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7

2003.10.30

제주 쉐멩듸 여신은 하늘땅 떼낸 거인

‘탐라의 마고’로 아직도 수많은 사연 흘러… 모계사회 전승 ‘마고’와 일맥상통 결정적 증거

  • 류이/ 문화평론가·연출가 nonil@korea.com

    입력2003-10-23 14:1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제주 쉐멩듸 여신은 하늘땅 떼낸 거인

    제주도 위에 걸터앉아 발로 물장구를 치고 있는 설문대 여신.

    신화는 지구에 나타난 최초의 인간들이 세계와 우주를 바라보는 눈이다. 그들은 세계와 우주를 있는 그대로 보았고, 호기심과 상상력으로 충만해 있었다. ‘산이 날아간다’는 한 마디로 이루어지는 마고 신화의 조각들도 고대인들의 체험과 상상의 결합에 의한 것들이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마고 신화의 조각들을 하나 둘 모으고 짜 맞추면서 우리는 여신 마고가 마귀할망이나 천태산 마고선녀가 아니라 우주거인이었다는 것을 밝힐 수 있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신화의 조각들을 ‘짧고 보잘것없다’고 보는 한, 신화의 세계는 결코 자신의 문을 열어 보이지 않는다.

    굿할 때 모시는 신이냐 아니냐

    그러나 우주거인 마고가 창세신일 가능성은 높지만 그 근거는 대단히 미약하다. 우리나라의 산천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조건이 되지 않는다. 창세신의 성격을 드러내는 다른 이야기마디를 찾아내야 한다. ‘이름 없는 거인’처럼 하늘과 땅을 떼어냈다든가, 아니면 지구의 종말을 불러오는 우주거인이라야 하는 것이다. 미륵처럼 하늘과 땅을 떼어내고 해와 달을 만들고 인간을 세상에 내놓는 그런 창세신이라야 하는 것이다.



    제주 쉐멩듸 여신은 하늘땅 떼낸 거인

    청룡·백호·주작과 함께 하늘의 4신(四神)을 이루는 현무.

    아직까지 여신 마고는 ‘신화적 흔적’일 뿐 ‘진정한 의미의 신화’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천지창조 신화는 인간세계의 생성과정을 설명하는 신화다. 한국의 민담과 무속신화에 남아 있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는 천지창조 신화라고 하기 어렵다. 제주도의 설문대할망과 강원도 삼척지역의 마고할미는 각 지역의 산천 형성과 관련 있다는 점에서 천지창조 신화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제의(祭儀)와의 상관성을 알 수 없고 신성성이 있는가 하는 문제 때문에 신화적 흔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뿐 진정한 의미에서 신화라고 하기 어렵다.”

    (한국의 창조신화, ‘브리태니커 온라인’에서)

    여기서 ‘제의’라고 표현한 것은 다름 아닌 굿이다. 원시시대 때부터 굿을 했다는 것은 바위그림이나 방울과 동경 같은 청동기 유물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여기서 ‘제의와의 상관성’이라고 하는 말은 쉽게 말해서 마고가 우리 조상들이 굿을 할 때 모신 신인가 아닌가를 이야기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어쨌거나 필자는 ‘진정한 의미의 신화’와 ‘신화적 흔적’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가 없다. 여기서 말하는 ‘신화적 흔적’이라는 것을 ‘신화의 흔적’이라고 하면 달라질 게 있을까? 별로 없을 것 같다. 자, 이때의 신화는 ‘진정한 의미의 신화’가 아닌 다른 무엇이란 말일까? 신화를 진정한 의미의 신화와 그렇지 않은 신화로 구분할 수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신화의 흔적이란 다름 아닌 ‘진정한 의미의 신화의 흔적’일 것이다.

    신화는 말 그대로 신들의 이야기다. 굿을 할 때 신으로 모셨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굿을 할 때 더 이상 모시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혹은 굿을 할 때 모셨는지 안 모셨는지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신화는 신화다. 우리가 그 사실을 모른다고 해서 신화가 아닌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신화냐 아니냐를 가르는 것은 오로지 그것이 신들의 이야기냐 아니냐 하는 데 있을 뿐이다. 신들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더욱 중시해야 할 점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살아 있는 상징체계로서의 신화다. 그 속에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의 변증으로서의 상상력과 세계관이 꿈틀대는 인류의 문화자산으로서 말이다.

    제주 쉐멩듸 여신은 하늘땅 떼낸 거인

    설문대 여신의 전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우리 조상들이 마고를 신으로 모셨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우리 신화, 우리의 마고를 찾는 길을 함께 가고 있으므로 입장 차이를 접어두기로 하자. 굿을 할 때 모시는 신이었다는 것을 확인하면 당연히 신으로서의 신성성을 인정할 것이므로, 여신 마고가 ‘진정한 의미의 신화’의 주인공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산천을 만들었다는 여신 마고의 신격과 관련하여 우선 확인해볼 수 있는 것이 있다. 마고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사라져버린 경우에조차도 마고가 옮긴 산이나 섬을 신성하게 여겼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그 산이나 섬을 여신 마고의 산이나 섬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옮겨온 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든가 옮겨온 산에 묘를 쓰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섬이 떠내려오기에 밀어냈더니 고기가 잡히지 않게 되어 그 섬에 당집을 짓고 굿을 올리자 고기가 잘 잡히더라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은 이야기로만 남았지만 그 당집에는 분명히 신이 좌정하고 있었을 터. 옮겨온 것이 바위라면 그 바위를 서낭신으로 모시기도 했다. 그 바위는 마고 여신의 상징이거나 분신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는 마고바위라고 불리는, 산 위에 서 있는 길쭉한 돌, 즉 선돌과 관련한 여러 가지 전설이 오늘날까지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양양 죽도의 절구바위에 얽힌 전설은 세상을 지배하려던 마고의 꿈이 어떻게 좌절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또 하나의 마고신화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 서낭당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마고할미제를 지냈다고 전한다. 유교적 표현을 걷어내보자. 마을굿에서 마고굿을 했다는 이야기다.

    창세신격으로서의 마고를 찾아라

    제주 쉐멩듸 여신은 하늘땅 떼낸 거인

    제79회 전국체육대회에 걸린 설문대할망 그림.

    자,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마고를 굿을 할 때 신격으로 모셨다고 해서 마고가 창세신이라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무당의 노래로 수천년을 전해 내려온 창세신화로서의 ‘미륵신화’에 주목했다. 우리에게도 창세신화가 있다는 점을 먼저 보여주었다. 그러나 미륵은 우리 신격임에도, 또한 창세신임에도 우리 상고대의 창세신으로 볼 수 없다. 우리의 고유한 신격으로 보기에는 어딘가 불완전하다. 불교가 전해진 이후에 건너온 신이기 때문이다.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 만들어진 신화라고 반박하더라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원초적인 신화로서 ‘하늘땅신화’와 ‘이름 없는 거인’ 이야기를 제시했다. 우리는 이 이름 없는 거인이 우리의 창세신이 분명하다는 것을 살펴보고, ‘하늘땅신화’와 ‘미륵신화’에 같은 이야기마디가 전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름 없는 거인’이 불교가 전래된 이후 ‘미륵’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주 쉐멩듸 여신은 하늘땅 떼낸 거인

    영화 ‘마고’의 포스터.

    우리 창세신인 ‘이름 없는 거인’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그 이름이 마고일 가능성이 높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마고신화’와 ‘미륵신화’에서 ‘마포 9만 통으로 치마를 해 입는’ 마고의 이야기마디와 ‘하늘 아래 베틀 놓고 구름 속에 잉아 걸어’ 칡 장삼을 마련한 미륵의 이야기마디는 거의 같은 유형이다. 그러므로 마고에서 미륵으로 이름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하늘땅신화’와 ‘마고신화’와 ‘미륵신화’ 사이에 같은 이야기마디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국 곳곳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통해 마고가 우리 산천을 만들었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그 마고가 ‘이름 없는 거인’이라고 주장할 수가 없다.

    어떤 분들은 ‘부도지’의 마고 이야기를 예로 들어 마고를 이야기한다. 물론 ‘부도지’는 마고가 상고대의 우리 신화 속의 창세신이었을 가능성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부도지’가 우리 고대종교의 경전임이 분명하고, 따라서 ‘부도지’의 마고신화가 우리 고대신화의 하나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우리 상고대의 신화라고 하기에는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 ‘부도지’가 우리 상고대 신화가 종교로 발전하여 형성된 사상과 신앙의 체계를 보여주는 후대의 산물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쉐멩듸와 마고의 동질성

    자,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우리는 잃어버린 우리 창세신의 이름을 찾아 거인신화를 탐색해 왔다. 마지막 남은 가능성은 ‘하늘땅신화’와 ‘미륵신화’에 같이 나오는 하늘과 땅을 떼어낸 이야기마디를 찾거나 인간과 세상의 창조와 멸망에 대한 독자적인 이야기마디를 찾아내는 것뿐이다.

    필자는 그 가능성을 탐라(제주도의 옛이름)의 쉐멩듸 신화에서 찾았다. 탐라신화는 1만8000여 신들이 오늘날까지도 살아 있는 우리 신화의 보고다. 그 가운데서도 쉐멩듸는 육지의 마고와 마찬가지로 굿을 할 때 모시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만 남았는데, 제주도 전역에 걸쳐서 수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고신화와 똑같은 성격의, 똑같은 이야기가 말이다.

    쉐멩듸는 설문대, 세명두같이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데, 한라산 꼭대기를 베개 삼아 누워서 성산포에까지 발을 뻗어 물장난을 칠 정도로 키가 큰 거인이다. 또한 치마폭에 흙을 담아다 한라산을 만들었다는 여신이다. 그때 찢어진 치마폭에서 떨어진 흙덩이들이 제주도의 오름이 되었다고 한다.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도 없이 한마디로 탐라의 마고라 할 수 있다.

    쉐멩듸 여신도 탐라신화에서 창세신이었을 가능성은 높지만 그 근거가 부족하여 창세신화의 흔적으로만 인정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마고 여신과 같은 처지다.

    필자는 쉐멩듸 여신에 관한 이야기를 샅샅이 뒤져서 읽어보았다. 그리고 하늘과 땅을 떼어내는 이야기마디를 찾았다.

    “우리가 옛날에 들으니까, 설문대할망이 키도 크고 힘도 세고 했던 모양입디다. 그래서 한쪽 발은 사라봉에 디디고 다른 한쪽 발은 저기 물장오리라고 거길 디뎌서 산짓물에서 빨래하다가 꾸벅하다가 벗어져서 떨어졌다고 합디다….

    옛날에는 여기가 하늘과 땅이 붙었다. 붙었는데 큰 사람이 나와서 떼어버렸다. 떼어서 보니, 여기 물다닥이라 살 수가 없으니 가로 물을 파면서, 목포까지 아니 팠으면 길을 그냥 내버릴 텐데 거기까지 파버리니 목포도 끊어졌다. 그것은 그때에 여기를 육지 만드는 법이 잘못된 거죠. 그런데 설문대할망이 거길 메우려고 흙을 싸 걸어가다가 많이 떨어지면 큰 오름이 되고, 적게 떨어지면 적은 오름이 되었다, 그건 옛말입니다. 치마에 흙을 싸다가 많이 떨어지면 한라산이 되고, 적게 떨어지면 도둘봉이 되었다, 그건 옛날 전설이고….

    전부 물바다로 보아서 하늘과 땅이 붙었는데 천지개벽할 때 아무리 하여도 열 사람이 있을 거라 말이우. 그 연 사람이, 누군가 하면 아주 키 크고 센 사람이 딱 떼어서 하늘은 위로 가게 하고 땅은 밑으로 가게 하고 보니, 여기 물바다로 살 수가 없으니 가로 돌아가며 흙을 파 올려서 제주도를 만들었다 하는데, 거 다 전설로 하는 말이죠.”(제주시 오라동 설화, 송기조(74), 구비문학대계 제주편, 1980)

    쉐멩듸 여신이 서로 붙어 있는 하늘과 땅을 떼어내 하늘은 위로 가게 하고 땅은 밑으로 가게 하였다는 것은 ‘하늘땅신화’의 이름 없는 거인, ‘창세가’의 미륵이 한 일과 똑같지 않은가? 아! 그렇다면, 이 쉐멩듸가 바로 이름 없는 거인이자 미륵일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창세기의 우주거인이 여기 탐라에 이렇게 자신의 마지막 이야기를 남겨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잃어버린 우리의 창세신을 ‘쉐멩듸’라고 불러야 옳지 않겠는가? 물론 그렇다.

    그러나 너무 흥분하지 마시라. 그렇다고 하여 쉐멩듸가 바로 마고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쉐멩듸는 탐라신화의 우주거인이요, 창세신이기 때문이다. 마고는 육지의 신화다. 탐라는 ‘독립된 나라’였고 자신들의 독자적인 건국 영웅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독특한 자신들의 문화도 갖고 있다. 대륙 중원의 여러 나라에 사신을 따로 보낸 ‘독립된 나라’였다.

    쉐멩듸와 마고

    그렇다면? 우리는 몇 고개를 넘고 또 넘어왔지만, 아직 답을 찾지 못한 것이다. 또 한 고개를 더 넘어야 한다. 아! 쉐멩듸와 마고는 똑같은 성격의 여신임이 너무도 분명한데…. 쉐멩듸가 하늘과 땅을 떼어낸 창세신이라고 해서, 마고도 그렇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 결론은 의외의 곳에서 났다. 쉐멩듸를 한자어로 어떻게 썼을까? 曼姑(만고), 詵麻姑(선마고)라고 썼다는 것이다. 沙曼頭姑(사만두고)라고 쓰기도 했다. 필자는 한자 표현을 통해서 쉐멩듸와 마고의 관계를 알 수 있었다. 장한철의 ‘표해록(漂海錄)’ 첫 5일째 기록에 나오는 내용을 살펴보자.

    白鹿仙子活我活我 백록선자여 우리를 구하소서 우리를 구하소서詵麻姑活我活我 쉐멩듸 여신이여 우리를 구하소서 우리를 구하소서

    여기서 詵麻姑는 바로 쉐멩듸다. 우리는 같은 책 뒷부분에 나오는 詵麻姑에 대한 이야기가 현재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 쉐멩듸 이야기와 거의 같다는 사실에서 詵麻姑가 쉐멩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어도 1771년 장한철은 쉐멩듸를 마고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전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속의 마고는 탐라의 쉐멩듸와 같은 창세신임이 틀림없다. 마고와 쉐멩듸가 같은 신의 서로 다른 이름인지, 아니면 같은 신격의 서로 다른 이름인지, 혹은 같은 신격의 서로 다른 신인지는 더 연구해봐야 할 문제다. 그러나 우리의 창세신이 여신이라는 사실은 우리 신화의 지평을 저 멀리 원시시대로까지 넓혀준다. 그리스 대지의 신 가이아나 만주족의 세 여신 아브카허허 바나무허허 와러두허허와 같은 신격의 마고 혹은 쉐멩듸 여신은 우리 신화가 모계사회의 사유를 그대로 전승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신 마고에개 생명을 불어넣는 일

    필자는 드디어 잃어버린 신화를 찾는 신화여행의 종착역, 창세신화의 여신 마고역에 다다랐다. 그러나 태곳적부터 우리 곁에 있었던 여신 마고에게 새롭게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리는 여신 마고를 하나의 종교로서가 아니라 신화로서 가꾸어가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