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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 원래 용도는 ‘두통약’

올해 탄생 120주년 … 한때 코카인 섞여 통증 치료 효과, 제조법 ‘은행금고’에 철통 보안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코카콜라 원래 용도는 ‘두통약’

코카콜라 원래 용도는 ‘두통약’
1950년, ‘타임’지 커버로 코카콜라 그림이 등장한 적이 있었다. 지구가 코카콜라 병에 빨대를 꽂고 콜라를 마시는 모습이었다. 10초마다 전 세계에서 12만6000명의 사람들이 코카콜라를 산다는 통계도 있으니 이 그림이 결코 과장은 아닌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연합군 총사령관이 코카콜라사에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유럽 전역에 10곳의 코카콜라 공장을 세워달라”는 극비 요청을 한 적도 있었다.

1888년 2300달러에 사업권 판매

맥도날드, 마이크로소프트(MS)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브랜드로 손꼽히는 코카콜라가 2006년 5월로 탄생 120주년을 맞았다. 코카콜라의 역사는 바로 콜라의 역사이기도 하다. 1886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처음 만들어진 콜라가 바로 ‘코카콜라’였으니 말이다.

놀랍게도 콜라의 시작은 남북전쟁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타임스’ 기자였던 콘스턴스 헤이스가 쓴 책 ‘코카콜라의 진실’은 코카콜라의 탄생 비화를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코카콜라를 만든 미국인 약제사 존 펨버튼은 남군 기병대의 일원으로 남북전쟁에 참가했다. 남부는 전쟁에 패했고, 펨버튼의 고향 애틀랜타는 쑥대밭이 돼버렸다. 펨버튼 또래의 모든 남자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재건사업에 힘을 쏟아야 했다. 패전의 충격에 더해 힘든 재건사업 때문에 병들어 쓰러지는 사람이 속출했다. 그래서 약제사인 펨버튼은 일종의 ‘자양강장제’로 ‘프렌치 와인 코카’라는 시럽을 만들었다. 이 드링크의 성분은 코카나무의 추출물과 콜라나무 열매의 향, 알코올이었다.

그러나 알코올 성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마시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펨버튼은 프렌치 와인 코카에서 알코올 성분을 빼고 탄산수에 희석해 새로운 음료수를 만들었다. 펨버튼의 친구인 프랭크 로빈슨이 새 음료수의 이름을 ‘코카콜라’라고 붙였다. 주된 성분인 코카나무와 콜라나무를 합친 이름이었다.



펨버튼의 약국에서 한 잔에 5센트씩 받고 판 코카콜라는 금방 인기를 얻었다. 코카콜라를 마신 뒤에 두통이 사라진 사람들도 많았다. 1888년 펨버튼에게 2300달러를 주고 코카콜라 사업권을 사들인 아서 캔들러 역시 코카콜라를 마시면서 만성적인 두통에서 해방됐다고 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코카콜라의 주요 성분 중 하나가 코카나무의 열매, 즉 코카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00년대 말, 미국에서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약물의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캔들러는 코카콜라에서 코카인 성분을 뺐지만 그 후에도 오랫동안 ‘코카콜라는 마약이 들어 있어 중독성이 강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콜라에 들어 있는 카페인은 커피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므로 ‘콜라 중독’이라는 표현은 과장된 것이라고 한다.

펩시 따돌리려 뉴코크 만들었다 ‘대실패’

그렇다면 우리가 마시는 코카콜라는 어떤 재료로 만들어진 것일까? 코카콜라의 주된 성분은 물과 설탕, 이산화탄소, 콜라나무 열매 향, 계피, 고수풀, 라임, 바닐라 등이다. 그러나 코카콜라사는 “코카콜라 안에 정확하게 뭐가 들어 있느냐?”는 소비자의 물음에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제조법은 은행 금고에 보관돼 있으며 정확한 성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두세 명에 불과하다.” 코카콜라사가 120년 동안 앵무새처럼 되풀이한 대답이다. 코카콜라사는 심지어 제조법이 어느 은행에 보관돼 있는지조차 밝히지 않는다. 소문에 따르면, 코카콜라의 제조기법이 보관돼 있는 은행은 애틀랜타를 본거지로 하는 ‘선트러스트’ 은행이라고 하지만 이 역시 확인된 바가 없다.

사실 코카콜라의 성분은 의외로 간단해서 화학 전공 대학생 정도만 돼도 분석해낼 수 있다고 한다. 이미 많은 과학자들이 코카콜라 성분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해 ‘집에서 코카콜라를 만들어보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코카콜라 맛을 내지는 못했다. 심지어 코카콜라사조차도 실패하고 말았다.

1985년, 코카콜라사는 ‘뉴코크(New Coke)’의 출시를 발표했다. 코카콜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신제품인 동시에, 코카콜라를 무섭게 추격하고 있는 펩시콜라를 따돌리기 위한 야심찬 전략이었다. 1893년 창립된 펩시콜라는 1970년대 들어 맛으로 승부를 내겠다면서 ‘펩시 챌린지’라는 프로모션을 전 세계적으로 전개했다. 소비자가 눈을 가리고 서로 다른 두 잔의 콜라를 마신 뒤, 어떤 콜라가 더 맛있는지를 평가하는 시음행사였다. 이 프로모션은 대성공이었고 펩시콜라의 추격 속도는 해가 갈수록 더 맹렬해졌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코카콜라사는 기존 코카콜라보다 단맛이 더 강하고 톡 쏘는 맛은 약한 신제품을 개발했다. 코카콜라사의 CEO(최고경영자)인 로베르토 고이주에타는 아예 이 뉴코크를 기존 코카콜라를 대체하는 신제품으로 내놓으라고 지시했다. 전 세계 매장에서 코카콜라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뉴코크’가 등장했다.

그러나 ‘최고의 상품을 더 좋게 만들었다’는 뉴코크의 판매 전략은 대실패로 끝났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뉴코크의 맛은 펩시콜라와 똑같았던 것이다. 투자가 워런 버핏은 고이주에타 회장을 가리켜 “레몬을 레모네이드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정도로 마케팅의 귀재인 고이주에타조차도 ‘원래 코카콜라가 더 낫다’는 소비자의 입맛을 바꿀 수는 없었다. 결국 코카콜라사는 두 손을 들고 ‘코카콜라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원래의 코카콜라를 부활시켰다. 그 후 산업계에서 ‘뉴코크’는 신상품이 참담하게 실패한 사례를 설명하는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코카콜라를 둘러싸고 있는 이미지의 신비로움은 맛뿐만 아니라 여성의 몸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병 모양에도 있다. 유연한 곡선을 그리는 코카콜라 병은 코카콜라사의 초대 사장인 캔들러가 미국 전역에서 공모한 것이다. 당시 수많은 병 디자인 응모작들이 애틀랜타의 코카콜라사로 날아들었는데 이 중 캔들러가 선택한 것은 유리제품 디자이너인 얼 딘의 디자인이었다. 가운데가 볼록한 딘의 디자인은 어둠 속에서도 소비자가 금방 코카콜라 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코카콜라 병은 1915년에 미국 특허청에 등록됐는데 상품 디자인으로는 미국에서 최초로 특허권을 딴 경우였다고 한다.

1년 동안 미국인 239잔, 한국인 32잔 마셔

딘의 디자인에는 재미있는 비화가 숨어 있다. 처음에 딘은 백과사전을 뒤지면서 콜라나무 열매의 그림을 찾으려고 했지만 어떤 사전에도 콜라나무 열매 그림은 없었다. 딘은 도서관에 가서 ‘콜라나무 열매 그림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도서관 사서는 “콜라나무 열매 그림은 없지만 카카오나무 열매 그림은 있네요. 카카오나무 열매나 콜라 열매나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을까요?” 하며 카카오나무 열매 그림을 찾아주었다. 딘이 ‘콜라 열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출품한 병 모양 디자인은 실은 카카오나무 열매를 본뜬 디자인이었던 것이다.

코카콜라 원래 용도는 ‘두통약’

산타클로스를 내세운 초창기의 콜라 광고와 처음 콜라를 만든 존 펨버튼, 1910년대의 콜라 병, 뉴욕 시내에 등장한 코카콜라 네온사인(왼쪽부터).



지금까지 생산된 코카콜라를 병(236mℓ)에 담아 늘어놓으면 지구와 달을 1057번 왕복할 수 있는 길이가 된다. 또 4차선 고속도로에 빽빽하게 콜라 병을 깔아놓으면 지구를 82바퀴 돌 수 있다. 세계에서 콜라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는 의외로 미국이 아니라 아이슬란드다. 아이슬란드인들은 1년에 366잔의 콜라를 마신다. 이에 비해 미국인은 1년에 239잔, 우리나라 사람들은 32잔의 콜라를 마신다.

그나저나 콜라를 많이 마시면 정말 이가 ‘삭을까?’ 콜라에 이를 수십 일 동안 담가두면 콜라의 인산 성분 때문에 실제로 이가 녹는다. 그러므로 만약 ‘콜라를 며칠 동안 입에 머금고 있다면’ 이가 녹을 것이다. 콜라가 치아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충치 유발지수는 비스킷이나 인절미 등보다 낮다고 한다.

위기의 코카콜라

시가총액에서 펩시에 추월당해 … 120년 아성 ‘위태’


코카콜라사로서는 120주년을 마냥 축하할 수만은 없는 상황인 듯싶다. 120주년을 코앞에 둔 2005년 12월29일, 콜라업계의 ‘만년 2등’ 펩시콜라가 시가총액에서 코카콜라를 제쳤기 때문이다. 이날 펩시의 주가총액은 987억 달러, 반면 코카콜라의 주가총액은 965억 달러였다. 2005년 한 해 동안 펩시 주가가 14% 상승하고 코카콜라 주가가 1.2% 하락한 결과였다. 1919년 코카콜라가 뉴욕 증시에 상장된 이래, 음료업계의 1등 자리를 뺏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실 10년 전만 해도 펩시의 시가총액은 코카콜라의 절반에 못 미쳤다. 1893년 처음 탄생한 이래 펩시콜라는 100년 이상 코카콜라의 뒤를 쫓기만 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대역전극이 가능했던 것일까?

이 역전극은 역설적으로 펩시가 콜라를 일정 부분 ‘포기’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콜라로만 한정하면 펩시는 아직 코카콜라를 추월하지 못했다. 그러나 1990년 들어 펩시는 앞으로는 탄산음료 시장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스포츠 음료나 웰빙 음료, 과일주스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게토레이, 마운틴듀, 세븐업 등을 주력 상품으로 내놓고 과일주스 업체인 트로피카나와 프리토레이 스낵도 인수했다. 현재 펩시 수익의 절반 이상은 프리토레이와 감자칩 등 스낵 부문에서 나온다.

콜라에서도 펩시는 ‘다음 세대의 선택’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20년 이상 꾸준히 어린이와 청소년 세대를 공략했다. 결국 이러한 노력들이 21세기 들어 성과를 거두면서 100년 이상 선두를 지키고 있던 코카콜라를 추월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웰빙이라는 트렌드를 읽어낸 펩시에 비해 하나의 히트상품에만 매달렸던 코카콜라의 시대착오적인 판단이 오늘의 대역전극을 불러왔다고 진단한다. 올해 들어 코카콜라는 ‘코카콜라의 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걸며 재역전을 꾀하고 있지만,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 슬로건에 대해 ‘소비 욕구를 자극할 만한 어떠한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혹평했다.




주간동아 539호 (p56~58)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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