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8

2000.04.06

맹장요? 오 마이 갓!

  • 입력2006-04-28 1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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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장요? 오 마이 갓!
    1995년 겨울, 한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크리스마스를 맞게 됐다. 기대감으로 설레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갑자기 하복부쪽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하는 가운데 병원 이곳 저곳을 다녔지만 속시원한 진단을 듣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 병원에서 충수염(맹장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엉겁결에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여전히 강한 통증이 이어졌다. 수술을 받았음에도 상황이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의사는 오진을 했고 나는 불필요한 수술을 받았던 것이다.

    그 뒤 지압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결과 통증의 근원은 맹장이 아닌 골반 뼈에 있었다. 언젠가 출근길에 버스를 타려다가 넘어진 일이 있었다. 그때 골반 뼈가 심하게 틀어진 것이었다. 왜 그제서야 그 일이 생각났는지….

    한국에서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인데 낯선 타향에서 가족도 없이 쓸쓸하게, 그것도 아파서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된 것을 생각하니 괜스레 억울하고 서글퍼졌다.

    사실 초등학교 시절 부산에서 몇 년 지냈던 때를 제외하고(나는 스코틀랜드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때가 한국에서 맞는 첫 크리스마스였고, 내 인생에서 부모님 없이 홀로 보내야 했던 크리스마스이기도 했다.



    5년 전 나는 증권 및 정치분석가로 일하기 위해 다시 한국에 왔었다. EBS에서 영어프로그램 진행을 맡기 시작한 것이 97년이니까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전이다.

    그해 크리스마스는 내 생애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거리가 되었다. 그때 문병차 찾아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많은 친구들과 새로 사귄 친구들. 그들의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은, 수술 후 쌓인 정신적 육체적 긴장과 피로로부터 건강이 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준 청량제와 같았다. 너무 감사했다. 그 많은 사랑을 받아도 되는지 미안할 정도로….

    그때 비록 난 충수염이라는 오진으로 불필요한 수술을 받았지만, 그에 대해 의료적 책임을 묻거나 법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일을 계기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론 자신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많은 상황들과 직면하게 되는데, 그때 아무리 상황이 힘들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때 인생은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날을 계기로 난 나의 오랜,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한방치료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갖게 되었다. 요즘 난 한방과 그 치료법을 선호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었다. 여러 가지로 난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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