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3

..

“할머니 사랑해요”

  • 입력2005-11-01 13:1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할머니 사랑해요”
    뒤늦게 깨달은 할머니의 사랑을 적고자 펜을 들어본다.

    금년 1월에 할머니가 계신 철원으로 왔다. 할머니가 얼음판에 미끄러져 발목이 부러져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나는 그 구실을 핑계삼아 병원과 시골집을 오가며 착한 손녀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최소한 겉으로만큼은….

    사실 할머니가 다치신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이 때문에 내가 할머니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더욱이 내가 철원에 오지 않았다면 서울에서 한심한 나날을 보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즐거움은 더욱 컸다.

    처음 한달 동안은 맛난 음식을 싸들고 다니며 최선을 다했다. 다른 형제들과 달리 일찍이 서울에서 생활한 아버지로 인해 나는 사촌들이 받은 할머니의 정을 느껴볼 기회가 없었다. 할머니의 정은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겪으면서,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함께 그 속에 묻혀버렸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할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삶에서의 잇따른 좌절을 환경 탓으로 돌리려는 손녀를 이해해 주실 분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런 불만을 할머니에게 토로한 데에는 세월이 만든 벽을 허물어 보려는 노력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할머니께서는 아셨을까.



    지루한 병원 생활이 두 달쯤 되었을 때 사소한 일로 화를 참지 못해 할머니께 대들며 돌아서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는데 어쩌다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부끄러운 행동에 낯이 붉어진다.

    돌아선 즉시 후회하면서도 할머니를 보기가 민망해 다른 곳으로 피신(?)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퇴원하셨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그러나 다시 시골집에 돌아가기가 여간 난처하지 않았다.

    결국 일이 생긴 뒤 3일째 되는 날, 돌덩이같이 무거운 마음으로 무작정 할머니를 찾아갔고 길지 않은 대화 끝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할머니의 한발 물러서 주신 아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철없는 손녀와 달리 유교주의에 물든 어르신은 맘 상한 부분을 겉으로 보이지 않게 속으로 누르려고 애쓰셨으리라.

    지금 이 순간 할머니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하고 싶다. 한없이 철부지 같고 한심해 보이는 손녀지만 할머니의 바람이자 나의 오랜 숙원이기도 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언젠가는 못다한 효도를 다하리라.

    할머니 그때까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