천히 휘저으며 나는 수족관으로 간다해양 지도를 펼치면 두 팔이 늘어나는 느낌 그의 오래된 수족관에는 입 벌린 가면들이 모여 있다 물결 사이를 가만히 …
20120227 2012년 0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