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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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유권자만이 희망이다”

  • 입력2006-02-06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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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유권자만이 희망이다”
    각 당의 공천자명단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답답하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다시 한 번 확인했기 때문이다.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자, 시민단체들이 제시한 공천부적격자 명단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겠다고 대통령과 여야 지도자들은 공언했다. 낙선운동을 허용해 주는 체하면서 교묘하게 제약시킬 때는 물론 실망이 컸다. 그러나 의석수 26석을 줄이자는 선거구획정위원회안이 통과되는 것을 보고 정치권이 국민을 아주 깔보는 것은 아니구나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공천에 일말의 기대를 걸기도 했다. 공천을 둘러싼 문제가 하루아침에 없어질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희망의 근거는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공천 결과를 보면 현 정치권에 정치개혁을 기대하는 게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정치권이 전면적인 개혁은커녕 아주 작은 변화조차도 거부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낡고 썩은 정치를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국민의 뜻을 정치권은 굳이 모른 체했다. 낙선운동을 통해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던 약속은 헌신짝처럼 내던져졌다.

    이런 조짐은 이미 공천과정에서 엿보였다. 우선 공천과정이 불투명하고 비민주적이었다. 총선시민연대는 낙천대상자를 지목하고 민주적 공천을 위한 절차와 기준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평소에 찍어놓은 ‘미운 놈’ 쫓아내고, 잘 보인 ‘내 새끼’ 심는 데에만 써먹었을 뿐이다.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공천심사위원회 밖에서 흘러나온 말대로 공천이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또 공천심사위원회가 국민의 대표가 될 사람들을 공천하면서 그들의 정치적 견해를 공식적으로 들어본 일도 없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디 있는가.

    공정한 공천이었다면서 내세우는 근거가 지역구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다. 물론 지역구민의 뜻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결국 당선가능성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당원은 무엇을 하는 존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원 또는 대의원의 경선을 통해서 후보를 뽑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원 또는 대의원의 선택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우스운 일이다. 정당 지도부 자체가 그렇게 믿지 못할 당원과 대의원들에 의해서 선출되고 구성된 게 아닌가. 스스로 자신의 존재 근거를 부정하는 말을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당당히 말하는 지도자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4월13일 빠짐없이 투표하자”



    정당법 31조에는 공직후보자 선출과정에서 당원들의 의사를 반영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어느 정당도 당원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았다. 생전 보도 듣도 못한 사람이 어느날 공천받았다고 나타나면 무조건 그 사람을 위해서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 당원들이 안쓰럽다. 여론조사가 가장 믿을 만한 근거라면 여론조사해서 그 결과를 보고 후보를 결정하면 되지 공천심사는 번거롭게 왜 하는가. 어떤 후보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여러 지역에서 거론되다가 자신과 아무 관계없는 지역에 공천받기도 했다. 이건 공당의 자세가 아니다.

    민주정치의 중앙통로인 선거가 국민의 대표를 뽑는 신성한 정치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야 한다. 그러나 공천이 비민주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선택의 폭이 좁아지고 말았다.

    이미 출발부터 잘못된 선거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 유권자 운동이 남아 있는 것이다. 총선시민연대는 여야가 공천한 낙천대상자들의 공천철회운동을 벌이고, 이어서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낙천운동이 정당을 향한 요구였다면 낙선운동은 유권자들을 향한 운동이다. 유권자가 얼마나 무서운 지표로써 심판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 그래서 낙천대상자들을 공천한 것이 커다란 잘못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4월13일 빠짐없이 투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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