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4

2004.12.16

물찬제비 현주엽 “코트가 좋아”

체중 15kg감략 기량 회복 ‘화려한 부활’ …‘포인트 포워드’로 완벽 변신 시즌 최대 화제

  • 최용석/ 굿데이 기자 gtyong09@hot.co.kr

    입력2004-12-10 15: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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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찬제비 현주엽 “코트가 좋아”
    매직 히포’ 현주엽(29·부산 KTF·사진)이 프로 데뷔 6년 만에 과거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다. 고려대 시절 국내 최고의 포워드로 손꼽혔던 그는 프로 데뷔 이후 단 한 차례도 플레이오프에 출전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불운했지만 2004~2005시즌 달라진 모습으로 KTF 돌풍을 이끌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번 시즌 초반 KTF를 리그 상위권에 올려놓은 현주엽은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이 선정한 11월 최우수선수상을 받는 등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농구 팬이라면 현주엽의 화려한 과거를 대부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휘문고 시절부터 1년 선배 서장훈(30·삼성)과 함께 한국 농구를 이끌어갈 재목으로 주목받은 현주엽은 한국 선수로 드물게 생고무 같은 탄력을 이용한 파워 덩크슛과 골밑 플레이, 정확한 외곽 슛, 타고난 센스 등으로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명성을 쌓았다. 또 고교생으론 드물게 공식 경기에서 팁인 덩크슛(공중에서 볼을 잡아서 시도하는 덩크슛)을 시도했을 정도로 출중한 기량을 갖추고 있었다.

    연세대와 고려대의 끈질긴 스카우트 전쟁 끝에 안암골에 입성해서는 단숨에 고려대를 대학 정상으로 이끌었고, 실업팀 선배들과 치른 경기에서도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195cm에 100kg이 넘는 큰 덩치에도 귀여운 외모로 많은 여성 팬을 몰고 다니면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11월 최우수선수상 행복한 나날





    1998년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에 뛰어든 현주엽은 그해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청주 SK(현 서울 SK) 유니폼을 입게 됐다. 당시 SK에는 고등학교 선배인 서장훈이 있었고, 이들은 휘문고 이후 5년 만에 다시 한 팀에서 만나 농구계의 파란을 예고했다. 하지만 국내 선수들의 부조화와 용병들의 부상으로 8위에 그치며 시즌을 마감했다. 데뷔 첫해 게임평균 23.9점 어시스트 4.6 리바운드 6.4로 괜찮은 성적을 올렸지만, 고려대 동기인 신기성(29·TG삼보)에게 신인왕을 내줘 자존심을 구겼다. 게다가 시즌을 마친 뒤 서장훈과 현주엽이 함께 뛰어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고, 결국 99~2000시즌 도중인 99년 12월 당시 골드뱅크(현 KTF)에서 뛰던 조상현(28·SK)과 맞트레이드돼 팀을 옮겨야 했다. 이후에도 자신의 몫은 꾸준하게 해왔지만 팀 전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하위권에 머물러 챔피언 반지의 꿈은 접어둬야 했고, 2000~2001시즌에는 부상으로 27경기에만 출전하며 다시 한번 눈물을 삼켜야 했다.

    현주엽은 불운했던 3년간의 프로 생활을 접고 2001년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입대해 재기를 꿈꾸며 다시 몸만들기에 돌입했다. 이때 지금 KTF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추일승 감독(당시 상무 감독)을 만나면서 그동안 꽉 막혔던 앞길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입대 후 1년 뒤 열린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결승전에서 한국이 아시아 최강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따는 데 결정적인 몫을 하면서 부활을 예고했다. 당시 그는 미국프로농구(NBA)에서 활약하는 야오밍(휴스턴)이 버티던 중국의 골밑을 파고들어 득점을 하는 등 예전의 기량을 선보이며 부활을 위한 날갯짓을 했다. 하지만 그해 12월 왼쪽 무릎에 이상이 발견되면서 다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무릎을 너무 혹사해 연골이 모두 상해버린 것. 현주엽은 12월 왼쪽 무릎 인공연골 삽입 수술을 받은 뒤 2003년 8월 제대하는 날까지 재활에만 전념해야 했다. 제대 뒤 소속팀인 코리아텐더(현 KTF)에 복귀해 팀의 최고 대우인 3억원의 연봉을 받고 재기를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수술받은 무릎이 온전하지 않아 무릎 연골을 부드럽게 해주는 주사를 맞아가며 경기에 출전했지만, 팀 성적은 하위권을 맴돌았다. 시즌 도중 팀이 매각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현주엽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말이 들리는 등 자신의 불운에 울분을 삼켜야 했다.

    물찬제비 현주엽 “코트가 좋아”

    고등학교 시절의 현주엽.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현주엽은 마지막이라는 결심으로 2004~2005시즌을 준비했다.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혀온 무릎 부상을 완치하기 위해 농구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체중을 15kg 넘게 뺐고, 꾸준하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등 피나는 노력으로 몸만들기에 집중했다. 주위 사람들한테서 “현주엽이 많이 변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신을 채찍질하며 시즌 개막을 기다린 것.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이 목표”

    시즌의 뚜껑이 열리자 달라진 현주엽의 모습에 농구인뿐 아니라 많은 팬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주엽은 ‘하마’가 아닌 ‘물찬 제비’로 변했다. 체중을 줄이면서 순발력이 살아나 빠른 몸놀림이 가능해졌고, 일대일 공격 능력도 살아났으며, 탄력도 좋아졌다. 3점슛뿐 아니라 외곽 슛의 정확도도 높아지는 등 전성기의 기량을 조금씩 회복했다. 그 결과 이번 시즌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 12월3일 현재 게임 평균 득점 13.7점으로 이전보다 득점은 줄었지만 어시스트가 8.3개로 2위에 오르는 등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동료들을 살려주면서 팀도 같이 살아났다. 또한 11월23일 인천 전자랜드를 상대로 트리플더블(10점 10리바운드 10어시스트)을 작성할 정도로 최상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특히 포워드임에도 포인트가드보다 많은 어시스트를 올리며 ‘포인트 포워드’란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그의 변신은 이번 시즌 최대 화제다.

    물찬제비 현주엽 “코트가 좋아”

    현주엽이 한기범을 따돌리며 드리블하고 있다.

    시즌 개막 직전 다른 선수들이 “우승이 목표다”고 말할 때, 현주엽은 “전 6강 플레이오프에 한 번만이라도 나가봤으면 좋겠어요”라고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팀이 상위권을 유지하는 지금도 현주엽은 “MVP에 관심 없고, 이번 시즌을 마치면 FA(자유계약) 선수가 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며 “무조건 팀이 플레이오프에 나갈 수 있게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80~90년대 NBA엔 최고의 스타 마이클 조던과 라이벌이었던 찰스 바클리란 선수가 있었다. 그러나 바클리는 개인적으로 화려한 선수생활을 했지만, 단 한 번도 챔피언 반지를 끼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었다. 한때 비슷한 플레이스타일로 한국의 찰스 바클리라고 불렸던 현주엽이 이번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해 챔피언 등극에 도전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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