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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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쿠오바디스’

  • 박원순 / 변호사 . 참여연대 사무처장

    입력2007-03-15 14: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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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는다.”

    오늘날 검찰의 위상을 대변해주는 말이라고 하면 지나칠까? 검찰이 야당정치인만 소환하면 표적수사 시비가 붙기 일쑤다. 이른바 ‘언론장악음모의 혹사건’은 의혹만 가득 남긴 채 사실상 종결되었다. 폭탄주 한잔에 파업유도 발언으로 온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던 검찰이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옷로비의혹을 수사하는 특별검사가 사건은폐혐의로 당시 수사검사를 조사할 의지를 밝히는가 하면 서경원의원 밀입북사건을 조사한 당시 수사검사들이 검찰의 재조사 소환대상자로 불려다닌다. 서릿발 같아야 할 검찰의 위상이 온데간데 없다.

    “검찰 수사 때 담당검사가 연정희씨의 진술에 맞춰달라고 요구해 거짓 진술했다”는 라스포사 정일순사장의 발언은 충격이었다. 청와대 사직동팀의 첩보보고서가 김태정 전 검찰총장의 부인 연정희씨에게 전달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특별검사의 발표도 그것이 진실이라면 하나의 폭탄이다. 물론 정일순사장은 그 후 이 말을 번복하고 있고 특별검사의 발언은 ‘추정’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은 연상한다. 배달되어온 코트를 걸쳐보고 반환했다는 검찰의 수사결론이 ‘탁’치니 ‘억’하고 죽더라는 박종철군사건 수사결과 발표와 어찌도 그리 닮았는지…. 국민은 기억한다. 검찰이 대역까지 동원하며 연정희씨의 출두와 귀가 편의를 돕던 장면을. 그리고 옷로비의혹사건의 수사결과를 발표하던 서울지검 3차장의 쉴새없이 흘러내리던 땀과 그 땀을 손수건으로 연신 훔쳐내던 장면을.



    서경원전의원사건의 경우는 검찰을 더욱 가련하게 만들고 있다. 기세 좋게 야당총재의 금품수수혐의를 추궁하던 검찰이 이제 그 사건의 조작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 당시 이미 확보한 달러환전표와 그에 관한 참고인진술서를 아예 수사기록으로부터 빼놓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고의적이라면 공정한 수사를 해야 할 검찰의 직무유기이고 야당총재를 얽어맬 사건조작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번의 재조사 경위 역시 또한번 검찰답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서경원전의원이 정형근의원을 고발한 지 오래였는데도 그동안 수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던 검찰이, 이른바 ‘빨치산발언’으로 국민회의가 이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급피치를 올려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동료에 비수를 들이밀고 자신의 과거를 물어야 하고 자신의 잘못을 추궁해야 할 자가당착의 상황에 직면한 검찰이 애처롭다.

    권력자의 뜻과 눈치만 살피나…

    오랜 도피생활 끝에 잡힌 고문경찰 이근안의 행적과 그의 탁월한 ‘고문기술’에 사람들은 관심과 분노를 집중시키고 있다. 연일 그의 배후와 상급자와 지원자들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언론과 세인의 주목에서 드러나지 않은 얼굴들이 있다.

    바로 당시의 검사들이다. 고문의 흔적이 역력한데도 김근태씨 등 고문피해자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그 검사들, 고문의 주장과 일정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사하기는커녕 은폐에 앞장섰던 검사들이다. 우리의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상 수사의 주재자라고 하는 검사들이 대공경찰의 더러운 고문 뒤치다꺼리나 헬고 있었음은 역사에 길이 남을 수치이자 웃음거리이다.

    이 모든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하나같이 검찰의 자업자득이다. 오직 진실이라는 풍향계에만 따랐더라면 이 초라한 검찰의 위신은 없었을 일이다.

    권력자의 뜻과 눈치만 살피다 보니 오늘 이랬다 내일 저랬다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광주학살자들에 대해 오늘 무혐의라고 했다가 내일 구속기소하는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제 간첩으로부터 금품수수한 혐의로 야당총재를 궁박하다가 이제 대통령이 된 그의 혐의를 벗기려 할 수밖에 없다. 이제 더 이상 ‘깎을 뼈’도, ‘숙일 고개’도, ‘흘릴 눈물’도, 그런 염치도 남아있지 않다.

    오! 검찰이여,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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