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9

2000.04.13

정치가 경제를 살린다?

  • 입력2006-05-10 13: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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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가 경제를 살린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여야의 경제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나라빚이 얼마인지를 놓고 다투더니, 급기야 외국자본 때문에 우리나라의 국부가 유출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쯤 되면 한가닥 한다는 경제학자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정치인들의 이해관계 놀음에 경제논리가 왜곡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둔한 탓인지는 몰라도, 나는 아직도 왜 정치가 경제와 분리되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정책의 내용이 좋은 것과, 그 정책이 먹혀들게끔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는 후자의 문제가 큰 의미가 없었다.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박정희대통령이 자기 주변에 똑똑한 참모를 두려 했던 것도 좋은 정책을 생각해내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치민주화가 진행될수록 집권세력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그대로 집행된다고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동강댐을 가지고 이랬다저랬다하는 것도, 정책의 내용에 변화가 생겨서라기보다는 정책의 집행이 힘들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대통령들은 주변에 뚝심 좋은 자기 사람들을 배치하는 경향이 큰 것 같다. 물론 이들이 똑똑하기까지 하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만장일치가 아닌 한 민주사회에서 결정되는 정책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책으로 인해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보는 사람이 갈릴 수 있다. 이 경우 이익이 손실보다 클 수 있는 정책 대안을 찾는 것이 유능한 정책보좌관일 것이다. 그래야 다음 선거에서 다수결로 이길 수 있으니까.

    정부를 심판하고 정권을 바꾸는 것은 민주시민의 기본권이다. 정당이 선거를 의식하고 국민의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야당이 국가 부채가 400조원이고, 국부가 유출된다고 했다 해서 여당이 흥분할 이유가 없다. 현 정권이 펼친 정책 내용이 옳고, 또 국민이 이를 신뢰한다면 야당의 ‘그릇된’ 공격은 역효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관들이 일제히 나서 일간지에 감정까지 섞인 둣한 광고를 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정책의 내용에 자신이 없거나, 그 정책을 평소에 성실히 국민에게 고지할 의무를 소홀히 한 탓이 아닐까.



    여당을 공격하는 것은 야당이 존재하는 이유다. 평소에 유권자를 소홀히 하는 집권정당은 선거 때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다. 말로는 모두 민주화를 외치며 왜 민주사회에서 정책이 정권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는지 궁금하다. 모두들 옛날과 달라진 것 없는 타락선거라고 욕하지만 나는 이번 선거에서 바람직한 변화를 보고 있다. 정치와 경제가 비로소 함께 가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가 경제를 무기로 삼고 나서니 평소 얼굴 보기 힘든 장관들이 총 출동해 정책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반면, 경제가 정당의 지지율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는 정책대결이 중심이 되는 진정한 민주정치의 장으로 가고 있다는 신호라 할 수 있다.

    외국인투자는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를 함께 미친다.

    정부가 평소 외국자본만이 우리의 살 길인 것처럼 일방적인 홍보를 했기 때문에, 야당이 국부유출 운운하며 부정적인 측면을 공격할 빌미를 준 것이다. 만일 정부가 평소에 외자의 긍정적 효과가 부정적 효과보다 크게 되도록 노력한다는 식의 균형있는 입장을 보였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의 정책이라도 말하는 사람의 신뢰도에 따라 먹혀드는 정도가 다를 수 있다. 정책의 신뢰도는 정권의 운명으로 이어진다. 아마 이번 선거를 통해 정부 여당은 따끔한 감시자가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 시민들은 보다 균형있는 경제정책대결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쯤 되면 정치가 경제를 살린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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