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7

2014.07.21

목숨보다 명예를 선택한 영웅 기념

프랑스 보르도 ‘샤토 탈보’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4-07-21 1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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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숨보다 명예를 선택한 영웅 기념

    샤토 탈보 와이너리 전경(왼쪽)과 ‘샤토 탈보’ 와인.

    ‘샤토 탈보’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보르도 와인 중 하나다. 한때 휘스 히딩크 감독이 좋아하는 와인으로 소개돼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런데 이 와인의 레이블을 자세히 보면 ‘Ancien domaine du Conne′table Talbot Gouvermeur de la province de Guyenne 1400~1453’(1400~1453년 기옌 지방의 영주였던 총사령관 탈보의 옛 영지)이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탈보는 백년전쟁의 영국 장군 존 탤벗을 가리킨다. 적장의 이름을 기념하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여기에는 ‘의리’가 빛나는 감동적인 뒷이야기가 있다.

    중세시대 보르도는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아키텐 공국에 속해 있었다. 1151년 아키텐 공주 엘레오노르가 훗날 영국왕이 되는 헨리 플랜태저넷과 결혼하면서 보르도는 영국 소유가 됐다. 이는 영국과 프랑스 간 영토분쟁의 씨앗이 됐고, 결국 1337년 백년전쟁이 발발했다. 보르도를 포함한 기옌(현재의 보르도를 포함한 가스코뉴) 지방 영주였던 탤벗은 자신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 프랑스에 대항해 싸웠지만 전쟁에 패해 포로가 됐고, 다시는 프랑스를 향해 검을 들지 않겠다는 굴욕적 다짐을 하고 풀려났다.

    하지만 오랜 기간 영국 치하에 있던 보르도 주민은 프랑스 통치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러자 영국은 보르도를 재탈환하려고 다시 전쟁을 일으켰고, 노장 탤벗은 기사로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장하지 않은 채 전쟁에 임했다. 1453년 그는 카스티용 전쟁에서 패했고, 아들과 함께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로써 백년전쟁이 끝나고 보르도는 영원히 프랑스 땅이 됐다. 비록 패장이지만 탤벗이 영국과 프랑스 양국에서 존경받는 이유는 그가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진정한 영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샤토 탈보 와이너리는 지롱드 강 왼쪽에 위치한 오메독(Haut-Medoc)에 있다. 오메독은 보르도에서 강을 따라 남에서 북으로 45km, 폭 10km밖에 안 되는 좁고 긴 지역이지만 보르도 최고 마을인 마고(Margaux), 생쥘리앵(Saint-Julien), 포이야크(Pauillac), 생테스테페(Saint-Estephe)가 모두 자리한다. 샤토 탈보 와이너리는 이 네 마을 가운데 생쥘리앵에 있다. 생쥘리앵은 포도밭이 모두 남동쪽을 향해 햇빛을 충분히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지롱드 강이 기후를 더 온화하게 만들어 카베르네 소비뇽이 충분히 익을 수 있는 좋은 환경을 갖췄다.

    최고 와인을 만들기 위해 샤토 탈보 와이너리에서는 손으로 수확한 포도만 쓰는데 카베르네 소비뇽 66%, 메를로 26%, 카베르네 프랑 3%, 프티 베르도 5%를 블렌딩한 뒤 작은 오크통에서 18개월간 숙성한다. 샤토 탈보는 블랙커런트 같은 검은 과일의 향에 오크 숙성에서 얻어진 삼나무향과 바닐라향이 조화를 이룬, 힘과 우아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와인이다. 샤토 탈보를 만들기에 품질이 좀 떨어지는 포도로는 세컨드급 와인인 코네터블 드 탈보(Conne′table de Talbot)를 만든다. 샤토 탈보 와이너리에서는 소량이지만 화이트 와인 카이유 블랑(Caillou Blanc)도 생산한다. 빈티지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가격은 샤토 탈보가 10만~20만 원, 코네터블 드 탈보와 카이유 블랑이 5만~7만 원 수준이다.



    자주 접하기엔 가격이 부담스럽지만, 샤토 탈보는 특별히 기념하거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 함께할 만한 와인이다. 목숨보다 약속을 소중히 여긴 영웅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와인이기에 그 의미를 더욱 빛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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