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7

2006.08.08

체육계 여성차별 날려버린 ‘아줌마 검객’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6-08-07 10: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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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육계 여성차별 날려버린 ‘아줌마 검객’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소속팀에서 해고됐던 검객 이명희(32)

    가 마침내 복직했다. 7월26일 경기도체육회에서 근무계약서를 작성한 이명희는 “전국대회에서 우승해 그동안의 마음 고생을 씻어내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임신과 출산이 죄인가요? 아이를 낳으면 운동을 그만둬야 하는 게 펜싱계에선 일종의 관행이었어요. 펜싱은 나이가 들어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운동입니다. 그런데도 한국 선수들은 은퇴할 때까지 결혼을 늦추거나 출산을 미룰 수밖에 없어요.”

    이명희가 경기도체육회로부터 최종 해고 통보를 받은 것은 7월 초. 3월11일 아들을 순산한 뒤 운동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몸을 만들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아이를 낳고 돌아오면 재계약을 해주겠다던 감독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해 10월 팀을 위해서 임신 4개월의 몸을 이끌고 전국체전에 출전, 단체전 동메달을 따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지난해 임신 사실을 감독님한테 얘기하니까 해고될지 모르니 체육회엔 알리지 말고 전국체전에 참가하라고 하더군요. 좋은 성적을 내면 선처해주지 않겠느냐는 말도 들었어요. 그래서 뱃속의 아기가 조금 걱정됐지만, 대회에 출전할 수밖에 없었어요.”

    7월12일 이명희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여성 선수에 대한 차별을 시정해달라고 진정했다. 인권위 진정은 복직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경기도체육회 관계자는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임신한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아이를 지울까 하는 끔찍한 생각도 했어요. 운동을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죠. 부상당해 6개월 넘게 운동을 쉬어도 쫓겨나지 않는데 아기를 낳았다고 해고하는 것은 인권유린 아닌가요?”

    이명희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검을 잡았다. 1998년 방콕아시아경기대회 여자 에페에서 은메달을 따는 등 10년 가까이 국가대표로 활약한 그에게 펜싱은 인생 그 자체다. 이명희는 펜싱을 계속하기 위해 첫아이를 낳은 뒤 불임시술을 받기도 했다.

    이명희는 8월1일 팀에 복귀해 전국대회 우승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복귀를 믿고 출산 직후부터 운동을 해온 터라 이명희의 몸은 임신 전보다 더 날렵하다. 검을 잡는 오른손의 감각을 잃을까봐 아이도 왼손으로만 안았다고 한다.

    “어렵게 검을 다시 잡은 만큼 정말로 열심히 운동할 거예요. 개인전 우승도 다시 하고 싶고, 팀이 단체전에서 우승하는 데도 기여해야죠. 아이를 낳고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걸 꼭 보여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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