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3

2011.09.05

고기에 맛 들인 늑대는 사냥꾼을 쫓는다

‘대가 없는 양보’의 위험성

  • 김한솔 IGM 협상스쿨 책임연구원 hskim@igm.or.kr

    입력2011-09-05 09:4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고기에 맛 들인 늑대는 사냥꾼을 쫓는다
    신제품 론칭을 앞두고 대대적인 광고 계획을 세운 방 과장. 하지만 제작도 하기 전 나가떨어질 판이다. 광고비 등 계약 조건에서 대행사와 의견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 협상은 일주일째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제 슬슬 위에서도 압박을 가한다. 답답한 방 과장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제 나도 할 만큼 했어. 양보해서라도 오늘은 협상을 타결한다!”

    네 번째 협상, 방 과장이 말문을 열었다.

    “우리가 광고비 조건을 10% 양보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더는 시간 끌지 말고 여러분도 양보해주세요. 이제 사인하시죠?”



    그런데 웬걸, 상대는 요지부동이다. 그 조건으론 안 된다며 버틴다. 이쪽에서 먼저 내민 손을 거부하는 상대. 방 과장은 뭘 잘못한 걸까.

    사람들은 생각한다. 협상이 풀리지 않을 때 상대와의 관계를 부드럽게 하려면 사소한 것을 먼저 양보할 필요가 있다고. 하지만 협상 전문가는 말한다. 비즈니스 협상에서 “내가 양보를 받았으니 나도 양보해야지”라는 ‘선의의 양보’를 찾기란 어렵다고 말이다.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이자 협상 전문가인 게빈 케네디는 ‘툰드라의 늑대’ 얘기로 양보의 역효과를 설명한다. 오래전 유럽 세일즈맨들이 툰드라 지역의 원주민 마을을 찾아갔다. 그들은 원주민에게 냉장고와 맥주 같은 문명의 이기를 팔고, 사냥 방법을 배우면서 가까워졌다. 그런데 바로 그 ‘사냥’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한 세일즈맨이 사슴 사냥에 성공한 뒤 썰매를 타고 돌아오던 중 멀리서 늑대 한 마리가 쫓아오는 것을 느꼈다. 위험을 직감하고 미친 듯이 도망치던 그는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사냥한 고기를 조금 떼어 던져줬다. 다행히 늑대가 쫓아오지 않아 한숨 돌리려던 순간, 이제는 서너 마리의 늑대가 쫓아오는 것이 보였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또 고기를 던져줬다. 이때부터 불행의 반복이었다. 어느덧 수십 마리가 그를 뒤쫓았고, 남아 있는 고기는 없었다.

    그 순간 마을에 도착해 다행히 늑대로부터 목숨은 건질 수 있고, 이 일을 전해들은 다른 세일즈맨들은 그 지역을 돌 때마다 여분의 고기를 갖고 다니다가 늑대가 위협해오면 던져줬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어느 날 원주민들이 그들을 내쫓은 것이다.

    “배고픈 늑대에게 썰매를 따라가라고 가르친 멍청한 놈들! 당장 꺼져!”

    이들이 쫓겨난 이유는 늑대에게 베푼 ‘선의의 양보’ 때문이다. 양보가 결코 미덕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양측 모두 무작정 버티면서 시간만 끌 수는 없는 법. 양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다음 같은 사항을 명심해야 한다.

    ‘만약’이라는 말을 반드시 붙여라. “만약 내가 그 조건을 양보한다면 당신은 나에게 뭘 양보해줄 수 있나요?” 이 말은 ‘내가 먼저 양보할 테니 당신도 양보해달라’는 것과 다르다. ‘당신이 내 마음에 드는 양보를 한다면 나도 똑같이 양보할 뜻이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양보가 절대 ‘공짜’가 아님을 알려라. 나의 양보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직도 꽉 막힌 협상을 푸는 방법은 양보라고 생각하는가. 자신의 상대는 툰드라의 늑대와 다르다고 믿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보자. 당신의 상대가 당신에게 ‘대가 없는’ 양보를 한다면 당신도 그에게 그만큼의 양보를 해줄 것 같은가.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