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5

2001.10.18

부패통제기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

  • < 김병섭 / 서울대 교수·행정학 >

    입력2004-12-30 15: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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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패통제기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
    올해 한가위의 화제는 단연 ‘이용호 게이트’였다. 주가조작이나 공금횡령 등도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그보다 심한 좌절감을 주는 것은 우리 사회에 아직도 이러한 비리가 가능하고 또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다. 비리를 막아야 할 기관이 서로 연결되어 이를 덮어주었다는 사실도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서울지검은 지난해 5월 이용호씨를 횡령혐의로 긴급체포하여 조사했으나 국정원 경제단장과 전임 법무장관의 로비로 무혐의 처리되었다. 이 같은 ‘아는 사람 봐주기’와 ‘힘있는 기관 눈치보기’ 등의 행태로 부패 통제 장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수사 담당자는 당연히 법에 의해 조사해야 하건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연고주의와 정실주의는 이를 어렵게 만든다. 이 때문에 부탁을 들어줄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주위에는 늘 사람이 모인다. 지연과 학연 그리고 혈연을 가리지 않고 줄대기 위해 사람들이 꼬이게 된다. 연고주의와 정실주의 청산 없이 공적 영역에서의 공정성 확보란 매우 어려운 노릇이다. 공정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서로 봐줄 수밖에 없는 처지가 계속 꼬리를 물면서 연고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연고관계가 있는 사람끼리는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문항에 응답자의 90%가 “그렇다”고 응답해 우리 사회에 연고주의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비공식 연줄망은 특정 조직 내에서 의사소통과 정보교환을 촉진하고, 건전한 인간관계를 형성해 조직 인화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긴 하다. 그러나 집단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어렵게 만들고 집단간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경우 인화라는 명목 아래 집단적 이익을 추구하고 집단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는 쪽으로 나갔고, 이로 인한 폐해가 심각한 것이 문제다. 연고 집단 내에 속한 사람들끼리만 나눠먹다 보면 사회질서의 정당성이나 시스템의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사회적 신뢰 수준이 저하되며, 우리 편 봐주기로 인해 법을 지키는 사람만 손해라는 인식을 낳음으로써 편법이 득세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따라서 연줄망에 의한 공과 사의 미분화를 없애야 하지만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정실주의와 연고주의를 타파하지 않고서는 공적 장치가 작동할 수 없으며, 공적 장치의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는 한 연고주의와 정실주의를 제거할 수 없는 식으로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행태와 제도 사이의 딜레마적 상황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그 상호관련성에도 불구하고 제도를 통해 행태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행태를 변화시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제도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적게 걸리는 관리 가능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검찰 개혁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 … 지혜 모아야

    연고주의에 의한 비리의 연줄망을 없애는 관건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부패통제기구를 개혁하는 것이다. 특히 검찰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민감한 정치적 사건마다 축소·은폐·편파수사 시비가 끊이지 않는 최근의 일그러진 검찰상은 검찰 개혁이 얼마나 화급한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검찰 개혁의 핵심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다. 검찰권의 중립화를 위해 인사청문회나 국회 동의 등을 거치도록 검찰총장 임명 절차를 개선하고 법정 임기를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 검찰인사위원회를 강화해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는 한편, 법무부 장관의 검사 인사권을 검찰총장에게 넘겨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아울러 검찰 조직의 집권화 정도를 완화하는 방안으로 검사동일체 원칙의 파기, 주임검사 이의제도 등 개별 검사의 자율성 제고, 기소독점의 완화 및 재정신청제도의 확대 등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방안도 이제 고려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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