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7

2014.10.06

풀뿌리 연정 ‘성공 방정식’

‘통 큰’ 양보와 진정성 있어야 合의 정치 성공

  • 정용덕 서울대 명예교수·행정학 ydjung@snu.ac.kr

    입력2014-10-06 1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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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뿌리 연정 ‘성공 방정식’

    8월 5일 경기도 연합정치 실현을 위한 정책 합의문을 채택한 여야 협상단이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백원우 전 국회의원, 박수영 경기도 행정1부지사, 조경호 김진표 전 의원 보좌관, 오완석·김현삼 도의원, 남경필 지사, 이승철·윤태길 도의원, 임해규 전 국회의원(현 경기개발연구원 원장).

    6·4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17곳 광역 및 227곳 기초자치단체 수장과 의원들이 선출되면서 7월 1일부터 4년간 지방정부를 이끌어갈 ‘민선 6기’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닻을 올렸다. 이들 가운데 특히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행보가 세간의 관심을 끈다. 한국 정치에 친숙한 이에게는 ‘느닷없다’고까지 여겨질 수도 있는 ‘연정(聯政·연립 정부)’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연정이란 말 그대로 복수 정당이 연합해 구성한 정부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앙이든 지방이든 단 한 차례도 실시한 적 없는 제도다. 생소하다면 생소한 이 제안이 나온 이후 경기·제주도민은 물론이고, 전국에서 많은 국민과 언론이 호기심과 기대감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적어도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세간의 관심을 끄는 세 가지 이유

    첫째, 양당제와 다수결 원리가 지닌 한계점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앙이든 지방이든 강력한 양당제가 지속되고 있다. 양당제에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권위주의 시대에 집권 여당과 정부를 견제하려면 반대자들이 하나의 야당으로 집결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양당제와 다수결 원리는 소위 ‘51 대 49’ 문제를 야기한다. 전체 유권자 가운데 51%의 지지를 얻어 집권한 정부와 여당이 독주하는 경우 반대 정당(후보)을 지지했던 49%에 달하는 유권자의 선호가 국정이나 도정(道政)에서 배제되는 문제가 그것이다. 의사결정 비용을 최소화한다는 장점에도 다수결 원리가 민주주의 관점에서 결코 이상적인 제도가 아니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연정은 합의제와 더불어 이와 같은 ‘단순 다수결 원칙(simple plurality rule)’의 한계를 해결하고자 시도되는 대표적인 대안적 제도다.



    둘째,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에 만연해 있는 사회갈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다. 우리나라는 70년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안에 국가 형성, 산업화, 민주화, 지구화를 차례로 이뤘다. 서구 선진국들이 수세기에 걸쳐 이룩한 발전을 한 세기도 안 되는 기간에 압축적으로 달성한 것이다. 이 ‘압축 발전’의 각 단계에서 다양한 갈등의 씨앗이 배태됐다. 어느 나라에서든 국가 형성 단계에서 이념갈등, 산업화 단계에서 빈부갈등, 민주화 단계에서 권력갈등, 지구화 단계에서 산업구조 간 갈등이 배태되기 마련이다. 다만, 이러한 갈등은 단계별로 그때그때 해소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압축 발전 과정에서 단계별로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채 다음 단계로 넘어오면서 오히려 갈등이 중층적으로 쌓였다. 지금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회원국 가운데 터키 다음으로 갈등이 심한 나라다. 이로 인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약 4분의 1(연간 82조∼246조 원)에 해당하는 사회·경제적 손해를 보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파란만장했던 근현대사의 질곡에서 우리나라 정당들은 ‘선명성’과 ‘단결성’을 지고의 덕성으로 여기고 강화해야만 했다. 정당 간 협의와 상호협력이 어려운 점은 1987년 민주주의 이행 이후에도 그다지 변한 것 같지 않다. 한국에서 연정과 합의제 정치에 대한 갈망이 크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셋째, 지방 수준에서 먼저 시행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기대다. 앞에서 지적한 양당제나 사회갈등 문제들이 지금의 중앙정치 수준에서 쉽게 해소될 수 있으리라 보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민주화에 의해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의회 내 정당기율과 정당 간 대결 양상은 오히려 더 강화된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는 같은 정당 소속 의원의 의회 내 투표 성향을 의미하는 ‘정당응집력’ 지수에서 비교적 낮은 나라로 알려진 미국 의회(65%)는 말할 것도 없고, 높기로 유명한 영국 의회(97%)보다 높을 것 같다. 사회 부문에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을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의회가 오히려 이를 부추기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기능한다.

    2012년 5월 여야 합의로 ‘국회선진화법’이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다수 국민이 이제 우리나라 국회도 대결 정치에서 숙의민주주의 정치로 한 단계 발전하려나 보다 하는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그 후 현실을 보면 실망 수준을 넘어 정치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혐오를 더 키우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민주주의 제도를 실시한 국가의 경우 대개 지방 수준에서 먼저 다양한 아이디어가 창안되고, 그것을 지방 수준에서 실험해 성과가 입증되면 비로소 횡적 및 종적 확산을 꾀하는 순서를 밟는다. 조지아 주지사 시절 ‘영기준 예산(zero-base budgeting)’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주정부에서 시행해본 다음 연방정부 수준으로 확대 적용했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대표적인 예다.

    이처럼 상향적으로 개혁이 이뤄져야 안전성도 높아진다. 지방자치가 갖는 의의 가운데 하나는 지방 수준의 정치를 통해 민주주의를 학습하게 된다는 존 스튜어드 밀의 견해다. 중앙의 다수결 원칙에 의해 소외된 소수집단의 선호가 지방 수준에서 반영되게 한다는 ‘차별선호집중’ 원리 또한 지방자치가 갖는 의의다. 여기에 정부 개혁 ‘인큐베이터’로서의 의의가 추가돼야 한다.

    도민 참여 제도화는 숙제

    이처럼 다양한 의의를 지닌 연정이지만, 이 제안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까지는 적잖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연정은 독일처럼 내각책임제 정부 형태에서 더 자연스러운 제도다. 우리나라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집행부 수장 및 입법부 의원을 모두 직선으로 선출한다. 이처럼 이원적 정당성에 근거를 둔 우리나라 지자체에서 연정이 성공하려면, 여야 간 ‘통 큰’ 양보와 진정성에 바탕을 둔 협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6월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경기도정책협의회 토론회(‘연합정치에서 상생과 협력의 길을 묻다’)에서 경기대 김택환 교수는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모두에서 연정이 일상화된 독일의 경우를 소개했다. 독일정치 전문가인 그는 경기도 연정이 성공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대통합의 통 큰 정치 △여야 정치인의 진정성 △협상과 타협 △상징적이고 실력 있는 인물 등용 △도민의 적극적인 참여 제도화가 그것이다. 특히 김 교수는 지도자의 소신 있는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2005년 여당인 기민당 내부의 반발에도 야당(사민당)과 대연정을 통해 복지 확대, 원자력발전소 폐쇄 등 민감한 문제들에 대한 야당의 가치를 전격적으로 수용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파격적인 결단과 설득의 리더십을 예로 들었다.

    경기도에서 연정이 성공하려면, 여야뿐 아니라 도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도 필요하다. 앞의 토론회에서 송경영 신부가 지적했듯이, 도민들은 연정이 성공할 수 있게 ‘견제’하고 ‘교착에 빠졌을 때 조정자 구실’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도민 자신들의 후생도 증대될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2014년 우리는 민주화 27주년, 지방의회 부활 23주년, 직선 지자체장 19주년을 맞이했다. 이제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질적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뤄야 할 때다.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의 정치에서 ‘논제로섬 게임(nonzero-sum game)’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융합을 추구하는 시대다. 정(正)과 반(反)의 정치에서 합(合)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경기·제주도발(發) 연정이 성공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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