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4

2006.12.12

29살의 뉴요커 성공을 디자인하다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6-12-11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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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살의 뉴요커 성공을 디자인하다
    서울 예원학교 졸업, 서울예고 1학년 때 영국 유학을 떠나 파리 파슨스디자인스쿨과 미국 디자인아트센터컬리지 졸업. 시세이도 아트디렉터를 거쳐 현재 세계적 코스메틱 회사인 라프레리 뉴욕 본사의 아트디렉터 겸 고급 서지류 회사 ‘졸리유’ 대표. 스물아홉 살 난 한국 여성 김예진의 이력은 화려하다. 너무 완벽해 보여서 누가 만들어준 것이 아닐까 슬쩍 샘이 날 정도다.

    “뉴욕의 큰 문구점마다 제가 디자인한 카드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납품하게 해달라고 조르고 설득했어요. 그래서 미국 대도시 문구점의 판매망을 얻었지요. 취직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제 포트폴리오를 들고 50개 회사를 돌아다니며 면접 기회를 달라고 하기도 했고, 수백 쪽짜리 동문 전화번호부를 펴놓고 일일이 전화해 저를 소개하기도 했어요. 그야말로 외국에서 혼자 ‘살아남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지요. 6개월 만에 시세이도에서 인턴으로 일해보라는 연락이 왔고, ‘죽도록’ 일하니까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더라고요.”

    29살의 뉴요커 성공을 디자인하다
    그녀가 서울예고에 입학할 때까지는 부모와 함께 입시전쟁을 치른 또래 여고생들과 비슷했다고 한다. 예고에 입학했지만 또다시 대학 입시를 위해 미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끔찍해 홀로 영국에 유학 갈 결심을 했다. 유학 시절 그녀는 “즐겁게 밤을 새워가며 공부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다른 친구들은 귀국했지만, 김씨는 졸업장만 갖고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다. 가장 많은 관객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에 순수 예술이 아닌 광고를 선택한 이상, 세계시장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욕심이 컸기 때문이다. “동양인과 유럽인, 미국인이 생각하는 미의 컨셉트가 전혀 달라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유럽이 디자인 자체에 경도돼 있다면, 미국에서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실용성이거든요.”

    그녀는 현재 라프레리 뉴욕 본사에서 모든 홍보물의 디자인과 쇼윈도 컨셉트 등을 만들고 있다.



    “회사 입장에서 디자인을 하다 보니,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문구류 디자인을 시작했어요. 새로운 일을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성격 탓이기도 해요.”

    그녀의 브랜드 ‘졸리유’는 한국의 색동에서 영감을 얻은 강렬한 컬러 덕에 뉴요커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데, 올해 5월부터 국내 W호텔에서도 판매 중이다. 올해 사업상 한국을 찾으면서 한국에서 할 일이 많을 것 같아 외국에서 했던 대로 한국 기업들의 인사부에 전화를 걸어 무작정 ‘나를 쓰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대부분 기가 막히다며 웃으시더군요. 한국에선 대학 졸업하자마자 시험을 보든가, 인맥이 있어야 입사할 수 있다고요. 그래서 일단 포기했어요.”

    그녀는 세계 수천만 여성들이 꿈꾸는 성공한 ‘뉴요커’다. 그녀는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처럼 살고 있을까?

    “절대, 절대 아니에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디처럼 살벌한 경쟁과 냉혹한 조직 속에서 살고 있어요. 직장 동료 사이엔 ‘정’이란 개념도 없지요. 오후 5시까지 전쟁을 하다 뿔뿔이 흩어져요. 환상을 갖고 뉴욕에 와서 힘들다며 자포자기하는 한국 유학생들이 참 많아요. 영어 좀 배우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세계의 경쟁자들과 맞서보겠다는 무서운 각오로 온다면, 혼자서도 꿈을 이룰 수 있는 곳 역시 뉴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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