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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 걱정 변호사 모임 ‘生辯’을 아십니까

‘생존게임’ 치열한 경쟁 빗댄 우스갯소리 … 사법연수원부터 실무형 커리큘럼 마련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생계 걱정 변호사 모임 ‘生辯’을 아십니까

생계 걱정 변호사 모임 ‘生辯’을 아십니까

1월18일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제34기 수료식. 이 가운데 320명이 아직 진로를

최근 사법연수원 내부 커뮤니티에서는 모 증권사에 대한 집단 공격이 벌어졌다. ‘겁 없는 쭛쭛증권’이라는 비분강개형 글부터 ‘변호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자조까지, 수십개의 글이 하나같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이 회사의 채용 공고. 2005년 1월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34기 변호사들을 상대로 공고를 내면서 ‘첫 직급은 대리’라고 밝힌 것이 화근이었다. 취업할 경우 ‘웬만하면 부장급, 최소 과장급’이 ‘정의’라고 믿어온 연수생들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조건이었던 것. 해당 증권사가 채용 공고에서 직급 부분을 삭제하면서 파문은 일단락됐지만, 이번 해프닝은 최근 변호사 업계에 불고 있는 변화의 칼바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올해 사법연수원 수료자 957명 가운데 판·검사 임용자는 191명. 전체의 80%가 넘는 766명이 변호사로 쏟아져나왔고, 이 가운데 320명은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한 상태다. 모두 변호사 자격이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현직으로 활동할 수 있지만, 개업을 준비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일반 기업체의 취업문을 두드리고 있는 한 변호사는 이런 현상에 대해 “경기 불황과 변호사 업계의 치열한 경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초동 법원 옆에서 30평대 사무실을 유지하려면 한 달에 최소 600만~700만원이 드는데, 요즘 같은 상황에서 자신 있게 개업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대리급 채용’을 조건으로 내세우는 기업이 등장할 만큼 변호사들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대리급 채용’ 발끈했지만 올 320명 진로 못 정해

변호사로 활동해오던 사람들 역시 변화의 바람을 피해가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들은 전관예우의 실종, 법률 환경의 변화와 후배들과의 경쟁 등 피 말리는 ‘생존 게임’에 시달리고 있다.



행정법원 부장판사를 마치고 1999년 개업한 한 변호사는 “요즘에는 법원에 찾아가 후배 판사들에게 ‘밥 한번 먹자’고 하면 앞에서만 ‘알겠다’고 하지 아무도 연락을 안 한다. 판사들이 변호사 만나는 것 자체를 꺼리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서울지법의 한 중견 판사는 사석에서 “판·검사를 그만둔 사람은 아예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법이 제정됐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관예우’를 통해 큰돈을 벌어들일 자신도 없는데, 브로커 비리 등 각종 추문으로 얼룩진 변호사 업계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생계 걱정 변호사 모임 ‘生辯’을 아십니까

교통사고 사건 전문 한문철 변호사의 홈페이지.

전관예우의 실종은 각종 통계를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다.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가 2002년 1년 동안 서울지역 변호사들이 수임한 형사사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관 변호사들이 맡은 사건의 구속적부심 석방률과 보석 허가율은 일반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았다. 구속적부심 석방률의 경우 46.3%로 변호사가 선임되지 않은 경우(47.7%)나 일반 변호사가 선임된 경우(46.1%)와 비슷했고, 보석 허가율(46.6%)은 일반 변호사 선임(50.5%)보다 낮았던 것.

숭실대 전삼현 법학과 교수는 “최근 요직에 있던 판·검사들이 개업을 포기하고 대기업 법무팀 소속 변호사로 전직하는 것도 우리 법조계에 전관예우 관행이 사라지고 있다는 증거”라며 “개업하는 데 따른 특혜가 사라지자 전직 판·검사들이 새로운 구실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아직도 전관 변호사들의 사건 수임건수는 일반 변호사에 비해 월등히 높다. 2002년 형사사건을 100건 이상 수임한 변호사 10명 가운데 9명이 전관(판사 3명, 검사 6명) 출신 변호사였을 정도.

이에 대해 변호사들은 “일부 전관 변호사들이 스스로 예우를 받는 것처럼 가장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일부 전관 변호사들은 영장전담 판사와의 친분을 내세워 의뢰인에게 5000만~1억원의 별도 사례를 요구한다. 다행히 기각되면 돈을 받고, 영장이 발부되면 돈을 돌려주는 식”이라는 것이다.

중견 변호사들의 위기감은 이런 식으로 전관예우를 활용하는 일부를 제외하면, 이제 과거의 기득권을 포기한 채 삭풍의 생존 경쟁에 내몰려야 한다는 데 있다.

2004년 12월 대법원이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의 증거 능력을 제한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공판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도 변호사 업계의 불안감을 더하는 요인이다.

이 판례가 나온 직후 손지열 법원행정처장은 “그동안 법정에서 변호사가 한 일은 준비한 서류를 제출하는 것뿐이었다. 이 판결을 계기로 우리 재판 문화도 외국 영화에서처럼 소송의 공방과 증거 제출이 법정에서 행해지는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생계 걱정 변호사 모임 ‘生辯’을 아십니까

부동산 전문 최광석 변호사(위)와 엔터테인먼트 전문 최정환 변호사.

그러나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영화에서와 같은 소송’을 배우거나 경험한 적 없는 중견 변호사들에게 이 변화는 너무 갑작스럽다.

한 현직 변호사는 “최근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변호사 모임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나 헌변(헌법 수호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아니라 ‘생변(생계를 걱정하는 변호사 모임)’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고 있다. 변화가 너무 갑자기 몰아닥치니 적응이 어렵다는 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일부 변호사들은 적극적으로 전문화에 나서고 있다. 율촌, 화백 등 대형 법무법인을 거쳐 2000년 단독 개업한 최광석 변호사는 당시만 해도 불모지였던 부동산 소송 영역에 뛰어들어 전문 변호사로 입지를 세운 인물. 그는 ‘부동산 변호사’로 활동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온라인에 부동산 법률 상담 전문 사이트 ‘로티스’(www.lawtis.com)를 개설해 무료 상담을 시작했고, 종합 일간지와 인터넷 법률 포털 사이트 등에 관련 칼럼을 기고하는 전략을 썼다. 현재 그에게 수임되는 사건의 99.99%는 부동산 관련 소송. 최 변호사는 개업 변호사들이 사건 부족으로 문 닫을 위기에 처해 있는 요즘 12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업무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2000년 교통사고 상담 사이트 ‘스스로닷컴’(www.susulaw.com)을 오픈한 한문철 변호사 역시 ‘전문 변호사’ 전략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그는 한 해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되는 교통사고 관련 소송의 25%를 하고 있을 만큼 공인된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 한 변호사 ‘성공’의 일등공신은 교통사고 피해자가 스스로 소송을 할 수 있을 만큼 방대한 양의 콘텐츠를 비축해놓은 사이트. 현재 ‘스스로닷컴’의 회원 수는 4만여명이며, 하루 평균 약 3000명의 방문객이 사이트를 드나든다.

부동산·교통사고·일조권 등 전문 변호사는 ‘호황’



일조권·조망권 소송 전문인 김정술 변호사,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최정환 변호사, 특허 관련 소송의 이수완 변호사 등도 저마다 자신의 영역에서 일가를 이룸으로써 불황을 극복하고 있는 변호사들이다.

김정술 변호사는 “1999년 개업 뒤 지금까지 주말을 포함해 단 한 번도 쉰 날이 없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또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중견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물에 빠질 사람은 얕은 물에 밀어넣어도 빠지지만,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아무리 깊은 물에 밀어넣어도 살아남는다”는 말이 유행이라고도 했다. 변호사 업계가 아무리 어려워져도 철저히 준비하는 사람은 끝내 살아남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에 발맞춰 사법연수원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연수생들을 전문 변호사로 육성하기 위한 실무형 커리큘럼이 마련되는 것. 사법연수원 임시규 교수는 “연수생의 80% 이상이 변호사로 진출하고 있는 데다, 변호사들의 실무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에 36기 연수생부터는 실무에 중점을 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며 “증인 신문기술, 구술 변론법, 소송 지휘법, 의뢰인 상담기술 등을 시청각 장비를 동원해 교육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일반 회사에 취업한 연수원 34기 출신 한 변호사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법조인은 명예, 권력, 돈을 모두 가진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 변호사에게는 무엇 하나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사법시험 당시보다 더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요즘의 법조계”라고 말했다.

바야흐로 생존을 위한 변호사 업계의 지각 변동이 시작되고 있다.



주간동아 2005.02.22 473호 (p26~27)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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