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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 자폐성 발달장애 극복하고 美 대회 우승한 이승민

[김종석의 인사이드 그린] 7월 20일 제1회 장애인 US오픈 골프대회 우승… 하나금융그룹 후원

  • 김종석 채널A 성장동력센터 부장 (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선천적 자폐성 발달장애 극복하고 美 대회 우승한 이승민

이승민의 아이언샷 모습. [사진 제공 · USGA]

이승민의 아이언샷 모습. [사진 제공 · USGA]

두 살 무렵 이승민(25)은 선천적 자폐성 발달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의 부모 표현에 따르면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힌 듯했다.

7월 20일 반짝이는 우승 트로피와 함께 메달을 목에 건 이승민은 밝은 표정으로 “어둠에서 나를 데리고 나와 빛을 보게 해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파인허스트 리조트 6번 코스에서 끝난 제1회 장애인 US오픈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뒤 소감을 전할 때였다.

미국골프협회(USGA)가 올해 창설한 이 대회는 지체, 시각, 발달 등 장애를 가진 선수들이 8개 부문에 각각 출전해 장애 정도에 따라 전장이 다른 코스(4개 티잉 구역 사용)에서 3라운드 54홀 스트로크 플레이로 순위를 가렸다. 15세 소녀부터 80세 할아버지까지 11개국 남녀 골퍼 96명(남자 78명, 여자 18명)이 참가했다. 10명이 출전한 지적 장애 부문에 나선 이승민은 최종 합계 3언더파 213타를 친 뒤 2홀 합산 연장전에서 승리해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그는 “마스터스 마지막 날 마지막 18번 홀에 서고 싶다. PGA투어에 출전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 포기하지 않는 골퍼로 기억되는 것이 소원이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승민의 지능지수(IQ)는 6~7세 수준인 66이다. 일반인의 평균 IQ는 85~115. 외교관이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초등학생 시절을 보낸 이승민은 아이스하키 선수로 뛰었지만 단체 스포츠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부상도 많았다. 오히려 차가운 빙판보다 초록 잔디에 하얀 공이 날아다니는 골프를 좋아했다.

10년간 해외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이승민은 아버지를 따라 골프장에 간 날 “이거 하고 싶다”고 말했던 게 골프 인생의 출발점이 됐다. 중학교 1학년 때 일이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10년 가까이 이승민을 가르친 김종필(59) 프로는 “처음 승민이를 만났을 때 네 살 정도 아이처럼 보였다. 비장애인 20명을 동시에 레슨하는 것보다 힘들 때도 있었다. 말보다 행동과 포즈로 가르쳐야 했고, 근육 움직임을 모두 보여주고 만지면서 자세를 교정해야 했다”고 말했다.



지독한 연습 벌레… 한 번 가본 코스 정확히 기억

이승민이 제1회 장애인 US오픈 골프대회  경기를 마치고 선수들과 악수하는 모습. [사진 제공 · USGA]

이승민이 제1회 장애인 US오픈 골프대회 경기를 마치고 선수들과 악수하는 모습. [사진 제공 · USGA]

느렸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인지 능력은 제한적이지만 놀라운 기억력과 운동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김 프로는 “승민이가 ‘나는 머신(기계)’이라고 한다. 나를 보고는 머신을 조절하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마치 기계처럼 일단 몸에 입력되면 똑같이 따라 했다”며 “한 번 가본 코스는 정확히 기억하고 잔디 뿌리를 코에 가져다 대면 어떤 종류인지 척척 알아맞혔다. 운전면허도 필기시험 문제를 모두 외운 끝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번 골프채를 잡으면 좀처럼 놓지 않는 성실함도 장점. 김 프로는 “너무 열심히 연습해 걱정될 정도다. 승민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그만해’다. 대회에 나가도 긴장하지 않고 라운드 내내 집중력을 발휘했다”고 칭찬했다.

이승민은 다른 사람에게 불쑥 스킨십을 한다거나 기분이 좋으면 갑자기 껴안기도 한다. 다른 선수들이 플레이할 때 왜 조용히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다. 아들이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 취급을 받자 어머니는 연방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이승민도 차츰 분위기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파인허스트 리조트에서 열린 제1회 장애인 US오픈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이승민(가운데)이 축하를 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 제공 · USGA]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파인허스트 리조트에서 열린 제1회 장애인 US오픈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이승민(가운데)이 축하를 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 제공 · USGA]

고교 2학년이던 2014년 세미프로 자격증을 딴 뒤 2017년 발달장애를 가진 선수로는 최초로 국내 최고 레벨인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코리안투어 선발전을 통과해 정회원이 됐다. 5번의 도전 끝에 받아낸 값진 합격증. 그해 KPGA 카이도시리즈 골든V1 오픈에서 특별초청선수로 정규투어 데뷔전을 치렀을 때는 첫 홀에서 이글을 기록했다. 2018년 KPGA 정규투어 개막전인 DB손해보험 프로미 오픈에서 처음으로 컷 통과에 성공하며 189만 원 상금을 탔다. 프로골퍼로 처음 손에 쥔 상금이었다.

이승민은 골프를 통해 주위와 소통하는 법을 배우면서 발달장애 2급에서 3급으로 완화됐다. 그렇게 어렵기만 하던 낯선 이들과 눈 마주치기가 가능해지고, 언어구사 능력도 좋아진 덕분이다.

정이루리 국민대 스포츠교육학과 교수(특수체육 전공)는 “자폐인은 규칙이 많거나 단체 스포츠일수록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반면 골프, 마라톤, 수영 등 자신과 싸움에서는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영화 ‘말아톤’ 실제 주인공인 배형진과 세계장애인수영대회에서 신기록 행진으로 메달을 휩쓴 김진호는 감동의 스포츠 드라마로 주목받았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김지훈은 이승민의 영향으로 골프에 매달린 끝에 지난해 KPGA 세미프로가 됐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오른쪽)과 이승민. [사진제공 JNA 골프]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오른쪽)과 이승민. [사진제공 JNA 골프]

TV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주인공 우영우의 아버지는 “세상은 자폐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아”라며 울부짖는다. ‘필드의 우영우’라는 타이틀을 얻은 이승민에게도 세상은 험난하기만 했다. 그런 그의 손을 잡아준 ‘키다리 아저씨’의 존재도 험한 파도를 헤쳐 나가는 데 큰 힘이 됐다. 이승민은 우승 후 후원사인 하나금융그룹(회장 함영주) 측에 고마움을 표했다.

“7년 동안 한결같이 후원해준 하나금융그룹에 감사하고 하나금융그룹의 모자를 쓴다는 것은 자부심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게 해 이런 좋은 결과도 얻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하나금융, 김정태 회장 시절 이승민 후원 시작

자신을 후원해준 김정태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오른쪽)을 만나 기념촬영을 한 이승민. [사진 제공 · JNA골프]

자신을 후원해준 김정태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오른쪽)을 만나 기념촬영을 한 이승민. [사진 제공 · JNA골프]

하나금융그룹은 현재 아시아골프리더스포럼(AGLF) 회장이자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회장인 김정태 전 회장이 재임하던 2016년부터 이승민과 인연을 맺었다. 김 전 회장은 이승민의 도전정신에 관심을 보이다 후원을 시작하게 됐다. 금전적 지원뿐 아니라 정규투어 대회에 추천 선수로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 실전 경험을 쌓게 했다.

이승민은 KPGA 2부 투어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1인 1캐디 시스템인 1부 투어와 달리 선수마다 캐디를 둘 수 없는 규정 때문이다. 거리 측정, 클럽 선택 등에서 누군가의 조력이 더욱 절실한 이승민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선수 4명이 1명의 캐디를 두고 플레이를 하다 보니 이승민이 포함된 조의 진행은 느릴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현실을 인지한 하나금융그룹 측은 KPGA에 조력자 동반을 처음으로 적용할 수 있게 했다.

박폴 하나금융그룹 글로벌스포츠마케팅팀장은 “이승민이 비장애인과 겨뤄도 우승할 수 있다는 믿음을 선수와 회사가 공유하며 함께 가고 있다”면서 “낯선 환경에서도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장애인 선수 가운데 최고가 된 건 남다른 쾌거인 만큼 앞으로도 물심양면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민이 우승한 대회 명칭은 ‘어댑티브(Adaptive) 오픈’이다. 장애를 가진 선수들이 휠체어나 보조기구 등을 통해 다양한 스포츠 활동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다. 미국 ‘골프위크’는 이승민의 우승 스토리가 자폐증을 가진 부모들에게 자식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내고 계속해서 그것에 힘써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정이루리 교수는 “발달장애인의 사회 진출에 모범이 되는 사례다. 스포츠가 가진 통합의 힘을 보여줬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조그만 배려가 제2의 이승민, 우영우를 탄생시킬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편견과 한계를 넘어선 이승민이 날린 작은 공이 희망의 ‘어댑터’가 되고 있다.

김종석 부장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동아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한 골프 전문기자다. 1998년부터 골프를 담당했고 농구, 야구, 테니스, 배드민턴 등 주요 종목을 두루 취재했다.





주간동아 1350호 (p58~60)

김종석 채널A 성장동력센터 부장 (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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