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0

2005.11.15

막 나가는 고이즈미

  • 김경민 한양대 교수 국제정치학

    입력2005-11-14 1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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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나가는 고이즈미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재임 기간에 보여준 외교 행보는 역사적 책임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주변 국가를 침략했지만 일본도 수백만 명의 인명이 희생된 제2차 세계대전이었기에 종전 후 일본인들도 군국주의라면 치를 떨고 일본이 우경화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이즈미 정권이 출범하면서 일본 국민을 우경화의 길로 내몰고 있다.

    이제 일본 내에서 과거 사회당이 그랬던 것처럼 자위대조차도 인정하지 않던 수줍은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야스쿠니 신사참배로 불거진 한국 및 중국과의 외교 마찰은 개선될 가능성이 없고 오히려 악화 일로에 있다. 10월31일 단행된 고이즈미 내각 개편의 면면을 보면 고이즈미의 외교는 아시아가 안중에 없는 것 같다. 일본 근대화 주역의 한 사람인 후쿠자와 유기치의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이 연상될 정도로 아시아를 무시하는 태도다.

    고이즈미 총리는 아소다로 씨를 외상으로 임명하면서 아시아 외교는 강경파가 해야 잘되는 법이라고 외교 노선까지 주문했다. 한 나라의 외상 자리를 차지한 아소다로 씨는 일본식 성명 강요(창씨개명)는 조선인이 원해서 했다는 망발과 단일문화를 가진 민족은 일본뿐이라는 배타적 국수주의 발언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다.

    일본 정부의 대변인 자리인 관방장관을 맡은 아베 신조 씨는 차기 총리 후보 1순위에 있는 사람이다. 그 역시 총리가 되면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하겠다고 공언했으며, 대북경제 제재까지 주장하는 매파 중의 매파다. 고이즈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할 사람이 아니라는 중평이다. 그리고 현행 헌법으로도 집단적 자위권이 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군사력의 대외팽창을 염두에 둔 인물이다.

    고이즈미가 보수강경파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내년 9월 본인이 총리직을 물러나더라도 보수강경 노선이 지속되길 희망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일본이 신방위계획대강을 발표할 때 중국을 잠재적인 위협국가로 지목하면서 세력 경쟁의 걸림돌로 규정했다. 이 같은 일본의 분위기는 군사력 보유뿐 아니라 해외분쟁 개입 금지를 규정한 평화헌법 제9조의 개정을 서두르게 하고, 미국을 등에 업고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게 할 것이다.



    내각에 보수강경파 전면 배치 … 아시아 안중에 없는 듯

    이미 일본은 2005년까지 5년간 진행돼온 신중기방위력 정비계획에서 주변국이 불안해한다는 이유로 15년 이상 결정하지 못했던 공중 급유기 도입을 결정하고 실전 배치하게 된다. 공중 급유기란 원거리 작전이 가능한 무기체계로 일본의 전수방위 전략을 파기하는 상징적 항공기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함으로써 발발한 걸프전쟁에서 미국이 F-15 전투기를 7번 공중 급유를 시켜가며 17시간 만에 이동 배치시키는 신속성을 발휘했는데, 이러한 공중 급유기의 도입 결정은 일본 군사력의 해외확장 의지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고이즈미의 인기몰이는 전쟁이라는 참극을 겪지 않은 일본의 신세대들을 그럴듯한 민족적 자존심을 주고 과거사라는 열등의식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정치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과연 먼 장래에 그 역사적 책임을 어떻게 질지 사뭇 개탄스럽다. 동북아의 평화는 일본이 과거의 침략사를 철저히 반성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면 동북아의 협력과 안정은 이루어지지 않게 될 것이고 이는 전적으로 일본의 책임이다.

    일본의 우경화 행보는 국방비 부담으로 태평양 지배의 일부를 일본에게 부담시키려는 미국의 손익계산과도 맞아떨어지고 있다. 스즈키 젠코 수상 시절 1000해리 해상교통로 방어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주변 국가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이제 미국은 저 멀리 말라카해협까지 맡기려 한다. 일본의 팽창주의는 일본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에도 역사적 고통을 되씹게 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올바른 역사인식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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