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6

2006.08.01

恨 때문에 공든 탑 허물 텐가

  • 입력2006-07-31 1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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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恨 때문에 공든 탑 허물 텐가

    <b>서지문</b><br>고려대 교수·영문학

    급속한 경제성장의 시대를 살아온 50대 이상의 국민은 거의 예외 없이 노동자에 대해 연민과 죄의식을 지니고 있다. 나의 경우 60년대에는 아직 사회의식이 형성되기 전이어서, 70년대에는 절반 이상을 외국에서 공부하느라 가장 치열했던 고도성장의 초기 단계를 대강으로밖에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우리나라의 노동자는 저임금,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통을 감수하며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이룬 공로자이자, 희생자다.

    전태일 사건, YH 사건 등이 남긴 충격과 무력감은 마음속 깊은 곳에 상처처럼 남아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70년대에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당시 대학생의 신분으로 위장 취업을 했다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현재 모습이 아무리 거부감을 준다고 해도 약간의 존경심과 부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국민 다수가 공통적으로 지닌 이 부채감이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켰다.

    그러나 이 부채감은 노동자나 좌파 정부에 무제한의 횡포를 허용하는 백지수표가 아니다. 우리의 경제성장에 노동자가 기여한 바는 크지만, 경제번영은 모든 국민이 이루어낸 합작품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인권 발전의 최대 수혜자인 노동자들이 민주적 절차와 인권을 짓밟으면서 국가 경제를 위태롭게 하고 전 국민에게 위기감을 줄 때, 국민은 노동자에게서 부채감을 거둬들인다. 국민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노동운동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이번에 노조의 폭력과 만행으로 파손되고 오물이 널려진 포스코 건물은 국민의 뇌리에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이미지로 오래 남을 것이다.

    세계에서 최초로 산업혁명이 일어나 번영의 열매를 가장 풍성하게 거둬들인 동시에 산업화의 폐단과 부작용도 가장 심하게 앓았던 영국에서는 19세기 내내, 후발주자인 미국·독일·프랑스 및 기타 여러 유럽 국가들에서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제3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20세기 후반에 노동운동은 국민의 죄책감과 연민에 의지해 성장했고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노조가 노동자의 자기 보호 수준 이상의 힘과 세력을 갖게 된 이후에는 국민의 연민 및 지지를 상실했다.

    중국 부자들은 성취감을 느끼지만 불안하다는 기사를 봤다. 어느 나라나 경제개발의 초기에 한 걸음 앞서가던 사람이 1년 후에는 10보를, 5년 후에는 100보를 앞서게 마련이다. 그러면 어제의 동료들은 스스로를 낙오자로 여기고,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PC방 하나 개업하기 위해서 200여 개의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중국에서 뇌물과 연줄의 활용 없이 기업을 운영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60년대, 70년대도 이보다 크게 낫지는 않았다.

    노동자들 인내와 양보 능력 보여줄 때

    이렇게 온갖 무리를 해가면서 이룬 경제성장 덕에 나라는 부강해지고 국민의 생활 및 의식 수준은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너무 무리한 과정을 밟았기 때문에 고도, 압축성장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이 후유증을 현명하게 수습하지 못하면 어렵게 이룩한 경제번영은 붕괴되고 만다.

    노조가 자신을 계속 약자, 피해자로 인식하면서 일방적인 요구와 파괴행위를 일삼는다면 우리 경제는 파탄 나고, 노동자는 다시 절대적 약자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시민단체 중에도 극한 폭력투쟁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하는 단체가 많다. 이들은 공권력을 경멸하고 이성적 대화를 배격하며 자신의 폭력성과 정당성이 정비례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집단이 자신의 요구를 폭력적 방법으로 관철시키려 할 때 우리 사회는 이성적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아노미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노조가 과감히 ‘한’을 버리고 지혜와 이성을 행동의 원칙으로 삼지 않으면 노조의 미래는 없다. 사측도 노동자들이 회사와 운명공동체 의식을 확실히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노동자도 이제는 인내와 양보의 능력을 보여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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