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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에서

나무처럼 살고 싶다

나무처럼 살고 싶다

나무처럼 살고 싶다
관악산 무넘이의 새벽 산길을 걷는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없어 좋다. 희뿌연 시야 속에 헐벗은 나무들이 고즈넉이 서 있다. 봄바람이 제법 부드러운데도 숲속의 나무들은 아직 겨울나무 그대로다. 눈맞춰 들여다보고 만져보아도 어디 한 군데 싹틀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남녘에서 들려오는 매화나 산수유꽃 소식에 내 마음은 벌써 봄이 온 듯 훈훈하다. 그런데도 이 나무들은 여태 무엇을 하고 있기에 이처럼 늑장을 부리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봄을 맞이하고 싶은 성급함과는 달리, 오늘 산행에서는 이상하리만치 고결한 신비감을 느낀다. 아무런 치장도 없이 절제하고 있는 나무들의 단아한 간결함 때문인가. 나 자신 선(禪)의 세계에 들어선 듯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리고 이 나무들에 정겨운 마음을 포개본다.

지난 가을, 나무들이 이파리를 훌훌 떨쳐버리던 일이 떠오른다. 버릴 때는 아무런 미련도 없었던 것처럼 무욕의 세계로 빠져들던 나무들. 그리고 겨울 칼바람 속에서 숱한 번뇌를 이겨내며, 오욕을 버리고 분노를 삭여냈을 나무들을 새삼스레 만져본다.

숲길을 천천히 오르면서 나도 나무들처럼 의연해지려고 애써 본다. 그동안의 내 생활이란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붙잡아 보려고 허겁지겁 날뛴 것이 아닌가 싶어 조금은 무안해진다. 허섭쓰레기 같은 욕심은 버려야지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본다.



그동안 나는 웹사이트, 사이버공간에서 괜히 주눅이 들어 남의 눈치나 보고 있었던 것 같아 쑥스럽기도 하다. 벤처사업이나 재테크, 주식이야기에 끼여들지 못해 안달을 했던 것도 같다.

숲속의 이 나무들은 여전히 말이 없고 허둥대지 않는다. 성급하게 싹을 틔우려 하지 않는다. 작년에 미처 떨쳐버리지 못한 잎사귀가 말라 비틀어진 채 달랑거리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미련이나 아쉬움 같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겸허하게 자신을 다스리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참선의 자세를 흉내내본다. 이젠 순리대로 살아야지 하고 되뇌본다.

밋밋하고 볼품 없는, 아직은 겨울나무 그대로이지만 그 안에 물이 차오르고 화사한 봄을 피워내고 있음을 느낀다. 의젓한 그 몸매에 새싹이 돋아나도록 단비나 한 줄기 내려주었으면 좋겠다.



주간동아 229호 (p1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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