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03

2021.08.20

공수처가 조국 수사할까, 칼날 위에 선 김진욱

[이종훈의 政說] 설치 목적 맞게 움직이려 애쓰는 중… 이광철 前 비서관 수사 강도 높게 진행

  •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정치학 박사

    입력2021-08-2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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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오른쪽)이 1월 21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후 함께 이동하고 있다. [뉴스1]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오른쪽)이 1월 21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후 함께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진보 성향 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이 8월 9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을 직무 유기 및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고발 사건과 관련해 고발인 조사를 고의적으로 장기간 해태한 것은 물론, 검찰로 사건을 떠넘겨 회피했다는 주장이다.

    1호 수사 대상 윤석열 원한 좌파 진영

    사세행은 2월 라임 사건 핵심 인물인 김봉현 씨로부터 술 접대를 받은 의혹이 있는 검사에 대한 부실 수사를 방조하고 비위 행위를 은폐한 의혹으로 윤 전 총장 등을 고발했다. 이것을 시작으로 윤 전 총장과 관련해 15건을 고발했다. 공수처는 이 가운데 2건, 즉 옵티머스 펀드 사기 부실 수사 의혹,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교수 수사 방해 의혹을 입건해 수사 중이다.

    사세행은 6월 28일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공수처에 고발했다. 최 전 원장이 월성 원전 조기 폐쇄를 과잉 감사했다고 주장했다. 공수처는 이 사건과 더불어 윤 전 총장과 관련된 것 가운데 라임 술 접대 사건 은폐 의혹을 검찰로 단순 이첩했다. 공수처는 8월 6일 입장문에서 이첩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 출신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고소·고발 사건을 포함한 모든 사건 처리에 있어 어떠한 정치적 고려나 판단 없이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한다. 법 적용을 포함한 수사 요건과 부합 여부, 사실 규명을 위한 수사의 필요성 및 상당성, 수사의 효율성 및 공정성 등을 기준으로 입건, 불입건, 이첩, 분석 중지 등의 결정을 내리고 있음을 밝힌다.”

    공수처가 만들어지면 윤 전 총장을 1호 수사 대상으로 삼길 바란 것이 이른바 진보 진영이다. 지난해 초부터 이런 말이 범여권 주변에서 떠돌 때 처음 공식적으로 언급한 인물은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다.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을 그만둔 직후인 지난해 3월 30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렇게 언급했다. “공수처 수사 대상은 아마 본인(윤석열)과 배우자가 더 먼저 되지 않을까 싶다.”



    윤 전 총장을 공수처 수사 대상 1호로 삼을지 여부는 김진욱 공수처장의 국회 인사청문회 때도 쟁점이었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은 최강욱 대표의 발언 동영상을 청문회장에서 보여준 뒤 “이 자리에 있는 여권 의원만 하더라도 공수처 1호 대상으로 윤 전 총장을 꼽았다”며 김 처장의 견해를 물었다. 이에 대해 김 처장은 “1호 사건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 다만 정치적 고려 없이 사실과 법에 입각하겠다”고 응답했다.

    김진욱의 선택은 조희연

    김 처장이 선택한 1호 수사 대상, 곧 ‘공제1호’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사건이다. 2018년 7∼8월 해직 교사 5명을 특정해 특별채용을 검토·추진하라고 지시한 혐의다. 감사원 감사 결과를 받아 선정한 1호 수사 대상이지만 곧바로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국민의 오랜 기다림 끝에 출범한 공수처 1호 수사가 해직 교사 특채라니 뜻밖이다. 고위공직자 비리를 성역 없이, 철저하게 수사하길 바랐던 국민의 기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역시 이렇게 비판했다. “공수처가 1호 사건으로 조희연 교육감의 이른바 해직 교사 특별채용 사건을 다룬다고 한다.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고나 말할 법한 일이다.”

    김 처장이 윤 전 총장을 1호 수사 대상으로 삼았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1호 사건으로 삼지 않았더라도, 윤 전 총장 및 최 전 원장 사건 일부를 검찰로 이첩하지 않았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박수 쳤을 것이 분명하다. 이를 통해 민주당이 공수처 설치를 강행하면서 기대한 바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반대편 탄압, 우리 편 비호다. 윤 전 총장에게도, 최 전 원장에게도 민주당과 진보 진영은 이런 역할을 바란 바 있다.

    ‘김 처장도 최 전 원장이나 윤 전 총장처럼 정권을 배신하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기름을 부은 사건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공수처로 이첩한 이규원 검사의 윤중천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공수처는 7월 이광철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관 자택과 청와대 사무실을 이틀에 걸쳐 압수수색했다. 이 전 비서관에 대한 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되면서 공수처가 당시 민정수석이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청와대 윗선까지 겨누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공수처는 본래 권력형 비리, 즉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전담하는 곳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 처장을 낙점했을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이렇게 설명했다. “김 후보자가 공수처의 중립성을 지키면서 권력형 비리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하고, 인권 친화적 반부패 수사기구로 자리매김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 점에서 야권보다 여권, 행정 부처보다 청와대를 집중 감시하고 비리 징후를 발견한다면 권력 압력에 굴하지 않고 수사해야 마땅하다. 민주당이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일 당시 야당은 공수처가 정권수호처 또는 수사방해처가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이런 우려와 달리 김진욱 공수처는 본래 설치 목적에 맞게, 또 현재의 수사 능력에 맞게 사건을 취사 선택하려 그 나름 애쓰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공수처는 ‘1호’ 사건마저 기소하지 못할 위기로 몰리고 있다. 검찰이 교육감에 대해서는 공수처가 기소권을 행사할 수 없다며, 기소 여부 의견만 달아 검찰로 넘기라도 요구하고 있어서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 이어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전면 인사를 단행해 권력에 순치된 검찰이다. 이런 검찰을 이제 공수처 길들이기에 활용하는 양상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압박 강도로 판단할 때 김 처장 역시 윤 전 총장이나 최 전 원장처럼 칼날 위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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