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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통일대계’ 하늘꿈학교

탈북청소년 대상 대안학교 뜻깊은 개교 10주년 한국 사회 정착, 타이틀보다 취업 진로 지도

‘통일대계’ 하늘꿈학교

‘통일대계’ 하늘꿈학교

2월 26일 하늘꿈학교에서 탈북청소년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하늘꿈학교란 이름 때문일까. 푸른 하늘을 병풍처럼 두른 늠름한 모습의 학교가 떠올랐다. 하지만 서울 송파구 가락동 상가 2층에 자리한 이 학교는 개척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처럼 보였다. 교실은 물론 교무실, 교장실도 아담했다. 하지만 ‘비전’ ‘드림’ 같은 교실 명패와 머리를 책에 묻은 채 공부하는 학생들 덕에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전해졌다.

인성 교육 위해 그룹홈 운영

3월 10일이면 개교 10주년을 맞는 하늘꿈학교. 통일부에서 인정하는 탈북자 대안학교 가운데 가장 먼저 설립한 이 학교는 현재 30세 이하 탈북청소년 60명이 재학 중이다. 탈북청소년, 즉 북한에서 태어나 현재 한국에서 사는 만 6세 이상, 24세 이하 북한 이탈주민은 배움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하늘꿈학교 학생은 수준에 따라 초등반, 중등반, 고등반으로 나눠 공부하고, 검정고시에 합격하면 대입준비반에서 논술, 영어 등을 배운다. 그동안 입학생 340명 가운데 113명만 졸업했을 정도로 교육과정이 엄격하다.

10년 전만 해도 탈북청소년은 탈북자 정착지원 시설인 하나원에서 교육받고 그 즉시 사회로 들어갔다. 하지만 탈북청소년 90%가 무학자, 학교중퇴자이기 때문에 이들이 남한 사회에 수월하게 적응할 공산은 희박하다. 특히 북한을 벗어나 중국 같은 제3국에서 장기체류한 경우에는 더 그렇다.

임향자(57) 하늘꿈학교 교장이 탈북청소년만을 위한 대안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심한 이유도 그래서다. 선교사 교육을 담당하던 그는 고(故) 김동식 목사를 만나면서 탈북자에 관심이 생겼다(상자기사 참조). 그는 하나원에 찾아가 탈북자들의 1박2일 남한 가정 홈스테이와 여성 탈북자 생활교육을 제안했으며, 이를 진행하면서 ‘어른보다 아이를 교육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탈북청소년 대안학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자 임 교장은 전에 없던 책임감이 생겼다고 한다. 매달 학교 운영자금 600만 원과 학생들이 머물 공간을 마련해준 이서 목사가 세상을 뜨고, 임 교장 자신에게 뇌종양이 생기면서 그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

“그때는 학교고 뭐고, 이제 죽겠구나 싶어 많이 울었어요. 하지만 정말 많은 분이 기도해준 덕에 종양 크기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고신대로부터 지원받아 아이들 6명과 교사 6명을 데리고 학교를 열었어요.”

시작은 그야말로 미약했다. 시설뿐 아니라 아이들 상태가 처절했다. 학생 30명 가운데 29명이 영양실조, B형 간염, 폐결핵 등을 앓았고, 기생충이 뇌에 침투한 아이도 있었다. 정신상태도 좋지 않았다. 가정과 사회에서 폭력을 경험한 아이는 타인에게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물론, 위협적 분위기를 조장하며 인간관계를 평등관계가 아닌 수직관계로 만들었다.

‘통일대계’ 하늘꿈학교

임향자 하늘꿈학교 교장이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임 교장은 애초부터 아이들에게 생활태도를 강조했다. “태도가 바뀌어야 삶이 바뀐다”는 것이 그가 가진 지론이다. 그가 아이들에게 “탈북 1세대는 고생해야 한다. 1세대가 삶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그 후손도 같은 아픔을 겪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지금도 하늘꿈학교는 다른 탈북자 대안학교보다 ‘공동체 생활’을 강조하며 인성 가꾸기에 열을 올린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배려하지 않으며, 희생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에서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외교습 자리를 마련했는데도 오지 않는 등 약속을 어기는 아이를 볼 때마다 이런 교육의 필요성이 더 강조됐다.

사회 정착률에 교육 방점

지금도 하늘꿈학교 재학생 60명 가운데 80%는 그룹홈 생활을 한다. 그룹홈은 탈북청소년이 가정과 같은 주거 여건하에서 보호를 받으며 재사회화하는 시설. 각 그룹홈에는 생활지도 교사 1명과 또래 4~6명이 함께 산다. 여학생과 남학생을 위한 그룹홈이 각각 7곳, 4곳이고 그중 2곳은 하늘꿈학교를 졸업한 대학생들이 머문다. 그룹홈은 서울 광진구에 3개, 강남구에 1개, 송파구에 7개가 있으며 아이들은 책임의식과 절약정신을 기르는 차원에서 매달 관리비 5만 원(겨울)을 납부한다. 관리비는 아이들이 1시간 동안 샤워하고, 전등을 끄지 않은 채 집을 비우는 등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자 생활 교육 차원에서 부담하게 했다.

아이들은 대체로 그룹홈 생활에 만족하는 편이다. 기상시간이 오전 7시, 귀가시간이 오후 11시로 정해졌지만 분위기는 대체로 가정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여성 탈북자(21)는 “선생님과 같이 밥을 해먹고 나들이도 하니까 집에서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가 북한에 사는 이 탈북자는 “언젠가 사회로 나가겠지만 선생님과 제자 이상의 사이로 가까워지고 싶다. 엄마와 딸, 친언니와 동생 같은 사이로 발전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물론 그룹홈 시스템이 매끄럽게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다. 아이들이 탈북 과정에서 생긴 트라우마를 여과 없이 노출하고, 북에 남은 가족에게 돈을 보내려면 교육을 중도에 포기해야 한다며 생활교사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생활교사가 이를 조율하지만 대부분 2년 반이 지나면 생활교사 스스로 견디다 못해 떠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3년 반 동안 생활교사 생활을 하는 임은정(33) 씨는 “업무 부담은 있지만 아이 절반이 부모 없이 살고 부모가 있다 해도 편부, 편모인 경우가 많다”면서 “아이들과 사랑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룹홈에서 배운 생활 태도 덕분일까. 하늘꿈학교 아이들 성적은 우수하다. 하늘꿈학교는 교육부 인가를 받지 않은 대안학교로, 학생들은 학력을 인정받으려면 검정고시를 봐야 한다(학교 측은 검정고시란 유인책을 써야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한다고 판단해 인가를 받지 않고 있다). 학생들은 검정고시 합격률뿐 아니라 상위권 대학 진학률도 높다.

문제는 ‘진학률’보다 ‘사회 정착률’이다. 실제로 많은 아이가 사회 정착에 실패했다. 1회 졸업생 6명 가운데 제대로 대학을 졸업한 아이는 1명에 불과하다. 그뿐 아니라 초기 졸업생 대다수가 미국, 캐나다 등으로 떠났다. 3~4년간 함께 살았던 선생님에게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떠난 것이다. 임 교장은 “탈북청소년의 남한 사회 정착을 돕겠다는 목표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기분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하늘꿈학교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아이들이 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현실적인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 그 대학이 자신에게 적합한지 알아보는 테스트 기간을 거쳤다. 즉, 원하는 대학에 직접 가보고 자신이 원하는 대학이 맞는지, 자신이 할 수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과정을 마련했다. 또한 직업 인턴십 과정도 거치게 했다. 학생들은 한의사가 되고 싶다면 한의원, 간호가가 되고 싶다면 병원에 가서 일주일 동안 직업 체험을 한다.

자금 마련이 가장 큰 숙제

이와 더불어 ‘인내심’을 기르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졸업생 상당수는 자신이 사회초년병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탈북자이기 때문에 겪는 차별이라고 생각해 스스로 포기하곤 한다. 학교 측은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은 탓에 이런 생각을 한다”고 판단했고, 이를 보완하고자 학교 건물이 있는 상가 1층에 직업스쿨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학생들은 제과제빵 과정, 커피바리스타 과정을 배울 뿐 아니라, 직장 생활도 경험할 수 있다. 한편 독서 플랜, 왜곡된 역사 바로 알리기, 미국인 40여 명과 남한 학생 150여 명이 함께하는 영어통일캠프 등을 통해 탈북자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도 마련했다.

학교는 여기서 더 나아가 대학 입시 진로상담 방향도 개선했다. 예전에는 학생들이 가고자 하는 일류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독려했다. 그러나 이제는 학교 이름값보다 취업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간호학과, 물리치료학과, 치위생학과 등 취업 가능성이 높은 학과에 보낸다. 이는 아이들의 의지, 신념, 꿈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현재 능력’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덕분이다.

이처럼 좋은 성과를 내지만 하늘꿈학교는 근근이 살아간다. 미국 국무성으로부터 일회성으로 2년간 23만 달러(2억4000만 원), 통일부로부터 매년 1억 원을 지원받지만 아이들을 무료로 교육시키고 무료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려면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현재는 교회, 개인 회원 등을 통해 충당하기 때문에 운영자는 늘 마음을 졸인다. 유난히 김치를 좋아하는 아이들 때문에 김치는 늘 부족하다. 임 교장은 “사람이 핵심”이라면서 “통일과 사회 안정을 위해서라도 탈북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인터뷰Ⅰ임향자 하늘꿈학교 교장

“한국에서 차상위계층 면하는 것이 교육 목표”


자그마한 체구를 가진 임향자 교장. 10년 동안 하늘꿈학교를 이끄는 그는 “학생들은 통일로 가는 다리”라고 강조했다. “내가 많은 일을 할 수는 없지만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면 통일을 앞당길 수 있을 뿐 아니라, 통일에 따른 혼란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대 의류생활학과를 졸업한 뒤 외환은행, YMCA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가정주부로 평범하게 살았다. 하지만 두 아들이 4, 5세 때 신학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새 길이 열렸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개교 10주년이다. 그동안 무엇을 느꼈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아이들에게 적합한 교육을 찾았다. 처음에는 아이 능력보다 잠재력, 가능성에 더 무게를 뒀다. 하지만 상당수 아이들이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 뒤 중도 하차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가진 현재 능력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느꼈다. 또한 지식보다 태도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도 배웠다. 탈북자들은 폐쇄적인 북한 사회에서 살다와 정직, 배려, 성실 등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시되는 덕목을 배울 기회가 적었다. 이 점을 가르쳐야 한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가 뭔가.

“사회 정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우리 교육 목표는 ‘학생들이 차상위계층을 면할 수 있도록 교육하자’는 것이다. 나랏돈 받지 않고 내 밥벌이 내가 하는 사람으로 키우려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 일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

“1996년 김동식 목사님을 만나면서부터다. 그분이 탈북자 지원 사업을 벌이면 나는 한국교회를 동원해 사업 자금을 모았다. 그분과 함께 탈북자가 머물 곳을 마련하고, 도시락사업을 전개하며, 북한 평양에 국수공장을 세우면서 많은 점을 배웠다. 하지만 목사님이 납북되면서 부채감을 느꼈고, 탈북자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대 초 꽃제비의 실상은 참혹했다. 이 아이들이 남한 사회에 오더라도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탈북자의 재사회화에 관심을 둔 이유는 뭔가.

“한국선교전략연구소에서 다른 문화권에 선교사를 보내는 일을 맡으면서 문화 차이에 따른 갈등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그러다 보니 탈북자를 단순히 같은 민족으로만 바라보면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것 같았다. 실제로 탈북자는 남한 사람들과 다른 사고방식을 지녔다. 누군가는 탈북자가 이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본다.”

하늘꿈학교 학생에게 바라는 점은 뭔가.

“리더십을 갖추길 바란다. 다만 남한 사회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 체제를 비방하는 식의 활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일은 어느 정도 실력을 쌓고 난 뒤에도 가능하다. 일찌감치 그런 활동에 집중하면 정체성을 확립하기 어렵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큰일을 하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러려면 누구보다 성실히 살아야 한다.”




주간동아 2013.03.04 877호 (p34~36)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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