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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에서

“선생님 장낙도가 떨어졌대요”

“선생님 장낙도가 떨어졌대요”

“선생님 장낙도가 떨어졌대요”
“선생님 자꾸 타이거 생각이 나요.” 겨우 여섯살인 우리 반 혜진이가 놀이를 하다말고 시무룩한 얼굴로 대뜸 한 마디 한다.

“타이거? 백터맨 타이거 말이니?”

“네.”

“너, 타이거 좋아하는구나.”

“네, 크면 타이거랑 결혼할 거예요.”



유난히 감수성이 풍부한 혜진이는 평소 TV에서 ‘백터맨’을 열심히 봐왔는데 얼마 전 그 백터맨이 종영돼 이제는 그 주인공인 타이거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근데 어떡하지? 인제 백터맨이 끝났잖아. 혜진이가 타이거를 더 볼 수 없게 됐네… 많이 슬프겠구나.”

나는 더 이상 이 짝사랑에 빠진 소녀(?)를 위로해줄 말이 없었다. 사실은 나도 종종 재미있게 봐왔던 터라 섭섭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어린 아이들과 유치원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스스로 나 자신에 대해 부족한 점을 참 많이 느낀다. 모든 직업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유치원 교사는 한 가지만 잘해서는 되지 않는다. 노래도 잘해야 하고, 그림도 잘 그려야 하고, 율동도 잘해야 한다. 물론 동화구연은 기본이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일일 게다.

나는 가끔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다가 나 자신이 새삼 부끄러워짐을 느낀다. 왜일까. 작위적으로 눈높이는 맞추었지만 내 안에는 아이들에게 있는 순수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순수함을 갖기엔 찌든 세상에 너무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반 아이들이 나에게 ‘거리감’을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 아는 것도 많고 조숙하다. 그야말로 얕보다간 큰코 다치기 십상이다.

별명을 ‘미달이’라고 붙여준 우리 반 혜수는 다 큰 어린이(?) 같다.

하루는 좀 풍성한 원피스를 입고 출근했더니 “선생님, 애 뱄어요?”라고 핀잔을 주지 않나, 내가 칭찬을 해주면 내 엉덩이를 엉큼하게 툭툭 두드리며 “선생님, 예뻐요”라고 말해 나를 반 기절시키기도 한다.

또 어떤 아이는 아침인사는커녕 나를 보자마자 “선생님, 장낙도가 국회의원에서 떨어졌어요”라고 하기도 한다(한때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은실이’ 얘기다). 그러면 나도 심각하게 “응! 알아. 근데 또 출마한대” 라고 받아넘긴다.

나는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아이들이 내게 세대차이를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퇴근하자마자 만화 영화를 켜 놓고, 문방구에서 파는 천원짜리 포켓몬스터 백과사전을 보면서 오늘도 열심히 공부(?)를 한다. “음… 파라스, 이상해씨, 파이리, 꼬부기, 크랩, 라이추, 페르시아, 아니 참 페르시온….”



주간동아 216호 (p10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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