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7

2014.05.12

‘물의 도시’에 들어서는 순간 몸도 마음도 흔들린다

많은 운하와 미로 같은 뒷골목에 낭만과 수많은 이야기 간직

  • 백승선 여행 칼럼니스트 100white@gmail.com

    입력2014-05-12 13:5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물의 도시’에 들어서는 순간 몸도 마음도 흔들린다
    물의 도시, 가면의 도시, 영화제의 도시, 곤돌라(gondola)의 도시 베네치아.

    이탈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이 도시를 칭하는 많은 수식어 가운데 가장 어울리는 이름은 ‘물의 도시’다. 수많은 운하와 미로 같은 골목으로 이뤄진 세계 최고 물의 도시, 베네치아.

    기차로 이 도시에 도착한 여행자 대부분은 산타루치아 역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한다. 19세기 중반 내륙과 연결된 다리가 생기기 전까지 이곳으로 들어오는 유일한 길은 바닷길밖에 없었지만 이젠 버스로도, 기차로도 이 낭만의 도시를 찾아올 수 있게 됐다.

    역에서건 버스에서건, 밖으로 나가면 만나는 첫 풍경은 역시 ‘물’이다. 물은 마음을 움직인다. 막 지나간 곤돌라 뒤로 퍼지는 잔잔한 파장을 따라 마음에도 잔잔한 파장이 인다. 일상을 떠나 도착한 베네치아의 운하 앞에서 눈과 마음이 흔들린다.

    산마르코 광장과 대성당



    ‘물의 도시’에 들어서는 순간 몸도 마음도 흔들린다

    산마르코 광장 앞에 떠 있는 산조르조 마조레 섬.

    118개 섬과 177개 운하, 그리고 400여 개 다리가 있다는 베네치아. 이민족의 침입을 피해 이탈리아인들이 숱한 나무기둥을 박아 그 위에 건설한, 지금도 조금씩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이 도시의 뒷골목에 숨은 천년을 뛰어넘는 이야기들을 찾는 떠나는 여행은 이렇게 시작한다.

    베네치아 여행의 중심인 산마르코 광장(San Marco Piazza). 베네치아에 온 사람은 모두 이정표를 따라 먼저 이곳으로 모여든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 부르는 산마르코 광장 주변에는 산마르코 대성당(Basilica San Marco),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종루 등 대부분의 볼거리가 모여 있다. 나폴레옹이 ‘유럽의 응접실’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다운 이곳은 길이 175m, 폭 80m의 커다란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베네치아인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는 산마르코 대성당도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물의 도시’에 들어서는 순간 몸도 마음도 흔들린다

    동서양 건축 기술과 장식 기법이 훌륭하게 결합한 유럽 최고 건축물로 알려진 산마르코 대성당의 겉(오른쪽)과 안 모습.

    동서양 건축 기술과 장식 기법이 훌륭하게 결합한 유럽 최고의 건축물로 알려진 산마르코 대성당은 성마르코(마가·Mark)의 유해를 안치하려고 세워진 후 성당 장식(裝飾·ornament)들을 빼앗고 빼앗기고, 또다시 되찾아오는 흥미로운 역사로 점철돼 있다.

    성당 내부는 황금빛으로 가득하다. 천장과 대리석 기둥은 구약성서의 내용을 표현한 모자이크로 채워졌고, 최고 보물로 사랑받는 팔라도르(Pala d’Ore·황금제단화)가 있다. 이 제단화는 비잔틴 예술의 걸작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화려한 금박과 다양한 종류의 보석으로 성경 내용은 물론 성경과 교회의 여러 인물을 묘사해놓았다.

    정교하게 조각한 수많은 상과 다양한 대리석 기둥, 황금빛 모자이크 등 비록 해외에서 가져온 보물 덕이라 해도,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산마르코 대성당은 동양의 비잔틴 양식과 서양의 로마네스크 양식을 절묘하게 혼합한 아름다운 건축물임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성당을 나와 수많은 여행자와 비둘기로 늘 복잡한 광장에 들어서면 1720년 문을 연 후 3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베네치아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사랑받아온 카페 플로리안(Caffe Florian)을 만날 수 있다. 루소, 스탕달, 괴테, 토마스 만, 바이런, 쇼펜하우어, 모네 등 철학자, 문인, 예술가가 사랑한 이 카페는 지성인들이 삶을 토론하고 예술적 영감을 키운 ‘근대 지성의 성지’로, 여러 중요한 역사적 순간을 함께한 베네치아의 문화·예술 중심지다.

    대성당과 광장 사이에 세워진 96m 넘는 종루 위에 서면 베네치아의 붉은 지붕들과 아드리아 해의 푸른 하늘, 그리고 그 하늘을 담은 물길과 골목길에 눈과 마음을 빼앗긴다. 이곳에서 길게 늘어선 줄을 외면하지 말고 반드시 올라가 베네치아의 진짜 모습을 봐야 한다.

    명물 곤돌라 타고 ‘탄식의 다리’로

    ‘물의 도시’에 들어서는 순간 몸도 마음도 흔들린다

    베네치아에선 매년 2월 중순에서 3월 초 가면축제인 카니발레(Canibale)가 열린다. 가면축제에 쓰이는 가면 들(위). 궁전에서 감옥으로 넘어가는 ‘탄식의 다리’는 죄수들이 다리를 건너며 다시는 아름다운 베네치아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한숨을 쉬어 붙은 이름이다. 감옥은 카사노바가 갇혔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베네치아 만에서 낭만을 누리려면 곤돌라 여행이 최고다. 이탈리아어로 ‘흔들리다’라는 뜻으로, 고대의 배 모양을 본떠 만든 이 작은 배는 앞과 끝이 위로 굽어진 길쭉한 모양이다. 이것을 타고 골목과 운하를 다니며 곤돌리노(사공)의 읊조리는 듯한 뱃노래를 듣노라면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곤돌라를 타고 카사노바가 갇혔던 감옥으로, 유명한 탄식의 다리(Pontidei Sospiri)로 간다. 이 다리는 죄수들이 다리를 건너며 다시는 아름다운 베네치아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었다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어 베네치아 장인들이 흰색과 복숭앗빛 대리석으로 정교하게 무늬를 넣어 분홍빛이 인상적인 아름다운 두칼레 궁전으로 향한다. 이곳은 베네치아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지도자(도제·Doge·베네치아공화국의 최고 공직)의 공식 주거지였다. 15세기 고딕 양식의 궁전 정문인 포르타 델라 카르타(Porta della Carta·문서의 문)를 지나, 베네치아 힘을 상징하는 전쟁의 신 마르스(아레스)와 바다의 신 넵투누스(포세이돈)의 동상이 지키는 거인들의 계단을 올라, 베네치아 시의회 의원들의 회의실인 대평의원실에 이른다. 이곳에서 태어난 화가 틴토레토(Tintoretto·1518∼1594)가 가로 24.65m, 세로 7.45m 크기로 그린 세계에서 가장 큰 유화인 ‘천국’을 볼 수 있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우며 분위기를 압도하는 대벽화 앞에서 권력자 도제에게 재판을 받은 뒤 그 판결에 따라 궁전과 연결된 탄식의 다리를 건너 감옥으로 향하던 이들에게 이 ‘천국’은 어떤 의미로 남았을지 궁금해졌다

    때로는 물길을 따라 걸으며, 때로는 수상의 탈것을 타고 가다 보면 오직 베네치아에서만 볼 수 있는 오래된 풍경들과 마주친다. 그 가운데 1592년 완공해 19세기까지 대운하를 가로지르는 유일한 다리였던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가 있다. 대운하를 가로질러 연결된, 베네치아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로 원래 목조 다리였으나 후에 아치형 대리석으로 새로 만들었다. “베네치아에서는 리알토 다리를 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다리다. 다리 주변은 시장과 상점이 밀집해 쇼핑가를 이룬다. 특히 리알토 다리 위에서 보는 대운하와 주변 건물들, 대운하를 가득 메운 수많은 곤돌라와 배들의 풍경은 세계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꿈꾸는 유려한 풍경 가운데 하나다.

    ‘카사노바’가 즐겨 쓰던 바우타

    ‘물의 도시’에 들어서는 순간 몸도 마음도 흔들린다

    산마르코 광장의 야경.

    하나 더. 베네치아를 찾은 남자는 모두 가면을 쓴 ‘카사노바’를 떠올린다. 거리 곳곳마다 가면을 파는 상점이 들어서 있다. 실제로 카사노바가 즐겨 쓰던 ‘바우타(Bauta)’라 부르는 입이 없는 하얀 가면이 가장 많이 팔린다고 한다. ‘트리코르노(Tricorno)’라 부르는 삼각형 모자와 함께 말이다. 신분을 숨기려고 16세기부터 널리 쓰기 시작했다는 가면은 사람의 은밀한 모습을 감춰준다. 이곳 베네치아에선 매년 2월 중순부터 3월 초까지 유명한 가면축제 카니발레(Canibale)가 열린다.

    이 밖에 산마르코 광장 앞에 떠 있는 산조르조 마조레(San Giorgio Maggiore) 섬에는 동명의 성당이 있다. 유명한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설계해 1566~1610년 건축된 성당 내부에는 틴토레토의 벽화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으며, 종루 위 전망대에 서면 산마르코 광장과 두칼레 궁전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베네치아의 전경을 한눈에 만끽할 수 있어 잠시 본 섬을 떠나 여유를 누리려는 발걸음이 이어지는 곳이다.

    그리고 현대 유럽 미술 수집가로 유명한 페기 구겐하임의 저택을 개조해 피카소, 샤갈 등 현대 미술가의 작품 300여 점을 전시한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Collezione Peggy Guggenheim)도 놓쳐서는 안 된다.

    물이 곧 길이고, 길이 곧 물인 도시 베네치아. 일생에 단 한 번 자신만을 위한 휴가를 보내고 싶을 때 당신이 찾아가야 할 곳 가운데 하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