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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로 듣던 가요사

CD로 부활한 ‘그때 그노래’

CD로 부활한 ‘그때 그노래’

CD로 부활한 ‘그때 그노래’
일흔살을 넘긴 아버지가 언젠가부터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하셨다. 평생 잡기(雜技)라고는 모르고 집과 일터만 오간 분이셨기에 뒤늦게 노래에 빠진 아버지의 모습은 가족에게 뜻밖이었다. 아예 가요책을 펼쳐 놓고 시험공부하듯 가사를 익히시더니 ‘가거라 삼팔선’에서 ‘페르샤 왕자’까지 막힘없이 넘나들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노래는 가족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노래솜씨가 그리 좋다고 할 수 없는 데다, 밤낮으로 옛 노래를 들으려니 짜증스럽기까지 했다. 면전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앉으며 “그만 좀 하시지…”라고 중얼거리곤 했다.

CD 12장에 두툼한 설명서 2권까지 포함된 ‘유성기로 듣던 가요사’(신나라)를 앞에 놓고 불현듯 아버지의 노래가 떠오른 것은 무슨 까닭일까. 더욱이 첫 번째 음반 첫 곡을 듣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새벽녘에 저 샛별 바라보면서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적에’로 시작되는 ‘휴전선 엘레지’. 구성지게 넘어가는 바이브레이션은 남인수의 노래가 아니라 아버지의 노래였다. ‘달도 하나 해도 하나’ ‘무정열차’ ‘청춘 무성’ ‘가거라 삼팔선’ ‘가을인가 가을’로 달려가는 남인수의 목소리와 아버지의 목소리가 내게는 겹쳐서 들렸다.

나라 없던 시절의 울분과 광복의 환희, 6·25전쟁으로 지친 마음을 달래주던 옛 가요들. 그 시절을 교과서로만 겪은 사람들에게 옛 가요는 ‘가요무대’용 노래에 불과하지만, 아버지 세대에게 그것은 삶의 궤적 그 자체였다.

신나라는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광복 이후 1960년까지, 사실상 우리 가요사의 공백기나 다름없는 이 시대의 명가수들이 부른 SP음반을 찾아내고 복원하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이 시기를 가요사의 공백기라 하는 것은, 해방 직후에는 아예 음반제작 자체가 어려웠고, 그나마 6·25와 산업화기를 거치면서 SP음반들이 대부분 소실됐거나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 작업의 음악감독 겸 사설채록을 맡은 가요연구가 김점도씨는 “해방 직후 녹음실 하나 제대로 갖춰진 곳이 없었고, 판을 찍을 프레스도 재료도 부족하여 엿장수들이 모아오는 예전의 SP판을 구입해 숯불에 구워 재생했다”고 회고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오리지널 음반은 사라지고 대신 현대감각에 맞게 편곡되고 목소리의 주인공이 달라진 새 음반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김점도씨는 노래의 생명력을 지탱시켜 주는 것은 역시 오리지널 음반이라고 말한다.

국내에서 SP로 발매된 가요음반은 대략 5000여장, 곡수로는 1만여곡으로 추정된다. 애호가들이 소장하고 있는 음반이 4000여장 가량 된다. 신나라는 이 음원을 바탕으로 해방 이전 가요를 복각한 ‘유성기로 듣던 가요사’ 1집(10CD)과 ‘불멸의 명가수’(23CD)를 선보인 바 있다.

이번에 발매된 ‘유성기로 듣던 가요사’ 2집은 남일해 한명숙 권혜경 김용만 김정애 나애심 남백송 남인수 도미 명국환 박재란 안다성 원방련 윤일로 현인 등의 가수 58명이 부른 오리지널 노래 217곡을 복원해 냈다. 덧붙여 ‘사랑은 흘러가도’ ‘비 내리는 호남선’ 등 당시 인기를 끈 영화나 방송 드라마의 주제가를 2장의 CD에 담아 자료로서의 가치를 높였다.

시대적 상황과 음악성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왜색가요, 엔카의 잔재, 금지가요, 심지어 불량가요라는 낙인이 찍힌 채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노래들이 12장짜리 음반으로 부활한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젊은 음악평론가들이 이 음반의 역사적 가치를 따지는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지난 세월의 눈물과 추억, 희망을 떠올린다는 사실이다.

윤종신의 ‘헤어진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

가슴으로 부르는 이별의 뒤안길


화보 촬영하느라 꽤나 고생했겠구나 싶은 음반이다. 아직 따끈한 윤종신씨의 8집(EMI)은 CD보다 해설집에 담긴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톡톡 튀는 연예가 사진으로 유명한 안성진씨가 이번에는 흑백사진과 갈색톤을 강조한 컬러로 30대의 향수를 끌어낸다. 음유시인이 된 윤종신은 헤어짐이 견디기 힘들었던 한 해를 이젠 정리(情理)하고 싶다고 노래한다. 첫곡 ‘정리(情理)에는 ‘안녕’이라는 단 한 마디밖에 없다. 설명이 필요없이 듣다 보면 코끝이 찡해지는 음반이다.




주간동아 230호 (p9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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