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27

2022.02.18

팀워크 살아난 한국 쇼트트랙, 베이징에서 일군 수확과 과제

  • 베이징=강 산 스포츠동아 스포츠부 기자

    입력2022-02-18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2월 16일 오후 중국 베이징캐피털 실내빙상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 플라워 세리머니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 선수들이 빙둔둔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황대헌, 김동욱, 곽윤기, 이준서, 박장혁 선수(왼쪽부터). [뉴시스]

    2월 16일 오후 중국 베이징캐피털 실내빙상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 플라워 세리머니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 선수들이 빙둔둔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황대헌, 김동욱, 곽윤기, 이준서, 박장혁 선수(왼쪽부터). [뉴시스]

    수많은 편견과 우려에 판정 피해까지. 대한민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기간 내내 수많은 악재와 싸웠다. 2월 16일 베이징캐피털실내빙상장에서 열린 남자 5000m 계주와 여자 1500m를 끝으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기까지 엄청난 우여곡절을 겪은 게 사실이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한 심석희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징계를 받았고, 3위였던 김지유도 부상으로 올림픽 출전이 불발됐다. 기존 순위대로라면 이들은 여자부 개인전 출전 멤버였기에 전력 약화 우려가 상당했다.

    그러나 선수들은 여러 악재를 딛고 일어섰다.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9개 종목에서 금메달 2개를 포함해 총 5개 메달을 거머쥔 만큼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핵심 선수 이탈과 감독 부재 등 많은 우려를 씻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한체육회가 설정한 “최대 금메달 2개” 목표를 쇼트트랙에서 이뤘다.

    중국 텃세에 당초 목표 金 2개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황대헌(강원도청), 여자 1500m에서 최민정(성남시청)이 금메달을 따냈다. 명실공히 한국이 이 종목 최강이다. 여자 1000m에서 최민정이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여자 3000m 계주에선 최민정·김아랑(고양시청)·이유빈(연세대)·서휘민(고려대)이 은메달을 합작했다. 남자 5000m 계주에서도 황대헌·곽윤기(고양시청)·이준서(한국체대)·김동욱·박장혁(이상 스포츠토토)이 은메달을 따냈다. 취약 종목으로 꼽히는 남녀 500m, 편파 판정의 희생양이 된 남자 1000m, 처음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2000m 혼성계주에선 메달을 수확하지 못했지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우리 선수들은 한 뼘 더 성장했다.

    “과거의 나를 넘어서야 했다”

    2월 12일 중국 베이징 메달플라자에서 열린 메달 수여식에서 쇼트트랙 여자 1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최민정 선수가 메달을 목에 걸고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2월 12일 중국 베이징 메달플라자에서 열린 메달 수여식에서 쇼트트랙 여자 1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최민정 선수가 메달을 목에 걸고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누군가는 과거 영광에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애초 이번 대회에서 한국 선수단 전체에 기대한 금메달은 최대 2개였다. 모두 쇼트트랙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그만큼 전력이 상향평준화한 데다, 중국에서 열리는 대회라는 특성상 텃세도 무시할 수 없기에 목표를 높게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은 제한된 환경에서 최선의 성적을 냈다. 남녀 대표팀의 에이스 황대헌과 최민정은 그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줬다. 황대헌은 2월 9일 남자 1500m 준준결선과 준결선, 결선까지 모두 선두로 나서 레이스를 이끌었다. 엄청난 순간 스피드와 지구력을 모두 겸비해야 가능한 작전을 황대헌은 어렵지 않게 해냈다. 4년 전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이 종목 결선 도중 넘어진 아픈 기억을 딛고 수많은 노력을 통해 최고 자리에 올랐다. 특히 2월 7일 남자 1000m 준결선에서 편파 판정 희생양이 되고도 곧바로 아픔을 털어낸 멘털(정신력)과 13일 500m 준결선에서 스티븐 뒤부아(캐나다)의 진로를 방해한 것을 사과하는 품격까지 보여줬다. 한 빙상계 관계자는 “이것이 에이스의 품격”이라고 했다.



    최민정도 다르지 않았다. 여자 1000m 개인전과 3000m 계주에서 각각 은메달을 따내며 세계 정상급 스케이터임을 다시금 입증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번 대회 쇼트트랙 경기의 피날레를 장식한 2월 17일 여자 1500m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 여자 선수를 통틀어 첫 금메달이기에 의미가 상당했다. 준준결선, 준결선에 이어 결선까지도 압도적인 레이스를 펼치며 중장거리 종목에선 적수가 없음을 입증했다. 이 종목 강자인 쉬자너 스휠팅(네덜란드)과 아리아나 폰타나(이탈리아)도 최민정의 기량에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최민정은 “스스로와 싸움에서 한계를 어느 정도 넘어설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과거의 나를 계속 넘어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계속 준비했다. 그렇게 준비했기에 마지막까지 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만족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금메달의 원동력이었다.

    박장혁과 이준서, 이유빈과 서휘민 등 차세대 주자들도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특히 역대 최약체 전력이라는 편견과 싸운 여자 3000m 계주, 남자 5000m 계주에서 따낸 은메달의 가치는 실로 엄청났다. 그 누구도 대표팀이 이 종목 3연패에 실패했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계주에서 입상할 수 있었던 비결은 끈끈한 팀워크였다. 팀워크 강화는 모두가 꼽는 최고 수확이다. 이전까지 쇼트트랙은 종목 특성상 융화가 쉽지 않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개인전의 경우 치열한 몸싸움을 통해 순위가 바뀔 수 있어 종목의 본질을 해친다는 평가도 적잖았다. 이로 인해 항상 팀워크와 관련된 불협화음을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최고참 곽윤기(고양시청)가 선수들을 하나로 묶었다. 현장에서 보고 들은 미담만 수십 가지가 넘는다. 대표적으로 개막에 앞서 훈련이 끝난 뒤 곽윤기는 선수들을 한자리에 모아 기념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3번째 올림픽을 경험하는 만큼 매순간이 추억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억지로라도 추억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배들 살뜰히 챙긴 맞형 곽윤기

    2월 9일 오후 중국 베이징캐피털 실내빙상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선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황대헌 선수가 플라워 세리머니를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뉴시스]

    2월 9일 오후 중국 베이징캐피털 실내빙상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선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황대헌 선수가 플라워 세리머니를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뉴시스]

    그뿐 아니라 곽윤기는 취재진에게 “경기에 나서지 않는 선수들도 많이 조명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레이스에 나서든 아니든 모두가 한 팀이라는 소속감을 강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대회 초반 주목받지 못했던 여자대표팀 서휘민과 박지윤, 남자대표팀 김동욱에게 여러 차례 질문을 던진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성적 이상의 소중한 가치를 챙기려 했고, 대표팀 결속력도 그만큼 강해졌다.

    여기에 더해 곽윤기는 남자 5000m 준결선에선 환상적인 인코스 추월로 결선행을 이끌며 국민을 열광케 했다. 편파 판정 논란이 불거졌을 때 전면에 나서 불합리함을 토로했던 그의 사이다 같은 질주는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이 만들어낸 최고 명장면 중 하나다. 곽윤기는 모든 일정을 마무리한 뒤 “끝까지 믿어주신 국민들, 팬 여러분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너무너무 훌륭한 후배들과 함께 시즌을 보내서 정말 행복하고 기쁜 올림픽이었다”며 맏형다운 품격을 보였다.

    한국 쇼트트랙은 늘 견제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종목을 불문하고 세계 수준의 강자들이 등장하고 있어 마냥 안심할 수가 없다. 오히려 한국이 도전자 입장인 종목도 존재한다. 특히 이번 대회처럼 홈 텃세가 심한 국가에서 레이스를 펼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확실히 느꼈을 터다. 베이징 겨울올림픽 쇼트트랙은 한국에게 수확과 과제를 동시에 남겼다. 하지만 무엇보다 선수들에게 정말 고생 많았다는 한마디를 꼭 전하고 싶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